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9.21.(일)
랑가르에 도착해서 이날은 정말 잘 잤다. 고도가 낮아져서 그런지 간밤에 너무 개운했다. 고산지대에서 내려오니 컨디션이 바로 회복된 것 같았다. 고산병이 참 무섭다는걸 알게 된다.
7시 반에 아침을 먹었다. 계란 프라이에 소시지였는데, 소시지가 너무 싼마이였다. 빵에 잼을 발라 먹었는데, 복숭아로 만든 것 같은 노란색 잼이 엄청나게 맛있었다. 사진을 안 찍어뒀네...
이날은 Engel's peak 하이킹을 하는 날인데, 왕복 20키로에 약 7시간 이상이 소요되는 일정이라 이것 외에는 다른 일정이 없었다. 그간 하이킹을 여러번 하기도 했고, 갈 사람만 가고 나머지는 숙소에서 쉬거나 마을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결과적으로 정상에 이른건 나까지 3명이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알아서 잘 하루를 보낸 것 같다.
8시 반에 하이킹을 시작하는 곳으로 태워다준다고 해서 짐을 챙겨 대기하고 있었다. 오래 하이킹을 하는거라 물 한 통을 가득 채우고 혹시 추울까싶어 내피도 챙겼지만 짐을 완전히 잘못 싼거였다. 물을 더 챙기고 내피는 가만히 내버려뒀어야 했는데...
하이킹 시작점은 랑가르 마을이었고, 종 마을에서 랑가르까지 4키로 정도를 차를 타고 이동했다. 랑가르 마을에서 언덕의 능선까지 올라가면 길이 두 갈래로 나뉘어, 하나는 우리가 올라온 길 그리고 다른 하나는 종 마을로 바로 내려오는 완만한 능선을 따라가는 길이었다. 내려올 때는 종 마을로 바로 내려오는 길을 택하라고 안내받았다. 이날의 하이킹은 2900미터에서 시작해서 4000미터를 찍고 오는 코스였는데, 처음 언덕이 무척 가파르고 그 뒤로는 완만하다고 했다.
처음 약 3키로 정도가 진짜 힘들었다. 여길 올라가는데 2시간이 걸렸다. 풍경은 무척 아름다웠는데 언덕이 너무 가팔라 땅만 보고 걷느라 아무 생각도 못했다(사실 중간중간 쉬면서 사진은 열심히 찍었다).







날은 꽤나 더워 땀은 주륵주륵 나고, 고산지대라 발걸음은 무겁고... 또다시 나의 한계를 경험할 수 있는 하이킹이었다. 매일매일이 한계를 마주하는 파미르 여행이다.
9시쯤 트레킹을 시작해 11시 10분쯤 가파른 언덕의 능선에 올라섰다.

이후 5키로 정도를 능선을 따라 올라갔는데, 여기는 쉬웠다.



마지막에 조금 언덕이 가팔랐는데, 거기까지 가서 포기할 수도 없고 그냥 올라가다보니까 12시 반쯤 겨우 정상에 도착했다. 알고보니 Engel's peak는 아니고 그걸 조금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고원까지가 하이킹 코스였던거다. 진짜 엥겔스피크는 6500미터라고 하니 도저히 갈 수는 없고, 조금 가까이서 어떻게 생겼나 구경만 한 거였다. 이렇게 열심히 올라왔는데 생각보다 뷰가 좋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너무 아름다운 풍경을 많이 봐서 그런가?




같이 올라온 사람 중 미국에서 온 알렉스는 이미 한참 전 목표에 도달해 더 멀리 탐험을 떠났고, 나는 Cho를 기다리다가 1시 반쯤 하산을 시작했다. 올라올 때 힘들다고 물을 벌컥벌컥 마셔서 물이 부족했다. 내려가면서 너무 목이 말랐는데, 고산지대라 건조해서 입술은 다 부르텄다. 그렇지만 내려오는 길에 마주한 풍경은 훨씬 아름다웠다.










산맥 사이로 강이 흐르고, 평야가 펼쳐져있는게 마치 마법같았다. 랑가르에 도착하기 전에는 그렇게 깊은 협곡을 만들어냈으면서 또 이쪽에는 어쩜 그렇게 반듯한 평야가 만들어졌는지, 신기한 일이다. 강 건너 아프간 쪽의 산맥이 힌두쿠시 산맥이라고 들었는데, 강 그리고 평야와 함께 자리잡은 힌두쿠시 산맥과 저 멀리 보이는 만년설의 조화가 정말 아름다웠다. 사진도 많이 찍었는데, 너무 목이 말라서 얼른 내려가고 싶은 생각 뿐이었다. 점심도 안먹어서 너무 배가 고팠다.



아무 생각없이 풍경보고 걷고를 반복하다보니 4시 반쯤 숙소에 도착했다. 바로 물을 마시고 씻고, 빨래도 했다.
겨우 정비를 하고, 식사를 하기 전까지 1시간 20분 정도가 있어 식당에서 수학공부를 좀 했다. 파미르에 와서 공부를 너무 못하고 있다. 연습문제 중 목표한 것을 한 문제만 남겨놓고 풀었는데, 지금 인터넷이 안돼서 검색도 못하고 있다. 계속 생각하다, 일단 그 문제를 남겨놓고 챕터1 리뷰를 작성하다보니 저녁시간이 되었다.
저녁은 전날과 똑같은 메뉴. 그렇지만 시장이 반찬이라, 너무 맛있게 먹었다. 저녁을 먹고 가이드에게 내일 일정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미니메트로 게임을 조금 하다가 잠에 들었다.
25. 9.22.(월)
종→ Buddha's temple→ 얌춘(Yamchun) 요새 / 온천→ 카하(Qaha) 요새→ 이쉬카심(Ishkoshim) → 호로그(Khorog)
일찍 일어나 아침을 먹었다. 이날은 특별히 요청해 삶은 계란을 받았는데 기름지지 않아서 좋았다. 복숭아잼?같은게 있어서 빵에 발라먹었는데, 이게 진짜 맛있었다. 엄청 달고 상큼해서 계속 들어가는데,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좋아해서 많이 먹지는 못했다(아쉬웠음). 짐을 모두 챙겨 8시에 출발했다. 이 날은 갈 길이 멀었다.
종을 떠나 판즈(Panj) 강을 경계로 아프가니스탄과의 국경을 따라 계속해서 이동했다. 두샨베로 다가갈수록 도로 상태가 점점 좋아졌다. 흙먼지 날리던 오프로드에서 점점 아스팔트가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아스팔트가 있다 뿐이지 절대적 상태는 많이 좋지 않았다. 차가 상할까 걱정이 된다.
와칸 회랑을 따라 이동하는 동안 길을 따라 마을이 계속 나왔다. 판즈강 양옆으로 생각보다 꽤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는데(판즈강의 축복이다..!), 대부분 이곳에서 농사를 짓는 동시에 가축을 기르면서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도시에서 공산품이 쉽게 들어오기도 힘들고, 농산물이나 가축에서 나오는 부산물 외에는 생산할 것도 없다보니 시장도 보이지 않는다. 스스로 필요한 것들을 만드는 자급자족의 삶인데, 그 모습이 평화롭고 만족스러워보인다. 인터넷도 거의 터지지 않아 외부 소식을 잘 알 수 없어서 유지되는 모습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한다. 아이들은 함께 놀거나 농사일을 돕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어보였다. 인터넷이 없는게 오히려 축복이 아닐까...
어디를 가나 소, 양이 풀을 뜯어먹는 모습이 보이고, 길을 따라 이동하는 가축의 행렬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어떤 때는 아이들이 가축을 몰고 다니기도 한다. 항상 교복을 입은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정장같이, 꽤나 포멀한 느낌의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길을 걸어다니는 모습은 정말 귀엽다. 그리고 며칠간 아이들을 관찰한 결과, 이곳은 예전 우리나라처럼 오전반 / 오후반을 나눠서 학교를 가는 것 같았다. 7시 반쯤 등교하는 행렬이 있는데, 12시쯤에도 아이들이 등교를 하는 것 같은 모습을 자주 봤다.
그렇게 와칸회랑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창밖으로 내다보며 달리다보니, 브랑(Vrang) 마을에 위치한 Buddha's temple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15분정도 걸으면 언덕 위에 자리잡은 작은 탑에 도착한다.







설명문을 읽어보니, 이곳은 원래 고대 와칸 왕국의 수도가 있던 자리이고, 강 건너 반대편에도 똑같은 탑이 있었는데 지금은 타지키스탄 방면에만 탑이 남아있다고 했다. 고대 왕국의 수도였다는 설명을 듣고 마을을 살펴보니, 강을 접해 너른 평야가 펼쳐져있고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조건이 좋아보였다. 그런데 다른 나라와 교역하기에는 너무 힘들어 보이던데, 인터넷이 되면 와칸 왕국에 대해서 알아보고 싶었다.




이후 다시 길을 달려, 얌춘(Yamchun) 마을의 얌춘 요새에 도착했다. 역시 고대 왕국때 지어진 요새라는데, 가보니 굉장히 현대적 방식으로 재건을 하고 있었다. 철근 콘크리트로 단단히 보강을 하던데, 어느 방법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옛날 그대로의 모습이 보고싶어서 아쉬웠다.









그 다음 근처에 있는 온천에 갔는데, 조금만 하고 나온다고 해서 나는 그냥 온천을 하지 않고 차에 남아서 일기를 썼다.
겨우 30분이 안되어 모두 돌아와서 출발했는데, 들어가서 몸을 다 닦고 걸어오는게 너무 귀찮을 것 같아서 안 가길 잘했다, 생각했다.
그렇게 계속 길을 달렸다. 판즈강을 따라 이어지는 와칸회랑의 모습은 계속 비슷한 모습이다. 알리추르에서 랑가르로 가는 길은 굉장히 깊은 협곡이 펼쳐져있었는데, 랑가르에서 이쉬카심으로 가는 길은 넓은 평야 사이로 강이 흐르고, 나무와 풀이 무성한 모습이어서 - 내 상상과는 조금 달랐지만, 여전히 아름다웠다. 가는 도중에 카하 요새라는 곳을 또 들렀는데, 그렇게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1시 30분쯤 이쉬카심(Ishkoshim) 마을에 도착했다. 토요일이면 아프가니스탄에서 상인들이 건너와 시장을 연다는 소식을 들어 전부터 가보고 싶었는데, 아쉽게 월요일에 도착해 시장을 보지는 못했다. 가이드가 말하길, 최근 탈레반 인물이 상인으로 위장하고 시장에 들어와 문제가 되었다는데, 그 뒤로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겠고 - 그게 사실인지도 잘 모르겠다. 점심을 먹는다고 했는데, 나는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아 밥을 먹는 대신 이쉬카심 마을을 둘러봤다. 생각보다 굉장히 더 작은 마을이었는데, 햇빛이 무척 뜨거워 정말 더웠다.


















2시 30분경 이쉬카심을 출발해 파미르에서 가장 큰 도시인 호로그(Khorog)로 출발했다. 이쉬카심 이후에도 계속 판즈강과 아프가니스탄과의 국경을 따라가지만, 와칸 회랑 지역을 벗어난다. 풍경은 또 달라져서, 와칸 회랑 지역의 판즈강은 넓은 평야 가운데를 가로질렀다면 이쉬카심 이후의 판즈강은 좁은 협곡을 따라 거세게 흘러 황량하고 거친 풍경을 만들어냈다.
같은 차에 탄 열정적 사진가 영국인 할머니 조와 역시 사진에 진심인 중국계 캐나다인 아주머니 조이는 강 건너 아프가니스탄 마을이 보일 때마다 차를 멈춰 사진을 찍고 싶다고 요구했는데, 가이드는 군인이나 경찰에게 발각되면 큰 문제가 될거라고 경고했지만 이분들은 그런 건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았다. 결국 호로그를 한 시간정도 남겨두고 두 분이 나가서 사진을 찍다가 제지를 당했다. 굉장히 건장한 체격의 남성 두명이 다가와 가이드의 신분증과 차량번호를 사진찍고 조와 조이에게 사진을 삭제하라고 했는데, 이 사람들은 또 단단히 돌았는지 군부대도 아니고 그냥 마을인데 뭐가 문제냐며 따졌다. 가이드가 말을 들으라고 해서 결국 사진을 지웠다. 나와 Cho는 그냥 차 안에 앉아있어서 우리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같이 나가서 사진을 찍었으면 끔찍했을 것이다. 왜 그렇게 하지 말라는걸 하고싶어 안달인지, 당최 이해가 가지 않았다. 특히 조 할머니, 이 분은 그냥 현지 사람들한테 막무가내로 카메라를 들이대던데, 내 눈에는 굉장히 무례하게 느껴졌다. 조이 이분은 그냥 말이 너무 많고 나와는 성향이 너무 달라서 웬만하면 말을 안 하고 있었는데, 내 이 둘 때문에 언젠가 문제가 터질 줄 알았다. 우리 일행을 제지한 남성들은 경찰에 연락하는 것 같더니 가이드에게, 호로그로 가면 경찰서로 가라고 하고 떠났다. 차 안 분위기는 급격히 냉랭해졌는데, 나와 Cho는 조용히, 앞으로 어떡하냐, 그니까 가이드 말 좀 듣지, 등등... 한국어로 이야기했다. 사진 찍고싶은 마음은 알지만 그래도 적당히 했어야 했다.
5시쯤 호로그(Khorog)에 도착했다. 파미르 여행을 시작한 뒤 처음 보는 굉장히 문명이 발달한 곳이었다. 생각보다도 훨씬 더 크고 발전한 것 처럼 보였다. 호로그는 산맥과 군트(Gunt)강이 만나는 조그마한 분지 양안에 자리잡았는데, 양안을 연결하는 도보 다리는 굉장히 많아 보였지만 차가 지날 수 있는 다리는 하나뿐이었다. 그간 본 마을에 비하면 너무나도 큰 '도시'여서, 모두 처음 상경한 촌놈처럼 창밖을 두리번거렸다.
우리는 호로그 안에서도 굉장히 외곽에 있는, 호로그 공항 근처의 Pamir palace라는 곳에 묵었다. 이건 진짜 호텔이었다. 두 명이 한 방을 쓰는데, 지금까지 묵은 곳에 비하면 너무 좋은데도 요금은 같아서(인당 25달러) 놀랐다.
나는 미국인 제이슨과 같은 방을 쓰기로 했다. 짐을 풀고 바로 환전을 하러 나가면서 호로그를 둘러봤다.





100달러를 환전하고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여행 시작에 사리타쉬의 아쿤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Cho와는 오쉬의 게스트하우스에서부터 인연이 있던 한국인 삼촌(88년생이어서 Cho와 나는 그렇게 불렀다.)을 만났다. 그냥 길에서 우연히 마주쳐 서로 너무 놀랐다. 이야기를 하다 Cho와 함께 저녁을 먹기로 하고 7시에 다시 만나기로 했다. 조금 더 돌아다니다가 호텔로 돌아와 Cho를 만났고, 삼촌을 만나 저녁을 먹었다. 숙소가 서로 근처에 있어 가까운 식당 '사마르칸트'라는 곳을 갔다. 나는 비슈케크의 오쉬 바자르에서 너무 맛있게 먹었던 샤르포와 소고기 샤슬릭을, 나머지 둘은 소고기와 양고기 샤슬릭을 하나씩 시켰다.


샤르포는 여전히 너무 맛있었는데, 소고기 샤슬릭은 민찌여서 그냥 고기를 먹고싶었던 나는 꽤 실망했다. 삼촌은 히치하이킹으로 파미르를 통과해서, 서로 여행 이야기를 하다 어쩌다보니 삼촌의 인생이야기도 들었다. 190소모니(22달러 정도?)가 나왔는데, 고맙게도 삼촌이 각각 50소모니만 달라고 하셔서 맛있게 밥을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와이파이 연결이 되어서 부모님, 친구들과 연락하고, 티스토리 글도 올리고, 수학 공부하면서 궁금했던 것들도 인터넷으로 검색도 하고, 인스타그램도 확인하다보니 12시가 가까워졌다. 너무 피곤해서 바로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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