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9.13.(토)
잘랄아바드 혹은 오쉬로 가는 마슈르트카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12시간 이상 자동차를 타고 가는 긴 여정이기 때문에 택시를 타더라도 일찍 차를 탈수록 좋아서 아침 일찍 일어나야 했다. 빠니보틀이나 다른 여행 유튜브 채널을 보니 아침 일찍 가지 않으면 사람이 모이질 않아 오래 기다려야 하는데다가, 새벽 3~4시에 도착하는 경우가 있어 반드시 일찍 탑승해야 하고 싶었다.
터미널까지 가는 첫 차가 6시 40분에 있어서, 걸어가는 시간을 생각하면 6시 10분에는 일어나야 할 것 같았다. 자기 전부터 무조건 시간 맞춰 일어나야 해, 생각하고 있느라고 새벽에 계속 깼다. 결국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6시쯤 완전히 일어나, 짐을 챙기고 숙소를 나섰다. 제발 마슈르트카가 있기를 기도하면서 걸어갔던 것 같다.


버스는 30~40분을 달려 비슈케크 임시서부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위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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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 기행] 8. 촐폰아타에서 비슈케크 마슈르트카 타고 가기 / 비슈케크에서 오쉬, 잘랄아
25. 9.10.(수)일단 어제 반드시 혼자서 여행을 하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 슈헤이에게 안녕을 고하고 먼저 게스트하우스를 나섰다. 절대 이 친구가 싫어서 그러는게 아니라 같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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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제발 마슈르트카 있어라, 기도하면서 걸음을 재촉하며 터미널 끝쪽으로 갔다.
럭키!!! 마슈르트카가 있었다! 저번에 한 번 방문했을 때는 8시 반쯤 가서 이미 출발하고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갔을 때 본 잘랄아바드/오쉬행 마슈르트카는 이 두 대밖에 없었다. 혹시라도 마슈르트카를 타고 키르기즈스탄 남부로 갈 사람은 아침 일찍 서부터미널로 가길 바란다.
근데 요즘 중앙아시아 인프라가 날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어서 불과 1년 전 정보도 정확하지 않은 것이 많다. 몇 년 후 비슈케크를 방문한다면 그때는 잘랄아바드/오쉬행 마슈르트카도 많아지고 심지어 정기 버스가 다닐지도 모르겠다. 도로 공사도 많이 하고 있는데다 관광객이 점점 늘어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


좌석 사이의 넓이가 무척 좁은 마슈르트카였다. 내가 지금까지 탄 것 중 가장 좁아서 제대로 앉으면 다리가 다 안들어가고, 그래서 비스듬히 대각선 방향으로 앉아서 가야했다. 그냥 2000솜 주고 택시 탈까 고민했는데, 충분히 고민할 시간도 없이 내가 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마슈르트카가 출발했다. 시간이 딱 맞아 운이 참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엔 가는 길이 상당히 힘들어서 그냥 돈 더 내고 택시 탈 걸, 후회를 많이 했다. 또, 지금 생각하면 가는 길이 엄청나게 아름다웠는데 마슈르크카 창문이 더럽고 썬팅도 짙어서 그 모습을 카메라로 제대로 못 담은 것이 아쉽다. 내 눈으로는 다 담아두었는데 블로그에 소개 못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비슈케크 터미널을 떠나고 30~40분쯤 달렸을까? 남쪽으로 가는 길과 서쪽 우즈베키스탄으로 향하는 길이 나뉘는 갈림길에서 차를 잠시 멈췄다.
마침 화장실이 급해서 15솜(250원?)을 내고 휴게소 화장실에 들렀다. 아침거리를 살까 했는데, 그렇게 배고프지 않아서 그냥 바로 차에 탔다.

남쪽으로 길을 잡아들고 여러 마을을 지나 또 다시 30분 가량 달리면 검문소 같은 곳을 통과한다.


검문소를 통과한 버스는 협곡으로 들어간다. 현지인들밖에 없는 마슈르트카 안에서 혼자 외지인이었던 나는 창밖을 바라보느라 정신없었다. 이리저리 카메라를 들이대고 이편저편 기웃거리는 내 모습이 웃기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이때는 그런 모습을 신경 쓸 겨를 없이 창밖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구경하기에 바빴다.
깎아내린듯한 협곡 사이에 흐르는 계곡, 울퉁불퉁한 기암괴석으로 가득한 돌산들이 이 세상 것이 아닌 것 같았다. 한국에서는 볼 수도 상상도 할 수 없는 광경이어서 정말 넋을 놓고 구경했다. 협곡을 통과하면 이번엔 엄청난 높이의 고개를 넘어간다. 해발고도 800미터 정도에 위치한 비슈케크에서 해발고도 3300미터 이상에 위치한 터널을 통과해 키르기즈스탄 남부로 넘어가야 하는 것이다. 너무나 거대한 산맥이라 고개를 통과하기 위해 터널을 뚫을 수도 없고, 그저 빙글빙글 끊임없이 돌고 또 돌아가는 방법 뿐이다. 차를 돌릴 때마다 계속 변하는 풍경과 끝없이 펼쳐진 산맥이 보였다. 계속해서 내려오는 화물 차량만이 내가 지금 지구에 있는게 맞다는걸 확인시켜준다. 길을 통과하면서는 얼마 전 본 영화 듄Dune이 계속 생각났다.


비슈케크에서 오쉬로 갈 때 겨우 4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비행기를 타는 대신 12~13시간 걸리는 차를 타고 가기로 선택한 것은 가는 길이 너무 아름답다는 후기가 많아서였는데, 격하게 공감할 수 있었다. 정말 장관이었다.

키르기즈스탄에 대한 설명 중 북부와 남부, 두 개의 서로 다른 문화가 하나로 합쳐져 이루어져 있는 국가라는 설명이 있다. 굳이 이 험난한 고개로 길을 낸 것을 생각하면, 여기가 가장 길을 만들기 쉬운 구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곳조차 이렇게 접근이 힘들다면 포장도로가 만들어지기 전 그리고 터널이 뚫리기 전에는 북부와 남부의 교류가 거의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고개를 통과하면서 이 고개를 기준으로 문화가 상당히 차이난다는 설명이 정말 이해가 됐다.
오르막의 끝에는 터널이 있다. 2.5키로미터 정도 되는 터널을 지나면 드디어 키르기즈스탄 남부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터널을 통과하려하니, 앞에서 차가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터널을 통과할 수 없는걸까? 걱정을 했다. 분명 내려오는 차가 많았는데, 그 말은 반대편에서 이쪽으로 터널을 통과했다는 말이 아닌가. 터널 통행이 갑자기 불가능해지는 이유가 상상이 안되어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기사님이 갑자기 줄에서 차를 빼더니 근처에다가 주차해두고 담배를 피러 나갔다. 사람들도 같이 내리길래 나도 얼른 내려 기회다, 하고 사진을 찍으러 나왔다. 왜 기다리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밖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어 오히려 좋아라는 생각도 들었다.





10분쯤? 기다리니 이유가 밝혀졌다.

말들이 좁은 터널을 통과해야 해서 양방향 차량 진입을 통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높은 고개를 말을 데리고 통과한다는게 정말 말이 되는 소리야? 이게 가능한건가? 사실 내가 가능한건지 묻는건 아무 상관없는 일이었다. 한두번 해본 것 같지는 않다. 아마 기사님도 이것 때문인줄 알고 굳이 줄을 서지 않고 담배를 피러 차를 돌린게 아니었을까?
근데 저 말 떼를 데리고 이 높은 고개를 또 어찌 내려갈까?
한참 지나서 우리 차도 겨우 터널을 통과했다. 통과하니 또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터널 이쪽의 풍경은 산과 협곡으로 둘러쌓였다면, 터널 저쪽의 풍경은 온통 푸르른 평야가 펼쳐져 있었다.

이것도 멋지긴 한데 그 전에 보고 온 풍경이 너무 멋져서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졌다.
이쪽 지대는 또 높아서, 고개를 다 내려와 평지를 달리는데 해발고도가 2300미터 정도 되었다. 멋진 풍경을 보겠다며 애써 잠들지 않으려던 노력을 멈추고 드디어 잠을 좀 잤다. 버스 자리가 너무나도 불편했지만 애써 쪽잠을 자느라 힘들었다.

12시쯤 되어서는 휴게소에 도착했다. 빠니보틀 영상에서 본 바로는 휴게소에 도착하면 알아서 점심을 먹고 다시 차에 타면 되었다. 그래서 알아서 눈치껏 자리를 잡았더니 메뉴판을 가져다줘서, 옆에 사람이 시키는 것과 똑같은 걸 시켰다. 굴라쉬?라는거였는데 뭔지도 모르고 시켰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청년이 있었는데, 외국인인 나를 굉장히 잘 챙겨줬다. 영어를 조금 해서 이야기하다보니 옆에 앉은 어른들도 내게 질문을 했고, 그 질문들을 통역해줬다. 옆에 앉은 분들이 외국인이라 반가우셨는지 이것저것 챙겨줘서 스빠시바, 스빠시바 하면서 맛있게 먹었다. 갈빗대?를 말린 것을 고기라며 한 대 건내주셨는데, 맛있었다. 왠지는 모르지만 소금 간이 하나도 안되어있었는데, 고기라서 일단 맛있게 먹었다. 무슨 고기인지는 잘 모르겠다.
앞에 앉은 청년과 이야기를 하다보니 통성명도 했다. 이름은 사밀. 잘랄아바드 근처 바자르 쿠르간(Базар-Коргон, Bazar-Korgan)에 사는 친구인데 비슈케크에서 형이 하는 사업을 돕다가 잘랄아바드로 공부를 하러 가기 전 집에 잠시 들른다고 했다. 나도 잘랄아바드로 가는데, 잘랄아바드에서 볼 게 뭐가 있냐고 질문했더니 근처에 이슬란밥이라는 도시가 정말 예쁘다고 했다. 이야기를 하다보니까 자기랑 같이 가자는거다! 자기가 가이드를 해주겠다며 같이 가자고 하면서, 자기가 사는 도시 바자르 쿠르간에서 내리면 함께 갈 수 있다고 했다.

바로 인스타그램을 교환했는데 전혀 나쁜 친구로 보이지는 않아서(잘생겼다) 이래도 되나, 걱정은 됐지만 일단 알겠다고 했다. 마침 밥이 나와서 밥을 먹고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고, 열심히, 말 한마디 없이 밥을 먹었다.

오, 이것도 굉장히 맛있다. 고기가 좀 질겼는데 소스가 중독적이고 다른 탄수화물들도 엄청 맛있었다. 배가 고파서 더 맛있게 느껴졌을지도? 특히 메밀이 고소하니 맛있었다. 고기랑 같이 먹으니까 완전 밥도둑이다. 중앙아시아 음식이 하나같이 나와 너무 잘 맞는다.
밥을 다 먹고 다시 사밀과 이야기를 했는데, 우리는 서로 다른 차를 타고 있어서 본인이 직접 우리 차 기사님한테 나를 바자르 쿠르간에 내려달라고 하겠다고 했다. 잠시 뒤 기사님이 밥을 먹고 차에 타려고 하자, 사밀이 직접 나서 이 친구를 바자르 쿠르간에 내려달라고 이야기를 해줬다. 기사님도 까레이츠? 바자르 쿠르간? 하더니 알았다고 하면서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좋은 거겠지, 하고 사밀과 인사를 한 뒤 차에 탔다.
사밀 말로는 이 날 바로 아슬란밥에 가서 구경을 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때 시간이 1시였고 도착하면 4~5시는 될 텐데 아슬란밥까지 갔다가 다시 잘랄아바드로 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일단 숙소 문제를 해결했어야 했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모르는데다가 숙소 자리도 많이 남아있어 예약을 해두지는 않았다. 예전같았으면 계획에 뭔가 문제가 생겼을 때 굉장히 불안해 했을 것 같은데, 계획대로 되는 일 없는 중앙아시아에 2주 넘게 있다보니 그냥 아무 생각이 없어졌다.
차는 계속 달려 키르기즈스탄 중서부의 톡토굴에 도착했다. 톡토굴은 바로 옆에 톡토굴 호수를 접하고 있어, 이쪽 풍경도 굉장히 기대를 많이 하고 있었다.
아, 과연 이쪽도 그 기대에 부응하는 풍경이었다. 비슈케크에서 출발해 3300미터의 터널을 통과하기 전에도 너무 멋진 풍경을 많이 봐서 감흥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이쪽도 풍경이 정말 대단하다. 정말...키르기즈스탄 너무 예쁘다. 나린강을 따라 또다시 협곡을 따라 달렸는데, 참 장관이었다. 창문을 내리고 풍경을 온전히 즐기고 싶었다. 나이가 들면 키르기즈스탄 렌트카 여행을 다시 오고 싶다.






끝에는 수력발전소가 보였다. 자연호수가 아니라 인공댐이었다는걸 이때 알았다.
이때쯤엔 슬슬 마슈르트카 안이 무척 더워졌다. 마슈르트카는 앞좌석만 창문을 열 수 있고, 천장에 뚜껑(?) 같은 것이 두 개 있어 환기가 되기는 하지만, 열기가 도통 빠져나가지를 못한다. 그간의 경험으로 아침에 춥더라도 반팔 반바지를 입고 갔는데도 너무나도 더웠다. 심지어 목도 너무 말랐는데 물도 챙기지 않아 죽을 것 같았다. 이대로 조금만 더 가면 민폐를 무릅쓰고 옆자리 사람한테 물을 달라고 얘기할 뻔 한 순간 휴게소를 한 번 들렀다. 얼른 시원한 물을 사서(40솜) 바로 원샷했다. 중앙아시아가 그나마 다행인게, 그늘에만 들어가면 바람이 시원해서 아무리 더워도 살만하다. 바깥에서 물을 마시며 쉬다가 다시 차에 탔다.

잘랄아바드가 가까워지자 슬슬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한다.

차 안의 열기는 여전히 가시지 않는다. 5시 20분, 7시 40분에 비슈케크에서 출발한 차에서 내려 키르기즈스탄 남부 잘랄아바드 근교의 바자르 쿠르간에 도착했다. 점심시간 1시간을 제외하더라도 거의 9시간이 걸리는 여정이었다. 오는 길이 무척 힘들었지만... 한 번쯤은 육로로 와볼만하다. 다음에 이 길을 또 지나야한다면 무조건 비행기로, 안되면 택시로 가겠다. 마슈르트카는 안 되겠다.
마슈르트카를 타고 오면서 키르기즈스탄이라는 나라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었다. 정말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는데, 땅이 이래서야 도저히 경제가 발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국토를 개발하고 경제를 발전시키려면 무엇보다도 도로망, 특히 대규모로 화물을 운송할 수 있는 강이 있거나 철도가 발달해야 할 텐데, 이 나라는 내륙국인데다가 국토가 온통 산으로 뒤덮혀 철도를 개발할 수도 없고... 물류 유통이 도저히 잘 될 수가 없을 것 같다. 게다가 바로 옆나라인 중국에서 밀려들어오는 값싼 공산품 때문에 산업이 발전하기도 힘들어보인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나라는 중국에 경제적으로 완전히 종속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내가 이 나라의 지도층이라면 국가 대계를 어떻게 설계해 나가야 할까? 관광산업에 인프라를 투자해야 할까? 정말 어렵다. 한국도 정말 많은 문제와 갈등이 있지만, 한국에서 태어난 게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기사님은 사밀이 미리 얘기해준 지점에서 나를 내려줬다. 내리니 사밀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슈케크에서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오는건지, 가전제품을 잔뜩 들고 있었다. 아슬란밥으로 가기 늦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아직 충분하다면서 일단 자기네 집에 짐을 두고 가자고 했다. 굉장히 의문스러웠지만 택시를 불렀다길래 일단 탔다.

택시 기사님이랑 계속 이야기를 했는데, 대충 들리는 말은 한국에서 온 친구냐고 물어보는 것 같았다. 그 뒤로는 아예 못 알아들었는데, 사밀이 몇 마디 통역을 해줘서 나도 택시기사 아저씨랑 이야기를 좀 했다. 보통 다 한국에서 일하고 싶어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행운을 빌어주고 택시에서 내렸다.
그렇게 사밀과 함께 사밀네 집에 도착했다. 당최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몰랐는데 일단 들어갔다.


집에서 아무렇게나 기르는 포도가 샤인머스켓만큼 달다. 깜짝 놀랐다.
사밀의 어머니와 인사를 하고 난 뒤, 나보고도 짐을 방에 두라는거다?!?! 엥? 했는데 자기가 나를 초대한 거라면서, 편하게 생각하라고 했다. 이건 곽튜브에서나 본 광경인데 이게 나한테도? 하면서 어...땡큐땡큐 하면서 가방을 방에 내려뒀다. 이래도 되나? 내가 이 친구를 믿어도 되나? 갑자기 나한테 왜 이러나? 하고 머릿속이 온통 물음표로 가득했는데 사밀이 아슬란밥으로 가자면서, 추울테니 짐을 챙기라길래, 바람막이를 챙기고 항상 챙겨다니는 힙색에 귀중품을 넣고 사밀과 함께 길을 나섰다. 내가 찾아본 바로는 아슬란밥까지 차타고 한 시간 이상을 가야하는데, 밤에 봐야 예쁜가? 별 생각을 하면서 사밀을 따라갔다.
이 친구가 영어를 하기는 하는데, 사실 영어를 그렇게 잘하는건 아니라 대화는 거의 다 번역기로 했다. 일단 따라오라고 하길래 더 물어보지도 못하고 그냥 따라가기만 했다.

길이 무척 복잡했다. 사밀 뒤꽁무니만 열심히 쫓아다녔다. 10분 정도 걸어가니 마슈르트카 정류장이 나왔다. 혼자였으면 절대 못 찾았을 것 같다.


이때 알았는데, 사밀의 계획은 이날 아슬란밥으로 가서 하루 자고 아침 일찍 아슬란밥을 구경하는 것이었다. 나는 뭐 하는건지도 모르고 그냥 몸만 따라가서 씻을거리는 하나도 없고, 심지어 충전기도 챙겨가지 않은 상태였다. 다행히 보조배터리를 챙겨갔지만, 이것도 버스에서부터 계속 사용했던 상태였다. 이렇게만 보면 사밀이 나를 무작정 밀어붙인 것처럼 보일지는 모르지만 사실 이 친구는 나를 굉장히 많이 배려해주고 있어서 너무 고마웠다. 이날 처음 만난 여행자에게 이렇게까지 친절하게 해주는게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사실 사밀의 계획이 좋아보였다. 이때도 이 친구를 이렇게까지 믿어도 될 지 좀 걱정이 되었지만 이미 나는 될대로 되라지, 반쯤 포기한 상태여서 그냥 바로 가자고 했다.
그렇지만 마슈르트카는 이미 다 떠난 상태, 사밀을 따라 조금 더 걸어가 택시 정류장에 도착했다. 마슈르트카 요금이 인당 100솜인데 겨우 인당 200솜에 택시를 잡은 사밀. 나 혼자였다면 애초에 아슬란밥이라는 곳이 있는줄도 몰랐겠지만, 알았어도 마슈르트카가 있는줄은 더더욱 몰랐을테고, 택시를 탔다면 얼마나 높은 가격을 불렀을지 상상도 안된다. 고마워서 내가 택시비를 다 냈다.

사밀과는 계속 번역기로 대화했다. 대화해보니까 나를 어떻게 해서 귀중품을 털어갈 친구로는 보이지 않긴 했다.

그런데 택시가 가던 길에 갑자기 차를 세웠다. 웬 모스크 옆에 차를 세웠길래 사밀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 택시 기사 아저씨가 기도를 해야해서, 조수석에 앉은 친구?처럼 보이는 사람과 모스크에 들어갔다는거다. 조금 어이가 없었는데 마침 주변 풍경도 예뻐서 사진이나 찍자, 하고 택시에서 내렸다.




사진을 다 찍고 차 근처에 서있는데 갑자기 모스크 안에서 사람들이 나오더니 뭐라뭐라 이야기를 했다. 사밀이 번역해주기를 나보고 모스크 안에 들어와보라고 했다는 거다. 오? 궁금한데? 하고 들어갔다. 엄청 조용한 가운데 사밀이 만나는 사람마다 악수를 하고 앗살람말레이쿰 해서 나도 똑같이 악수하며 인사를 했다. 모스크의 지도자?처럼 보이는 사람이 나와 사밀을 데리고 앉혔다. 무릎꿇고 앉아서(ㅋㅋ) 이야기를 들었다. 그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사밀이 번역해줬는데, 종교를 묻길래 나는 종교가 없지만 이슬람교도들은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보다 종교가 없는 사람을 더 죄악시한다는 이야기를 들어 불교라고 이야기했다. 불교는 적이 없으니까... 지도자가 알라가 세상을 창조한 이야기를 하면서 계속 뭐라뭐라 했는데, 사밀이 조금 번역하더니 대충 알아들은척 하라고 해서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잠시 뒤 사밀이 가야한다고 말하면서 나를 데리고 나왔다. 이 사람이 나한테 알라를 믿는다는 증언?을 말하게 하려고 했는데, 본인은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에게 그걸 강요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면서 중간에 나를 데리고 나왔다고 했다. 난 아무 생각없었는데 그래도 날 생각해줘서 참 고마웠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되게 좋아보였다. 들어오는 사람마다 이방인을 신기하게 쳐다보기는 했지만 다들 악수를 청하며 앗살람말레이쿰, 하며 인사하고 인상도 굉장히 인자해보였다. 아무래도 이슬람에 대해 편견이 있었는데, 중앙아시아 지역 무슬림들은 중동의 광신도들에 비하면 굉장히 온건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사밀만 해도 나를 불교신자로 생각하고 굉장히 존중해줬다.
키르기즈스탄 남부로 내려오니 북부보다 무슬림 색채가 훨씬 강한게 느껴진다. 여성들은 대부분 히잡을 쓰고 있고, 모스크도 훨씬 자주 보인다. 이식쿨 주변 도시나 비슈케크에서는 오히려 히잡을 쓴 여성을 보기가 힘들었고, 모스크는 있었지만 이슬람 국가에 있다는 느낌은 전혀 안들었는데 바자르 쿠르간에 도착해서 거리를 보니 이제서야 실감이 난다. 그렇지만 또 놀라운건, 이슬람 색채가 강하지만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들도 보이고, 이들이 자유롭게 거리를 걸어다니는 걸 보면 비-무슬림에 대한 포용이 이미 자연스러운 것 같다.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 정겹게 느껴져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시간이 좀 지난 뒤 운전기사가 나왔다. 택시를 타고 가는 중 기사님이 모스크에 들러 기도하느라 정체될 줄은 상상도 못했지만, 신기한 경험을 해서 재밌었다. 사밀은 시간이 늦어지는 것에 조금 불쾌해보였지만, 나는 아무래도 좋았다. 너무 특별한 경험을 하고 있어서, 사밀을 만나서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슬란밥으로 가는 풍경도 너무나 아름다웠다. 종종 가축을 모는 유목민들의 행렬에 차를 멈춰 기다려야 하고, 비포장도로에서 속력을 내느라 차가 덜컹거렸지만 그런건 상관없었다. 아무 정보도 없이, 그저 현지에서 만난 친구가 가자는 도시로 필요한 짐도 챙기지 않고 이동하고 있는 그 순간이 오히려 너무나 행복했다. 여행하면서 한국, 포근한 집, 친구들, 부모님 생각이 정말 많이 났다. 익숙함 속에서 오는 편안함과 즐거움을 다시 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한 치 알 수 없는 미래에 부딪히고 새로운 길을 떠나는 도전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오는 설렘이 좋았다. 심지어는 여행이 현실에 안주하고 멈춰있을 것인가 /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도전할 것인가라는 커다란 선택에까지 비견될 수 있는게 아닌가? 하는 발칙한 상상까지 했다.
하여튼, 가는 길에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고 또 많은 걸 느꼈다. 아슬란밥으로의 여정이 일종의 순례로까지 느껴졌다면 믿을 수 있을까?
아슬란밥에 도착하자, 택시 승객들이 하나 둘 내렸다. 지도를 계속 확인했는데, 이쯤에서는 내리겠지, 하는 곳을 계속 지나치길래 조금씩 걱정이 됐다. 사밀이 택시 기사랑 계속 이야기하길래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했지만, 내게는 번역을 안해줘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몰랐다. 게스트하우스가 모여있는 곳을 다 지나 마을 거의 끝에 차가 섰는데, 사밀이 내리라면서 그간의 이야기를 번역해서 알려줬다.
기사님하고 이야기 했는데, 게스트하우스를 잡는 것보다 본인 집의 손님방을 인당 300솜(5000원도 안한다)에 내어줄테니 택시비 인당 200솜과 함께 총 1000솜(16000원)을 내는 건 어떻냐, 그리고 내일 아슬란밥을 여행할거면 인당 1000솜에 하루 종일 가이드를 해주겠다고 했다는거다. 사밀은 기사님 집에서 자는건 좋은 것 같은데 아슬란밥 가이드를 맡기기에는 좀 비싸다고 생각했고, 나도 그 생각에 동의했다. 결국 기사님 집에서 하루 신세를 지고 아침 일찍 일어나 아슬란밥 마을을 돌아다니기로 했다.
주변 게스트하우스 시세가 최소 인당 1200솜인데, 300솜에 하루 잘 수 있다는건 너무나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모르는 사람 집에서 자는게 조금 무섭긴 했는데, 내가 할 수 있는건 사밀을 믿는 것밖에 없어서 하자는대로 했다. 계속 내 의견을 묻고 신경써줘서 믿을 수밖에 없었다.
작은 슈퍼에서 물과 저녁으로 먹을 빵 조금을 사고(배가 많이 고프지 않았고 먹을만한 것도 없었다) 기사님 집으로 들어갔다. 기사님 아이들이 이불을 가져다줘서 손님방에 자리를 폈다.

사밀은 라면봉지를 샀어서 뜨거운 물을 줄 수 있겠냐고 물었는데, 감사하게도 차와 쁠롭을 내어주셨다.

이게 웬 횡재냐! 하고 라면과 빵은 집어치우고 쁠롭을 먹었다. 정말 맛있었다. 홈메이드 쁠롭이 웬만한 식당 못지 않다. 건포도와 병아리콩 같은 것이 들어가있었는데 이게 굉장히 별미였다. 사밀과 한 그릇을 바로 해치우고, 뭐 씻을거리가 없어 씻지도 않은 채 그냥 잠들었다. 전날 아침 일찍 일어난다고 5시간도 못 잔데다가, 마슈르트카 안에서도 자리가 불편해 얼마 못 잤다. 이야기를 하려해도 휴대폰 배터리가 점점 부족해져가서 번역기를 쓰기도 힘들었고, 그래서 그냥 둘 다 일찍 잠들었다. 9시도 안돼서 잠이 들었다.
내일 살아서 일어날 수 있겠지? 생각을 잠시 하며, 내 전재산과 여권이 든 힙색을 꼭 끌어안고 잠에 들었다.
25. 9.14.(일)
다행히 살아서 눈을 떴다. 지갑, 달러, 여권, 휴대폰 모두 그대로였다. 절대 사밀을 못 믿은건 아니고..ㅋㅋ 조심하면 좋은 거니까.

7시반쯤 사밀과 함께 방을 조금 정리하고, 기사님께 인사를 드리고 집을 나섰다. 쁠롭도 주시고, 싸게 방도 내어주셔서 참 감사했다. 굉장히 험상궂게 생기셨지만 마음은 따뜻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저녁에 와서 몰랐는데, 이 마을 산세가 굉장했다. 마을 뒤를 커다란 산이 받쳐주고 있는 모양새였다. 앞으로는 강도 흐르니, 배산임수의 명당이었다.



이날은 목표는 아슬란밥의 명소 호두나무숲에 가는 거였다. 아슬란밥(Арстанбап, Arslambob)은 키르기즈스탄 제3의 도시 잘랄아바드에서 차로 30분정도 떨어진 마을 바자르 쿠르간에서 다시 50키로미터 정도를 이동해야 하는 작은 산골마을이다. 사밀이 알려준 전설에 의하면 알렉산더 대왕이 동방원정을 떠나 아슬란밥에 도착했을 때 이곳에 호두나무를 심었고, 그 이후 아슬란밥에 커다란 호두나무가 생겼다고 한다. 이곳의 호두나무숲은 무척 크고 온통 호두나무로 가득해 외국인뿐 아니라 현지인들도 굉장히 자주 놀러오는 휴양지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작은 마을에 놀이공원도 보이고 게스트하우스도 많이 보이는데다, 전국에 14개 도시에밖에 없는 CBT(키르기즈스탄의 여행정보회사)도 아슬란밥에 자리잡고 있었다. 호두나무숲으로 가기 위해서 일단 기사님 집에서 시내쪽으로 가야해서, 아침부터 계속 걸었다.



그런데 놀이공원은 더 이상 운영을 안하는건지, 출입문이 굳게 잠겨있었다.

사밀은 그런건 신경쓰지 않았다. 사진 왼쪽에 보이는 회색벽을 타고 올라가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어서(높지 않았다) 같이 벽을 올라 안으로 들어왔다. 아무도 없는 놀이공원은 언제나 무섭다. 이거야말로 정말 폐허 체험이었다. 촐폰아타에서부터 왜 이러지? 운영시즌이 끝나서 그럴까? 9월인데 벌써 성수기 끝일 것 같지는 않은데...








사밀이 계속 으슥한 곳으로 들어가길래 얘가 여기서 나를 처치하려는건가? 걱정이 돼서 사밀과 거리를 두고 뒤에서 걸어갔다. 진심으로 걱정이 됐는데 좀 가더니 자기도 무섭다면서 다시 되돌아가자고 해서 안심이 됐다. 여기서도 나를 해코지 안했으면 이젠 진짜 믿어도 되겠지... 하고 앞으로는 그런 생각 안했다 정말로.
폐허가 된 놀이공원을 나와 다시 호두나무숲쪽으로 걸어갔다.




가는 길에 작은 폭포가 있다고 해서 들러보았다. 아직 9시도 안되어 상인들이 하나도 없었다. 아니면 여기도 시즌이 끝나서 더 이상 상인들이 없는걸지도 모르겠다.






폭포 옆에 예언자가 살았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동굴이 있었다.



폭포 구경을 마치고 올라가는데 상인 한 분이 자리를 펴고 있었다. 지나가는 우리에게 뭘 하나 줬는데, 사밀이 파스테라라는 거라고 알려줬다. 과일과 설탕, 견과류를 반죽해서 얇게 말린거라고 했다.

조금 찢어주셔서 먹어봤는데 굉장히 달콤하고 과일향이 확 난다. 건포도를 되게 얇게 펴서 말아먹는 느낌? 건포도를 싫어하는데 이거는 거부감 드는 맛이 없었다.
감사하다고 말하고 다시 호두나무숲을 향해 걸어갔다.

올라가는 길에 소녀 두 명이 내려왔다. 딱봐도 외국인처럼 생겼는지 밝게 헬로, 하길래 인사해주고 월넛포레스트? 하니까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너무 귀여웠다.

계속 올라가다보니 너른 고원이 나왔다. 뒤를 돌아봤는데, 풍경이 정말 엄청났다. 숨막히는 풍경이었다. 산맥이 너무나 예뻤다...



사진을 찍으면서 계속 사밀에게, 나를 이런 곳으로 데려와줘서 고맙다고 했다. 정말 너무 고마웠다.
아름다운 풍경을 뒤로하고 계속 호두나무숲을 향해 걸어갔다.



숲에 소가 굉장히 많다. 소똥도 역시 많다. 앞만 보고 걷기에는 똥이 너무 많아서 지뢰피하는 느낌으로 수시로 땅을 확인하며 걸어야 한다.
숲에 풀이 많아서 유목민들이 이쪽에서 소를 기르는 것 같았다. 여기서 소들을 먹이고 때가 되면 그 소들을 몰고 도시로 나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전날 아슬란밥에 오는 길에 도로에 소떼가 많았던 것 같다.





길에 호두가 막 떨어져있다. 호두 씨앗을 덮는 녹색과육도 많이 떨어져있었다. 밟고다니는 재미가 있었다.



사밀 덕분에 숲을 다니면서 정말 재밌게 걸었다. 특히 자두가 너무 맛있었다. 숲에서 막 자란 자두가 이렇게 달아도 되는거야?
숲을 모두 걷기엔 너무 넓어서, 좀 돌아보다가 다시 되돌아 나왔다.

너무 예쁜 풍경을 본 장소에 다시 도착했다.


걸어가는데, 맵스미에 뷰포인트가 뜨길래 그곳을 향해 사밀과 걸어갔다.

잠긴 문을 통과해 절벽 끝으로 걸어갔다. Panorama point라고 되어있었는데, 풍경이 정말 대단했다. 산골짜기 협곡에 자리잡은 아슬란밥 마을 풍경이 내려다보이는 절벽이었는데, 정말 너무 대단히 아름다웠다. 연신 사밀에게 고맙다는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절벽에서 내려와 이젠 마을로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내려가는 길에도 뷰포인트가 계속 있었다.






8시쯤 출발한 호두나무숲 탐방은 12시쯤 끝났다. 둘다 엄청 목마르고 배고파서 뭐라도 먹어야 했다. 길에서 나와 시내로 걸어갔다.

시내 마트에서 물을 한 병 사서 나눠먹었다. 여기서 점심을 먹을까 바자르 쿠르간에 내려가서 먹을까 고민했는데, 사밀이 바자르 쿠르간에 맛있는 식당을 안다고 해서 그곳에 가기로 했다.
시내에 바자르 쿠르간으로 가는 마슈르트카가 모여있었다. 거리가 꽤 있어서 그런지 요금은 100솜. 마슈르트카에 와서 아슬란밥에 방문한 블로그 후기를 찾아봤는데, 나와 비슷한 코스로 간 사람이 있어서 재밌게 읽었다.

200솜을 주고 택시로 왔을 때는 도로 상태가 그렇게 나쁘지는 않게 느껴졌는데, 마슈르트카를 타고가니 정말 무지하게 흔들렸다. 200솜밖에 안받은건 택시 아저씨에게 많이 감사해야 할 것 같다.
흔들리는 차에서 핸드폰을 볼 수도 없어서 바깥 풍경을 바라봤다. 다시봐도 풍경이 아름다웠다.
1시가 좀 넘어서 바자르 쿠르간에 도착했다. 밥을 먹기 전에 사밀이 키르기즈스탄의 전통 음료를 먹어보겠냐고 해서 같이 먹으러 갔다.

자르마를 먹고 사밀이 추천해준 식당으로 갔다.

남부는 북부에 비해 물가가 훨씬 싼 것 같았다. 북부에서는 보통 샤슬릭 한 꼬치에 싼 것이 280솜, 비싸면 400솜까지 받는데 여기서는 샤슬릭 한 꼬치가 130솜~170솜밖에 안했다. 바로 샤슬릭을 먹으려고 했더니 점심에는 안판다고 해서 꾸르닥을 시켰다. 꾸르닥은 우리나라의 갈비찜 같은 음식인데, 전부터 먹고싶었지만 기회가 없어서 못 먹었던 것을 여기 와서 시도해봤다.


정말 맛있었다. 이건 고기도 엄청 부드러웠다. 사밀은 남부가 북부보다 가격도 싸고 음식도 맛있다고 했다. 그렇다면서 엄청 칭찬하고 계속 밥을 먹었다. 비슈케크에서는 꾸르닥이 거의 700솜 가까이 하는데, 여기는 단돈 400솜이었다. 착한 가격에 맛도 좋아 정말 맛있게 먹었다. 사밀에게 고마워서, 호의에 비하면 약소하지만 내가 점심을 샀다.
그렇게 사밀네 집으로 돌아와 이틀만에 겨우 샤워를 하고 옷을 빨래했다. 또 감사하게도 세탁기로 내 옷을 같이 빨아줬다. 사밀의 은혜가 끝이 없구나.
오랜만에 샤워를 하고 누워있으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게다가 사밀네 집에서 기른 달디단 포도까지 같이 먹으니까 더할나위없었다.

포도를 먹고 사밀네 방에 누워서 이야기를 좀 하다가, 수박을 먹어봤냐고 하길래 먹고싶었는데 혼자 다녀서 못먹었다고 하니 바로 사밀이 사러가자고 했다. 집 앞에 수박트럭이 있어서 바로 사왔다.


수박을 사와서 반으로 자르고 랩으로 덮어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오래 사귄 친구랑 여행 온 것 같이 너무 재밌었다.
냉장고에 수박을 넣어두고 누워서 휴대폰을 보다가, 사밀이 낮잠을 자길래 나는 블로그를 좀 쓰다 사밀의 책상에 앉아 공부를 했다. Brunn-Minkowski 부등식의 증명 섹션이었는데, 이 부분은 부록이라 그런지 설명이 좀 불친절하고 건너뛰는 부분이 많아 이해하는데 좀 애를 먹었다. 사실 아직도 몇 개 생각할 부분이 남아있다.
공부를 하다보니 어느새 7시가 되었는데 마침 사밀이 깼다. 수박을 먹자길래, 사밀네 어머니와 함께 저녁 겸 수박을 먹었다. 치킨수프를 함께 주셔서 맛있게 먹었다. 치킨수프가 삼계탕과 굉장히 비슷한 맛이 났다. 거의 똑같았다. 닭가슴살이 들어있었는데 그것도 굉장히 부드럽고 국물도 맛있었다. 다 비우고 난 뒤 본격적으로 수박을 먹었다.

하, 너무 맛있었다. 반통을 잘라먹었는데 내가 그 중 반 이상을 먹은 것 같다. 수박을 먹다가 사밀이 빵을 가져왔는데, 빵이랑 수박을 같이 먹어보라길래 엥?하고 먹었는데 이것도 또 미친놈처럼 맛있었다. 수박의 수분이 빵을 싹 적셔주고, 달콤한 맛이 남아 빵과 함께 먹으니 잼을 발라먹는 것보다 더 달게 느껴졌다. 중앙아시아 빵인 난이랑 함께 먹으니 너무 맛있었다. 계속 극찬을 하면서 수박과 빵을 먹었다. 감사함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그런데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는건지, 악재가 생겼다. 좀 큰 악재가... 저녁 먹고 좀 쉬다가, 사밀이 근처 공원을 산책하자고 해서 맨발로 샌들을 신고 가는 길에 길가의 턱에 엄지발가락을 찧었는데, 생각보다 문제가 커 발가락이 찢어지고 피가 철철 났다. 겨우 다시 집으로 돌아가 물론 씻고 가져간 소독솜과 연고, 밴드로 조치를 했다.

걸으면 안 될 것 같았는데 그래도 공원이 보고싶어서 만류하는 사밀을 안심시키고 다시 길을 떠났다. 사밀네 집에서 10분?정도 떨어진 공원이었다.


공원 안에 유명한 식당이 있다고 해서 들어가봤다.

샤슬릭을 하아씩 시키고 이 식당의 명물이라는 아이스크림도 하나씩 시켰다. 가격은 겨우 550솜(9000원 정도). 이것도 내가 샀다.
샤슬릭 역시 굉장히 부드러워서 맛있었는데, 사진을 안찍었다. 이곳 아이스크림에 대해 사밀이 굉장히 칭찬을 해서 기대하겠다고 하고 먹었는데, 오! 굉장히 맛있었다. 우유맛이 잘 느껴지고 고소했다. 과일도 달아서 맛있었다. 칭찬을 하는 이유가 느껴지는 맛이었다.

두 번째 저녁을 먹고 다시 공원을 둘러봤다.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야 할 때



집에 돌아와서 다친 곳을 다시 치료했다. 생각보다 상처가 꽤 커서 걱정됐다. 발톱에 피멍이 든 건 아니고 발가락 살이 찢어진 상처였다. 다행히 마데카솔을 가져와서 소독한 후에 연고를 듬뿍 바르고 밴드를 붙였다. 한동안은 많이 못 걸을 것 같았다. 덧나버리면 큰일난다... 17일 수요일부터 파미르고원 투어가 시작하는데 걱정이 좀 됐다. 일단 그 전까지 최대한 적게 걸어야 할 것 같다. 속상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오쉬를 가는데, 오쉬 시내는 구경을 많이 못 할 것 같아 너무 아쉬웠다. 일단 오쉬에 가면 병원부터 가야 할 것 같다. 조금 더 조심할 걸, 후회를 많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