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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소 생활을 마치며

Orthy 2024. 3. 15.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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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9일 14시 논산 육군훈련소에 입영한 뒤 6주하고도 하루가 지난 3월 12일, 육군훈련소를 수료하였습니다.

27연대 10중대 모두 멋있다!

설 연휴가 끼어 5주간의 훈련이 일주일 늘어나 6주 그리고 나흘을 훈련소에서 보내게 되었는데, 힘들고 지친 적도 있었지만 정말 의미있고 앞으로도 잊지 못할 추억으로 기억될 기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첫날부터 마지막날까지의 일들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처음 위병소를 통과한 일, 처음 분대원들과 이야기한 일, 처음 얼차려 받은 일, 처음 전투복을 입은 일, 처음 실탄을 사격한 일, 처음 살상용 수류탄을 던진 일, 처음 화생방 훈련을 한 일, 처음으로 밖에서 밥을 먹었을 때의 기분, 처음 행군할 때의 기분과 행군이 끝났을 때의 기분 등... 정말 잊지 못할 기간이었습니다.


입영 당일 무작위로 분류된 저의 소속은 육군훈련소 27연대 10중대였습니다. 27연대는 훈련소 남문 바로 오른편에 위치한 곳으로, 여러모로 좋은 점이 많은 연대였습니다.

우선 세열수류탄, 각개전투 교장과 숙영지가 가까우며 기록사격과 화생방 훈련장도 25연대 다음으로 가장 가까운 편이었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민간업체인 동원이 병영식당을 위탁운영하여 취사병이 요리한 음식이 아닌 급식업체의 음식을 먹었으며, 배식도 자율배식으로 이루어져 허용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자유롭게 밥을 양껏 먹을 수 있었습니다. 육군훈련소의 여러 연대 중 27연대를 포함한 오직 두 개의 연대만이 이러한 방식으로 식당을 운영하고 있고, 나머지 연대에서는 훈련병이 직접 배식조를 운영하며 배식과 식기세척을 담당했다고 하니, 정말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다만 단점이라면 다른 연대에 비해 확연히 낡은 시설이었는데, 저는 나름 살만했기에 다른 연대를 고를 수 있다고 해도 27연대를 선택했을 것 같습니다.

또 27연대 바로 전 기수, 그러니까 1월 16일 수료하여 제가 사용하던 건물을 썼던 기수에는 방탄소년단 뷔가, 그 조금 전에는 RM이 있었다고 합니다. 뷔는 제가 있던 10중대에 소속되어있어 분대장님들께 뷔 이야기를 듣기도 했는데, 무척 재밌었습니다.


훈련소 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다짐했던 것은 다음의 것들이었습니다.

1. 알려준 그대로 실천하기
2. 처음의 긴장된 마음을 계속 유지하기
3. 항상 열심히 참여하기
4. 화내거나 짜증내지 않기
5. 일기 꾸준히 쓰기

돌이켜보면 나름 잘 지키며 보내왔던 것 같습니다.

특히 매일 일기를 쓴 것이 지금와서 생각하면 정말 의미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훈련이 끝나고 생활관으로 복귀하여 저녁식사하고 씻고 나면 청소시간까지 약 한 시간 정도 개인정비 시간이 주어지는데, 이 때 항상 책상을 펴고 훈련소에서 나누어준 '소중한 나의 병영일기', 일명 소나기를 작성했습니다. 그날 하루동안 받았던 훈련, 내가 느꼈던 감정, 행군하며 했던 생각 등을 기록했습니다. 하루이틀만 지나도 그날 했던 생각들이 희미하게 흩어져버리는데, 매일 기록한 덕에 다시 읽어도 그날 기억이 선명하게 그려집니다. 또 훈련소의 하루가 유독 힘들었던 때 그리고 훈련소에서의 생활이 마지막으로 다가갈수록 유난히 감상적인 글을 많이 적었는데, 그때의 감정을 온전히 기록해 둔 글이 있다는게 참 의미깊은것 같습니다.

또 처음의 긴장된 마음을 유지하려 한 것도 굳은 결심 중 하나였습니다. 모든 것이 어색하고 낯선 처음에는 제식, 바른 생활태도 확립 등 군기를 엄격히 지키다 시간이 지날수록 풀어지는 제 모습을 보기가 싫어 항상 처음 마음을 유지하려 제 자신을 다독였던 것 같습니다.

항상 열심히 참여하기에는 훈련에 있어 잔꾀를 부리지 않는 것, 내게 주어진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적당한 정도의 잔꾀를 부리는 것이 좋다고들 충고하는 글을 많이 봤지만 최대한 FM으로 훈련에 임하려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저도 사람인지라 힘이 들 때 안보이는 곳에서 쉰 적이 있지만, 이 마음을 유지하려 나름 노력을 기울였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생활관 분대원들도 너무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정말 재밌었고 모두 함께여서 무사히 훈련소를 수료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참 고마운 사람도 많고 동생이지만 멋지고 존경스러운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덕분인지 27연대 3교육대 최우수분대로 선정되어 포상휴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훈련소 생활을 하면서 가장 재밌었던 것 중 하나는 체력단련 시간이었습니다. 입대하기 전에도 나름 운동을 좋아했었는데, 훈련소라는 한정된 공간에서는 할 수 있는 운동도 한정되었지만 모두 함께 운동한다는 것 자체가 재밌었습니다. 특히 구령을 맞추고 군가를 부르며 구보뛰는 것, 생활관 동기들과 옷을 벗고 몇백개씩 팔굽혀펴기를 하는 것 등을 통해 힘듦 속에서 커져가는 전우애를 느낄 수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영어 어학병으로 육군에 입대해 훈련소 입소 2주차 목요일 저녁 모 사령부 면접 대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안내를 받았고, 그에 따라 자기소개서를 금요일 아침까지 작성한 뒤 그 다음주 화요일 오후 사격술 훈련을 마치고 막사로 복귀해 면접을 보았습니다. 면접에서는 자기소개서를 바탕으로 배경, 영어 어학능력, 체력검정 결과, 건강상태 등 여러 질문을 약 5~10분 동안 물어보았습니다. 면접을 나름 잘 본 것 같아 합격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운이 좋게도 수료식 당일 자대배치를 확인해보니 합격하여 현재는 사령부 본부에서 교육훈련을 받고 있는 상태입니다.

훈련소는 대개 6주차 화요일에 수료식을 진행하고, 목요일 자대배출이 이루어집니다.

저는 3월 12일 수료행사를 하고, 3월 14일 목요일 훈련소를 떠났습니다. 배출 당일 아침에는 점호도 진행하지 않고 일어나자마자 침구류를 세탁보낼 준비를 한 뒤 아침을 먹고 8시 현관에 집합했습니다. 훈련소 교회로 이동해 한참 기다린 뒤 10시 20분경 서빙고역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12시 40분경 서빙고역에 도착했습니다. 처음에는 기차를 타고 가는 줄 알았는데, 버스에서 잠깐 자고 일어나니 한창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더군요. 다시 눈을 붙였다가 일어나니 버스는 서울을 달리고 있었고, 동작대교를 건너는 버스에서 바라본 한강의 모습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이후 2시까지 서빙고역 앞에서 대기하다 사령부에서 보낸 버스를 타고 사령부 본부로 이동하여, 어제 오늘 교육을 받기도 하고 생활관에서 쉬기도 하며 다음 일정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만 자대가 이곳 사령부 본부로 확정된 것이 아니라, 다음주 발표되는 결과에 따라 전국 각지의 예하부대로 갈 지 본부에 남을지가 결정됩니다.

이틀간 지냈음에도 이곳 사령부의 자유로움에 놀랍니다. 훈련소에서 7주를 보내다 맞이한 갑작스러운 자유에 뭘 해야할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영어 어학병으로 입대하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모로 군 생활이 나쁘지 않다고 느끼고, 할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자대로 이동한 뒤에는 또 새로운 목표를 세워 앞으로 17개월의 군 생활을 의미있게 보내고 싶습니다.


궁금한 점은 만약 있으시다면 댓글 남겨주세요.


3.24. 추가

무작위 난수추첨에 의해 결정된 자대는 사령부 예하부대로 인천 도심 한가운데 있습니다. 내심 집과 가까운 남부로 배치되기를 바랬는데, 조금 아쉽지만 기숙사에 있을적보다 집 가기가 훨씬 편해졌습니다. 앞으로 그곳에서 지내며 사령부의 일을 돕는 역할을 한다고 하는데, 정확히 무슨 업무를 할지 궁금하면서도 조금 두려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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