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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이야기들/[ ]를 보다

[만추]를 보다

by Orthy 2025. 3. 8.

Late Autumn, 2025. 3. 7.

김태용, 2011

김태용 감독의 영화 '만추'

안개가 만연한 늦가을의 시애틀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시간을 핵심 소재로 하여 사랑을 다루는 영화다.

'만추'속의 탕웨이는 예쁘다, 라는 말로 수식되기엔 부족한 모습이다. 우수에 찬 과묵함, 눈가의 검은 가장자리에 서린 고난과 깊은 눈 그리고 중국어 액샌트가 섞인 영어가 매력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

영화를 다 보고 후기를 찾아보니

탕웨이의
탕웨이에 의한
탕웨이를 위한 영화라는 말이 있다.

탕웨이가 아니었다면 영화의 깊이가 이 정도까지 도달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데 동의한다.

현빈의 연기가 거슬린다는 반응도 있지만, 크게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다. 애초에 배역과 마스크의 매력이 딱 그 정도일 뿐이었던 것이다. 애나 첸(탕웨이 扮)이란 인물의 배경 / 서사에서 오는 매력이 탕웨이의 마스크에 꼭 맞아 떨어지는 것에 비해, '에스코트 서비스' 종사자 훈(현빈 扮)의 그것들은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다른 어떤 배우가 더 좋았을까? 그럴 수도 있지만, 김태용 감독의 안목이 나보다 좋지 않을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탕웨이가 무척 훌륭했다고 하자. 그리고 그 분위기를 담아내는데 성공한 연출진에게도 공을 돌리자.


2박3일이라는 한정된 - 무척 짧은 - 시간에 사랑에 빠지는 두 인물의 서사에 개연성이 부족하지는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2박3일만 만나고도 수 년을 기다릴 수 있는 사랑에 빠질 수 있는가?

그렇지만 사랑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는걸 기억해야 한다. 매일 매순간을 함께하고 상대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아는 我와 他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사랑, 그래서 죽기보다 상대를 잃는게 더 두려운 '평생의 사랑'이 있는가하면 동반자의 개념으로서의 부부의 사랑이 있고, 오랫동안 만난 연인의 사랑, 갓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한 사랑도 있다.

또 '만추'가 그려내는 그만의 사랑이 있다.

개연성의 문제를 꺼내는 것은 '만추'의 두 인물이 가진 배경이 만들어내는 독창적인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고 내 머릿속에 있는 사랑에 대한 고정적 관념으로 그들을 이해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사랑이 가벼우면 안될까? 사랑의 끝이 정해져 있으면 안될까? 얼굴을 몇 번 이상 보지 않으면 사랑이 생기지 않는건가? 사랑은 꼭 절절해야하는가? 이별은 반드시 슬픈 것인가? 사랑은 그렇게까지 깊고 고결한 것인가?

우리가 썸이라고 부르는것도 사실은 사랑이 아닐까,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영화를 온전히 이해한 것도, 감독의 의도를 아는 것도 아니라 나조차도 내가 정확히 무슨 말을 하고싶은지 모르겠다. 영화를 몇 번 더 보면 더 잘 이해할지도.


장광설을 펼쳤지만, 정말 인상깊게 본 영화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탕웨이와 안개 낀 시애틀 그리고 특히 좋았던 몇몇 씬들이 기억에 남는다.

호평이 많은 범퍼카씬과 이어지는 더빙씬, 그리고 '하오'와 '화이'로 이어지는 탕웨이의 과거 이야기는 2025년에 봐서 그런지, 조금 식상했다.

그렇지만 애나의 첫 등장씬, 편지를 찢어 무심하게 삼키는 씬, 애나와 훈의 첫 만남씬, 화려한 옷을 입고 7년만에 막힌 귀를 뚫는 애나를 그린 씬, 장례시작에서의 '포크'씬 그리고 맨 마지막의 카페씬은 참 좋았다.

인상깊게 본 영화는 아니었다면서 좋았던 장면들을 늘어놓은 모습이 모순적일 수도 있겠지만 이게 내 진실한 감상이다.

그래도 남에게 추천할만한 영화다.

이 영화를 보고 '헤어질 결심'을 다시 볼 결심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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