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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이야기들/2025년 유라시아 여행

[중앙아시아 기행] 11. 파미르 여행 시작 : 오쉬에서 사리타쉬 / 키질아르트 패스를 넘어 타지키스탄 카라쿨로

by Orthy 2025. 9. 23.

저는 지금 파미르 하이웨이를 절반 이상 통과해, 파미르의 수도라고 불리는 타지키스탄 중부의 도시 호로그(Khorog)에 있습니다. 5일만에 와이파이에 연결되어 글을 올립니다. 인터넷이 없는 동안 매일 일기를 썼는데, 그 일기를 바탕으로 블로그를 적습니다.



25. 9.17.(수)
오쉬(800m)→ 사리타쉬(3500m)→ 사리모굴(3500m)→ 툴파르쿨 호수(3500m)

드디어 파미르 하이웨이 투어를 떠나는 날이다. 오래전부터 너무 꿈꿔왔던 투어였다. 파미르를 가기 위해 중앙아시아를 여행하기로 결심한 것이어서 내게는 의미가 유독 남달랐다. 발가락을 다쳐 걱정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상처가 생각보다 너무 빨리 잘 아물어 투어에 참여하는데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정말 다행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짐을 챙기고, 앞으로 못 씻을 일이 많을거라 오랜만에 아침부터 샤워를 했다. 8시 반쯤 숙소를 떠나 집결지인 Visit Alay 오쉬 사무실로 향했다. 도보로 15분 거리로 가까운 곳이라 숙소에서 만난, 같은 투어를 참여하는 Cho와 함께 걸어갔다.

집결지에 도착하니 우리와 함께 떠나는 사람들 몇몇이 기다리고 있었다. 총 두 개의 차량에 7명이 나눠타고 가는데, 한 사람은 이틀차에 합류해서 총 여섯명이 모이게 되었다. 중국, 캐나다, 미국, 영국에서 한사람씩 왔고 이틀차에 합류할 사람은 미국인이라고 했다. 다들 인상이 좋았다. 모두 모이자 간단하게 통성명을 하고 서양인들 특유의 스몰토크가 시작됐다. 이거 정말 쉽지 않다. 속도도 엄청 빨라서 따라가느라고 좀 힘들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가이드가 들어와서 투어 일정에 대해 대략적으로 설명해줬다. 1일차부터 9일차까지 여정에 대해 듣는데,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렜다. 일정에 대한 설명이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을 가진 뒤 드디어 차량에 탑승했다. 우리 차에는 중국계 캐나다 출신의 중년 여성, 영국 출신의 할머니 그리고 나와 다른 한국분 총 4명이 탔다.

본격적으로 길을 떠나기 전 글로버스에 들러 물과 간식거리를 샀다.

오쉬에서 가장 큰 글로버스로 왔다.
초코파이가 종류별로 엄청 많다. 이번 파미르 투어에서 초코파이가 없었으면 못 버렸을거다...

아침으로 먹을 빵과 물 큰 통 2개, 초콜릿 4봉지(여행 내내 먹으려고 많이 샀는데 다 먹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초코파이도 한 박스 샀다. 초콜릿이 하나에 120솜 정도 해서 총 860솜 정도에 간식거리와 물을 구입했다. 계산이 끝나고 빵을 바로 먹었는데, 글로버스 역시 빵 잘만든다. 냄새도 너무 좋았고, 안에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크림치즈가 들어간 빵이었는데 맛도 좋았다. 파리바게트나 뚜레쥬르는 그냥 이기는 맛이다. 게다가 값도 싸서 내 손바닥보다 커다란 크림치즈빵 2쪽에 겨우 80솜(1000원 정도)이다. 키르기즈스탄을 떠나면 글로버스 빵이 그리울 것 같다. 아직 먹어보지 못한 게 많은데...

그렇게 차량은 오쉬를 떠나 남쪽으로 향했다. 혼자서 파미르 고원을 향해 떠났다면 들렀을, 빠니보틀이 방문한 굴차의 유르트촌을 지나 타지키스탄과의 국경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 사리타쉬까지 3~4시간 정도를 이동한다. 이동하면서 보는 풍경이 또 너무너무 멋지고 아름다웠다.

알라이 산맥의 전망대
산에다가 국기를 조각?해두었다. 키르기즈스탄에는 이런게 되게 많이 보인다.

비슈케크에서 잘랄아바드로 향하는 길에 마주한 고갯길과 나린강 옆의 협곡 풍경이 굉장히 장엄했는데, 오쉬에서 굴차, 굴차에서 사리타쉬로 가는 길에 마주한 풍경은 그에 못지 않다. 오히려 그것보다도 더 아름다웠다. 전자는 무척 좁고 가파른 협곡이었다면, 이번에 마주한 풍경은 넓지만 산세가 더 커다랗고 가축이 마음껏 뛰노는 주위 풍경과의 조화가 더 아름다운 느낌을 줬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파미르 고원으로 향할수록 가축을 데리고 이동하는 유목민들의 모습이 더 많이 보인다.

이번에는 창문을 내리고 풍경을 내 두 눈으로 볼 수 있어서 더 좋았다. 마슈르트카를 타고 가는 대신 토요타 suv를 타고 가니 승차감도 좋고 바람도 느낄 수 있어서 행복했다. 겨우 1일차인데도 투어를 신청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투어차량으로 가다보니 멋진 뷰포인트가 있으면 잠시 멈춰 사진을 찍을 수도 있었다.

가는 길 내내 멋졌다.
크아아악...
흔한 키르기즈스탄 고속도로의 풍경

사리타쉬로 가는 길에 지나친 많은 마을의 풍경도 아름다웠다. 어느 마을을 지나가도 보이는 아이들이 노는 풍경, 아름다운 산자락 아래 자리잡은 오래된 집들과 풀을 뜯어먹는 가축들의 모습이 좋았다. 옥색 물은 깨끗하게 흐르고, 고도가 높아지니 바람은 시원해서 그냥 너무 행복했다.

그렇게 창밖을 내다보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보니 어느새 사리타쉬(Sary-Tash)에 도착했다. 정보를 찾으면서 굉장히 많이 본 곳이라 익숙할 줄 알았는데, 직접 방문해서 본 사리타쉬는 화면에서 본 것과는 또 달랐다. 훨씬 더... 예뻤다. 파미르에 오니 사람이 굉장히 감성적으로 변하는 것 같다.

사리타쉬의 아쿤 게스트하우스에서 점심을 먹었다. 메뉴는 만두국, 만두, 삼사, 프라이와 소시지가 있었는데 내게는 글로버스에서 산 크림치즈빵 한 쪽이 더 남아있었기 때문에 삼사 하나만 시켰다. 가격은 80솜. 그런데 이 삼사는 고기는 별로 없고 감자로 속을 채운 것이라, 맛은 있었지만 고기를 먹고싶었던 내게는 조금 아쉬웠다. 아침부터 탄수화물만 계속 먹고 있는 셈인데, 이때부터 이번 파미르 여행에서는 단백질을 먹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삼사를 맛있게 먹고, 출발시간이 되기 전 시간이 있어 사리타쉬 마을을 조금 걸었다. 혼자 히치하이킹으로 파미르를 통과하려 했던게 생각보다 더 무모한 일이었다는걸 알았다. 지나가는 차량도 별로 없고, 오쉬에서부터 알아봤는데 키르기즈스탄과 타지키스탄 국경을 통과하는 방법에 대한 정보가 계속 바뀌고 있었다. 얌전히 투어를 선택한게 좋은 선택이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나중에 다시 한 번 파미르에 온다면 히치하이킹으로 통과해보고 싶다.

사리타쉬의 아쿤 게스트하우스. 히치하이킹을 할 때는 이곳에서 정보를 찾으라고 했다.
게스트하우스 벽면에 붙어있는 스티커
가운데 도로가 바로 파미르 하이웨이다
타지키스탄으로 넘어가는 키질아르트 패스 방면의 파미르 하이웨이
사리타쉬 마을의 풍경 중 하나

식사 시간이 끝나고, 사리타쉬에서 오늘의 목적지 툴파르쿨 호수(Tulpar-Kul)까지 1시간 반 정도를 달려간다. 타지키스탄으로 향하는 두 갈래의 고속도로 중 다음날 우리가 통과할 키질아르트 패스/무르갑 방향이 아니라 바로 두샨베로 향하는 방향의 고속도로를 타면 사리모굴(Sary-Mogul) 마을에 도착한다. 마을 이름이 왠지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미나스 모르굴과 비슷해서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었다.

포장도로는 여기서 끝이다. 사리모굴 마을에 들어서 산맥쪽으로 30~40분 오프로드를 달리면 툴파르쿨 호수에 도착한다. 오프로드는 설산을 향해 뻗어있는데, 이번에 보이는 설산들은 모두 6000미터급 고봉이다. 설산을 향해 달리는 풍경, 우리 앞으로 지나가는 또 다른 지프차가 일으키는 흙먼지가 정말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풍경만 보고 있어 이게 정말 현실인지 헷갈렸다. 그냥... 너무 좋았다. 비슈케크에서 잘랄아바드로 가는 길에 본 자연은 이날 본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설산을 향해 오프로드를 계속 달려간다.

그렇게 4시쯤 호수의 유르트촌에 도착해서 같이 차를 탄 사람들과 한 유르트에 짐을 풀고 근처를 산책했다. 나는 다른 차에 탄, 중국 남부에서 왔다는 아이리스라는 친구랑 돌아다녔다. 여기도 풍경이 장난없다. 언덕들의 풍경은 사막을 연상시키는데, 고개를 돌리면 푸르디 푸른 호수와 가파르게 올라가는 붉은 산자락이 보이고, 멀리 협곡 사이로는 설산이 보인다. 자연이 정말 대단하다. 지구에 있는 것 같지가 않았다. 산책을 하다보니 상처 부위에 습기가 차 언덕 위에서 신발을 벗고 발을 건조시키면서, 풍경과 함께 노래를 들었다. 정말 좋았는데, 너무 추워서 얼마 못 있고 유르트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내가 잘 유르트
바깥 모습
텐트를 치고 자는 사람도 있었다. 밤에 얼어죽을 것 같은데...
조금 걸어가서 다시 찍은 유르트캠프
조금 걸어가면 툴파르쿨 호수가 보인다. 굉장히 작다.
유르트캠프 옆에 거대한 협곡이 있었다.
조금 더 가까이에서
세로로도 찍어보고
호수 색이 신기했다. 보정없이 이런 색이 나온다 진짜로...
또다른 유르트캠프도 있다.
ㅋ브이ㅋ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한 컷, 너무 예쁘다.

유르트에 들어와서는 글을 적다가, 식사시간이 되기 전까지 할 것이 마땅치 않아 연습문제를 풀었다. 모든 가측함수가 거의 모든 점에서 연속함수의 극한임을 보이는 문제였는데, 가측함수와 계단함수를 연결하는 정리4.3을 이용하면 생각할 수 있었다. 문제를 풀고 얼마 안 있어 저녁을 먹으러 갔다. 저녁은 형편없었지만 멜론이 있어 난과 함께 먹으니 먹을만했다. 스프에 빵을 적셔먹어도 맛있었다.

저녁을 먹고 나니 날이 정말 추워졌다. 날씨 앱을 보니 섭씨 5도였고, 9시가 넘으면 2도 아래로까지 떨어졌다. 해발고도 3500미터는 계절이 다르다... 너무 추워서 두꺼운 티셔츠에, 챙겨간 군대 방상내피, 경량패딩, 바람막이를 입고 비니에 넥워머까지 착용하니 살 것 같았다. 노을이 지는 툴파르쿨 호수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돌아다니다가 별을 볼 준비를 했다.

다시 그곳으로
덩실덩실
범죄자 아니고 너무 추워요

공해도 없는데다가 날이 맑아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해가 지고 별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더니 은하수까지 볼 수 있었다. 별이 정말 많았다 이렇게 많은 별을 본 건 처음이었다. 감격스러웠다. 별을 계속 보고싶었지만 너무 추워서, 30분 정도 보다가 들어온 것 같다. 북두칠성, 카시오페이아 자리, 북극성을 발견했는데 나머지 별자리는 모르겠다. 사실 별자리보다 은하수를 본 게 너무 좋았다. 엄청나게 선명한 건 아니었지만 분명 은하수였다. 날이 추워서 오래 못 보고, 목이 아파서 들어왔지만 정말 행복하고 흥분됐다.

유르트에 들어오니 불을 때고 있어 정말 따뜻했다. 같이 온 Cho가 챙겨온 비슈케크 꼬냑을 한모금 마시니 온몸이 따뜻뜨끈노곤하다. 아직 겨우 9시지만 잠자리에 들기 전 일기를 마무리짓는다.

그리고 실제로 바로 잠에 들었다...

25. 9.18.(목)
툴파르쿨 호수→ 트레블러스 패스(4150m)→ 사리타쉬→ 키질아르트 패스(4300m)→ 카라쿨(3900m)

저녁 그리고 새벽엔 정말 추웠다. 너무 추워서 새벽에 중간중간 깼는데, 막상 아침에 일어나니 의외로 개운하니 잘 잔 느낌이었다. 유르트를 데워주던 모닥불은 새벽 3시쯤 꺼졌는데, 그때쯤 추워서 일어난 김에 화장실을 가니 별이 정말 쏟아질 것처럼 많았다. 더 감상하고 싶었지만 너무 추워서 얼른 유르트 안으로 들어왔다. 간밤에 기온이 영하 4도까지 떨어져 수도관이 얼었고, 화장실도 작동을 멈췄다. 정말 추웠다...

얼음얼음

전날 9시 좀 넘어 잠들어서, 아침 6시 반에 일어났다. 7시에 아침식사를 하러 갔다. 우유로 죽을 끓인 것 같은 키르기즈스탄의 전통 음식을 먹었는데, 별로 맛은 없었다. 그냥 아무 맛이 없었는데, 쌀알이 씹히는 느낌은 재밌었다. 난이 있어 잼을 발라 먹었는데, 아슬란밥 호두나무숲에서 따먹은 조그마한 자두를 잼으로 만든 것 같았다. 그때 먹었던 과일과 비슷한 맛에 씨앗이 있는 것도 비슷했다. 차와 함께 겨우 허기를 달래고 짐을 다시 챙겼다.

맛은 별로야

전날 설명을 듣기로는, Traveller's pass까지 하이킹을 간다고 해서 가이드가 함께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그냥 우리끼리 알아서 가는 것이었다. 어떻게 할 줄 몰라 침대에 앉아있었는데 다른 차량에 탄 제이슨이란 미국인 아저씨가 우리를 이끌었다. 양치를 하고 준비를 마쳐 8시쯤 유르트캠프를 떠났다. 목적지까지는 6.5키로미터정도 하이킹을 해야 했다. 아침 일찍 출발한데다가 구름에 해가 가려 정말 너무 추웠다. 방상내피 위에 바람막이를 입으니 몸은 따뜻한데, 바람이 얼굴을 무자비하게 때렸다. 비니를 챙겨올 걸, 후회를 많이 했다.

다리를 건너가면 트레킹 시작
예쁘다
흙탕물이야 완전히
저 멀리 다리가 보인다. 이때는 힘든 길이 될 줄 몰랐어...
계속 걸어간다
햇빛이 나오기 시작했다.
저 멀리 설산이 구름에 가려져 있었다.

그렇지만 경치는 여전히 끝내줬다. 설명은 사진으로 대체해야 할 것 같다. 고도가 높아서 오르막을 올라가는게 정말 힘들었다. 미끄러운 길이 많고 마지막 오르막에서는 경사가 너무 가팔라,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로서는 많이 무서웠지만  함께 투어한 한국인 조(Cho, TMI지만 우리 차량에 함께 가는 영국인 할머니는 Jo, 중국계 캐나다인 아주머니는 Joey다. 이름이 모두 비슷해 재밌었다)가 스틱을 빌려줘서 무사히 올라가고 내려올 수 있었다.

그냥 계속 걷는다
크아아
미친거 아니묘ㅋㅋ
으악
이쁘다아님
감동적
브이ㅋ
그리고 또 걷는다
저 멀리 유르트로 되돌아가고 싶었다.

빙하와 만년설을 이렇게 가까이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빙하가 미끄러져 내려와 침식된 경사면, 그 사이의 암석들, 산화철이 있는지 군데군데 붉게 보이는 언덕들과 거대한 협곡 사이로 흐르는 물줄기가 너무 아름다웠다. 트레블러스 패스에 올라가서 본 산맥과 빙하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레닌봉의 모습이 정말 멋졌다. 4000미터 이상을 올라가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한걸음 한걸음이 힘들었다. 오르막을 올라갈 때면 근육에 모래주머니를 달고 다니는 느낌이 든다. 숨은 거칠어지는데, 고산증세를 완화하려면 규칙적으로 천천히 호흡해야해서 호흡을 조절하느라 힘들었다. 그렇지만 분명, 힘들고 도전적이었던만큼 완등한 뒤에는 정말 기뻤다.

트레블러스 패스에 도착
진짜 빙하다
4150미터 정복

십여분 경치를 감상하다가, 빌린 스틱을 들고 가파른 경사면을 내려왔다. 미끄러질까 정말 무서웠는데, 스틱에 체중을 싣고 내려오는 방법에 익숙해지니 조금 나았다. 내려가는 길은 전혀 힘들지 않았다. 그저 얼른 다시 유르트캠프로 돌아가서 뭘 좀 먹고 싶었다. 챙겨간 간식이라고는 커다란 초콜릿 한 봉지뿐이라 초콜릿을 먹는데도 질렸었다. 내려가는데는 딱 2시간이 걸려 1시 반쯤 유르트캠프에 도착했다. 날이 따뜻해져 껴입은 옷을 벗고, 발가락 상처에 다시 연고를 바른 뒤 약을 먹고 건조시키는동안 식당에 있던 빵에 잼을 발라먹었다. 이번에는 귤?같은걸로 만든 잼을 빵과 먹었는데, 아침에 먹은 것보다 이게 더 맛있었다.

그 뒤로는 함께 떠난 일행들이 돌아오기까지 하염없이 기다렸다. 짐을 싸고, 누워서 낮잠도 좀 자고, 고민하고 있던 문제도 생각했다. 3시 40분쯤이 되어서 중국계 캐나다 아주머니 조이가 돌아왔다. 이 분은 좀...뭐랄까, 조금 피곤한 스타일의 아주머니랄까? 착하신 것 같은데 불평불만이 좀 많으시고, 말도 엄청 많으시다. 같이 다니기 조금 피곤한 스타일이시다... 너무 늦게 오셔서 중간에 길을 잃으셨나 걱정도 되긴 했는데, 겨우 내려와서 길을 떠날 수 있었다.

유르트캠프를 떠나 다시 사리모굴을 지나, 전날 점심을 먹은 사리타쉬의 아쿤 게스트하우스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그런데 와보니 정전되어 있었음
내가 먹은 음식
아쿤게스트하우스

나는 남은 키르기즈스탄 솜이 별로 없어 만두의 일종인 우르무(?)를 먹었다. 안에 야크 고기가 들어있다고 했는데 생각보다 꽤 맛있었다. 아쿤 게스트하우스에서는 또 다른 한국인을 만났다. 내가 오쉬에 도착하기 전날 조와 오쉬의 ABS호스텔에서 만난 부산 사나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나와는 초면이지만 조와는 구면인 셈이다. 내가 오쉬에 도착한 날 히치하이킹으로 파미르를 지나가겠다며 사리타쉬로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날 여기서 그 사람을 볼 줄은 몰랐다. 원래 이날 아침에 국경을 넘어가는 차량을 탑승하기로 했는데, 9시에 도착한다던 차량의 도착이 늦어져 5시가 되도록 게스트하우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이 계속 돈을 달라고 해서 갈등도 있었다며 그간 있었던 이야기를 해줬는데, 투어를 선택하기를 잘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다행히 얼마 안있어 국경을 넘는 차량이 도착해 먼저 출발하셨다. 우리는 마저 식사를 하고 5시 반쯤 사리타쉬를 떠나 국경을 통과하기 위해 파미르 하이웨이를 달렸다. 시간이 너무 늦은건 아닌가 했는데, 가이드가 국경은 24시간 열려있다고 했다. 사리타쉬 인근은 진눈깨비가 오고 흙먼지로 둘러쌓여있었는데, 국경이 가까워지고 해발고도가 올라가자 날씨가 또 좋아졌다.

히치하이킹을 고민할 때는 이 국경을 어떻게 통과해야하나 고민이 많았고, 정보도 굉장히 많이 찾아봤었다. 그래서인지 여행사 차로 지나가는게 딸깍으로 느껴져서 기분이 묘했다. 이쪽 지역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직접 지나가면서 느낀 국경은 상상했던 것과 달랐다. 국경 바로 근처에도 가축을 방목하는 유목민들이 있었고, 키르기즈스탄 국경과 타지키스탄 국경 사이의 중립지대는 훨씬 더 넓고 황량했다. 소련 시절 파미르 하이웨이, 정식명칭으로는 M41고속도로를 건설할 때만 해도 자유롭게 왕래가 가능한 도로였을텐데, 국경이 만들어지고 중립지대가 생기면서 일종의 무인지대로 변해버린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오래된 컨테이너나 집이 중간중간 보이기도 했다. 국경을 지나가면서 가이드가 이야기하길, 5~6년 전에 키르기즈스탄과 타지키스탄의 국경갈등으로 각각 수백명이 사망한 교전이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원래는 각국 국민은 상대방 국경을 통과할 수 없고, 허가받은 투어 차량만 통과가 가능하며 개인 자격으로 온 외국인은 통과가 가능하지만 중간의 중립지대 20키로미터를 알아서 이동해야 했다. 바로 이게 내가 알아본 키질아르트 패스 통과 방법이었고, 이렇게 통과하기는 너무 무모해서 결국 투어를 선택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제한이 풀리고 국경이 완전 개방된게 불과 3달전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이걸 알았더라도... 뚜벅이 여행자라면 투어를 통해 통과하는데 제일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키르기즈스탄측 보르도보 국경검문소 도착

키르기즈스탄의 국경검문소에서는 출국심사를 위해 모두 차에서 내려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여기서 아까 출발한 한국인 히치하이커와 다시 만났다. 정전때문에 한동안 출국 시스템이 마비되었다고 했는데, 우리가 도착한지 얼마 안되어서 바로 출국심사가 시작됐다. 정말 너어어어무 추웠다. 패딩도 껴입지 않은 상태여서 온몸을 떨면서 기다렸다. 외국인 관광객의 출국은 되게 빨리 처리됐는데, 가이드를 포함한 키르기즈스탄 현지인들은 심사에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가는 길에 세관검사는 간단히 마무리됐다. 짐을 대충 들쳐본 뒤 출국절차가 모두 끝났다. 키르기즈스탄쪽 검문소는 뇌물 청탁이 강력히 금지되어 있다고 들었는데, 너무 깔끔하게 출국 절차가 끝났다. 그렇게 차량은 중립지대로 들어섰다. 중립지대의 풍경 역시... 말해봐야 입만 아프다. 정말 너무 멋졌다. 파미르 하이웨이의 자연이 정말 대단하다. 이번 중앙아시아 여행을 하면서 자연에 대한 관념이 많이 바뀐다.

여길 자전거로 건너는 용감한 자가 있다

중립지대가 거의 끝나는 쪽에 키르기즈스탄의 체크포인트가 하나 더 있는데, 여기서도 여권 검사를 했다. 여권 검사는 명분이고, 가이드가 악수를 하며 담배 한 보루를 쓱 건넸다. 사실 이게 이해는 되는게, 체크포인트 위치가 너무 오지인데다가 교대를 자주 해주는 것도 아닐텐데 이렇게라도 담배를 수급하지 않으면 정말 힘들 것 같았다. 오히려 담배 한 보루에 쿨하게 보내주는게 더 놀랍다.

차는 계속 달려 키질아르트 패스의 꼭대기에 도착한다. 해발고도 4300미터가 찍히는 곳이다. 슬슬 고산증세가 나타나는 것 같았다. 머리가 조금씩 핑핑 도는 것 같고, 속이 괜시리 안좋아진다. 정상에는 조형물이 있어 잠깐 내려 사진을 찍었는데, 진짜 얼어죽는 줄 알았다. 호들갑이 아니고 너무 춥다 정말로... 얼른 뛰어가서 사진을 찍고 돌아왔는데, 그거 조금 뛰었다고 또 숨이 찼다.

키질아르트 패스의 산양
고도 4300미터
브이ㅋ

정상에서 3분 정도만 가면 바로 타지키스탄 국경검문소가 나온다. 원래는 여기서 여권과 파미르 통행 허가증인 GBAO퍼밋을 함께 검사하는데, 보통 투어를 가면 투어사에서 다 대행을 해줘서 나는 내리지도 않고 여권만 건넨 뒤 차량에서 대기했다. 바깥에 나가지 않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타지키스탄 군인들이 다가와 창문을 내리고 웨어 알 유 프럼이러면서 말도 걸었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친절해보였다. 여기서도 나갈때 담배 한 보루를 건넸는데, 이렇게 오지에서 고생하는 군인들에게 이정도는 좀 건넬 수 있지 않나 싶다. 정말 춥고 인터넷도 안되는 곳이라 이해가 간다.

타지키스탄 국경검문소

타지키스탄 국경을 통과하니 해가 완전히 저물었다. 이날의 목적지인 카라쿨의 게스트하우스까지는 40~50키로미터를 더 달려야 했다. 날이 어두운데도 가이드가 운전을 잘 해줬다. 오프로드라서 운전이 쉽지 않을텐데 꽤나 능숙하게 한다. 밤에 카라쿨로 운전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했지만 그럼에도 믿음이 갔다.

아무 빛도 없는 파미르 하이웨이의 어두운 도로를 달리다보니 창문 너머로 별빛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엄청나게 추웠지만 별을 보려고 창문을 내렸는데, 툴파르쿨 호수에서보다 선명한 은하수가 하늘에 펼쳐져있었다. 가이드에게 양해를 구하고 창문 밖에 머리를 내밀고 하늘을 보면서 갔다. 별이 정말 많고, 은하수가 참 선명했다. 투어를 시작해서부터 별을 원없이 본다. 정말 예뻤다...

타지키스탄은 키르기즈스탄보다 1시간이 느리다. 그래서 타지키스탄 현지 시각 8시에 카라쿨의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얼른 짐을 풀고 저녁을 먹었는데, 전날 유르트에서 먹은 것에 비하면 진수성찬이었다. 맛있게 저녁을 해치우고 드디어 샤워를 했다. 와이파이는 여전히 없지만 문명을 다시 마주하니 행복했다.

나의 방
저녁1
저녁2, 먹던 사진 죄송합니다.

투어를 선택한 것이 너무 잘한 선택이었다. 여행이 너무 즐겁고, 멋있고 또 행복하다. 파미르에 와서 이렇게 멋진 시간을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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