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9.18.(금)
카라쿨→ 악바이탈 패스(4660m)→ 무르갑(3900m)→ 알리추르(3950m)
알리추르(Allichur) 마을에 도착해서 글을 쓴다. 슬슬 고산병의 무게에 짓눌린다. 숨 쉬는게 점점 힘들어지고 가슴이 답답하다. 두통이 있거나 환각, 환청같은 심한 증상은 없지만 숨 쉬는게 힘들다. 조금만 움직여도 금새 숨이 가빠오고 가슴이 아프다.
알리추르에 도착해서 키르기즈스탄 카라콜에서 산 고산병약을 두 알 먹었다.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주는 혈관이완제는 한국에서 처방받아야 한다고 했고, 카라콜에서 산 약은 단순 진통제라고 들었다. 그렇지만 이거라도 먹지 않으면 너무 힘들어질 것 같다. 고산증세가 시작되는 해발3000미터 이상에 들어선지 50시간이 넘자 증세가 점점 시작되는 것 같다. 앞으로 적어도 이틀은 고산지대에 있어야 하는데, 잘 버틸 수 있을까? 머리도 슬슬 아파오는 것 같기도 하고...
경치는 여전히 너무 멋지다. 이런 경치를 며칠간 일상적으로 보고나면 앞으로 멋지다는 자연을 보고 감동할 수 있을까 걱정될 정도다. 앞으로 아무런 감흥이 들지 않는건 아닌가 걱정될 정도로 아름다운 자연이다. 시간과 기온 그리고 물이 만들어낸 걸작품들이 파미르 하이웨이를 따라 끝없이 펼쳐져있다. 솟아오른 산들 사이로 도로를 만들기에 충분한 평원이 평쳐져 있다는 것도 신기하다. 산들의 색깔도 다양하고, 빙하와 만년설은 이제 일상이어서 놀랍지도 않다.
아침 6시에 눈이 떠졌다. 해는 이미 떠오르고 있었는데, 할 것도 없어서 카라쿨 마을 산책을 했다.







카라쿨 호수까지 걸어가고 싶었지만 게스트하우스에서 호수까지 거리가 꽤 멀었고, 너무너무 추워서 마을 구경만 잠깐 하고 들어왔다. 방에 들어와 짐을 싸다가 맛있는 냄새가 풍겨와 부엌으로 향했다. 이날의 아침은 계란프라이 3개에 빵과 차였다. 오랜만에 맛보는 단백질이 맛있어 금새 해치웠다. 잼이 없어서 빵을 많이 못먹었다. 조금 아쉬워 방에 들어와서 초코파이 하나를 먹었는데, 중앙아시아로 수출된 초코파이는 개당 200원꼴에 조금 더 작았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한국에서 먹던 초코파이가 한봉지에 250칼로리 정도였는데, 이건 한봉지에 120칼로리니 절반정도 사이즈가 아닐까 싶다. 맛은 너무 좋았다. 거의 훈련소에서 먹던 초코파이 맛이 났다. 나중에 알았는데, 오리온 초코파이가 아니라 롯데 초코파이여서 맛이 다른 느낌이 났던 것 같다. 그런데 롯데 초코파이도 생각보다 굉장히 맛있었다.
8시 반쯤 길을 떠났다. 가는길에 카라쿨 호수가 잘보이는 곳에 멈춰 사진을 찍었다.



무르갑으로 가는 길 내내 풍경이 멋진 곳이 있으면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었는데, 여행사를 통해 여행할 때만 가질 수 있는 특권이 아닌가 싶다. 영국인 할머니 조는 사진을 무척 좋아하는지 카메라 두 대를 들고 열심히 사진을 찍었고, 스팟마다 차를 세워달라고 가이드에게 부탁까지 했다. 덕분에 나도 함께 멋진 풍경을 즐길 수 있었다. 풍경은 역시 말해봐야 입만 아프다.









무르갑에 도착하기 한 시간쯤 전, 파미르 하이웨이에서 가장 높은 지점인 악바이탈 패스(Ak-Baital pass)를 지나갔다.






바람이 너무 강하게 불고, 정말 조금만 뛰어도 숨이 금새 가빠진다. 인생에서 가장 높은 고도에 올라온 것이었다.


그렇게 끝없이 무르갑을 향해 달려간다.


11시 10분쯤 무르갑(Murgob)에 도착했다. 점심으로 야크 고기를 먹게 해준다고 해서 기대를 하고 있었다. 무르갑의 바자르 근처 식당에서 야크 고기로 만든 꾸르닥을 먹었는데, 야크 고기는 너무 질겼다.


특히 힘줄 맛이 이상해서 계속 속이 이상했다. 오히려 함께 나온 감자튀김이 맛있었다. 엄청 담백하고 고소해서, 거의 뉴욕에서 파이브가이즈 갔을 때 먹었던 감자튀김만큼 맛있었다. 야크 고기는 먹을땐 별 생각 없었는데, 하루 이틀 지나니 속이 너무 안 좋아져 괜히 먹었나 싶다. 그냥 양고기나 소고기가 최고다. 나중엔 결국 배탈이 났다. 사실 이건 고산병 때문일지도...
점심을 먹고 한시간정도 무르갑 마을을 돌아다녔다. 파미르 제2의 도시 무르갑에서 환전도 하고, 빠니보틀 영상에서 봤던 무르갑 풍경도 떠올리면서 즐겁게 산책했다.














무르갑이 파미르 제2의 도시로 성장한건 파미르 하이웨이 본류와 중국(콜마 패스)으로 가는 도로가 나뉘는 분기였기 때문이다. 도로가 분기되는 지점을 찾아가봤다.









이후 약속시간이 되어 다시 차로 돌아갔다. 무르갑을 떠나고 얼마 안있어 GBAO 체크포인트에 도착했다. 우리의 가이드 샤딕이 모든 절차를 처리해줘서 차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후 파미르 고원의 정중앙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알리추르까지 100키로 이상을 달려간다. 도로 상태가 정말 좋지 않았다. 말로만 듣던, 중국에서 온 화물과 자동차를 파미르 하이웨이를 통해 운송하는 풍경도 봤다.





4시쯤 알리추르에 도착했다. 이때부터 슬슬 가슴이 답답해지고 머리가 아파서 고산병약을 먹고, 컨디션이 너무 안좋아 짐을 풀고 5시까지 잤다.
뭐라도 하고 싶어서 알리추르 마을을 돌아보는데, 너무 춥고 오한이 들어 숙소로 돌아왔다.










아무래도 감기가 틀림없다. 그간 너무 추운 곳에서 자서 그런지 감기가 제대로 든 것 같았다. 오한이 심해져서인지 약을 먹어서인지 가슴이 답답한 것은 싹 내려갔지만, 점심에 먹은 것이 계속해서 부대낀다. 챙겨간 타이레놀을 먹고 누워있었다.
점심에 먹은 야크 고기때문인지 계속 속이 안좋았다. 고기나 기름 냄새만 맡아도 메스꺼워졌다. 저녁으로는 스프가 나와서 빵을 적셔 먹었다. 스프에는 녹두?같은 콩이 감자, 당근과 함께 들어있었는데 그것이 고소하게 씹히는 맛이 좋았다.

특히 빵을 적셔먹어도 괜찮았다. 특히 차를 마시니 속이 따뜻해져서 살 것 같았다. 차를 몇 잔을 마신지 모르겠다. 저녁에 얼마나 고통을 받을지 모른채 좋다고 막 마셨었다...
저녁을 먹고 속이 좀 나아져서 샤워를 하러 갔다. 내가 묵은 알리추르의 Sher's Inn은 화장실과 샤워장이 바깥에 있었는데, 추운 바깥을 걸어가야 한다는 단점을 제하고라도 무려 사우나가 있길래 미국인 제이슨과 함께 샤워를 하면서 사우나를 했다. 사우나를 할 때는 약기운이 남아있는데다가 피로가 싹 풀리는 기분이라 너무 좋았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사우나를 하고 수학공부를 좀 하다보니 머리가 너무 아프고 가슴이 답답했다. 9시가 좀 안 된 시각에 열이 심하게 오르는 것 같아 공부를 접고 일찍 잠이나 자야겠다 하고 침대에 누웠다. 한참 자고 소변이 마려워 일어나보니 겨우 40분?쯤 지나있었다. 이때부터 뭔가 잘못된 것 같았다. 열이 심하게 올라 타이레놀을 하나 더 삼키고 다시 잠에 들었는데, 이후로도 거의 한 시간 간격으로 계속 잠에서 깨 바깥에 있는 화장실을 다녀왔다. 방은 난방이 안돼서 몇겹으로 껴입어도 춥고, 화장실을 가려고 밖에 나가면 또 추위가 살을 에는 듯하고, 잠은 제대로 들지도 않는 상태였다. 고산증세 때문인지 숨도 잘 안쉬어지고 열은 계속 올라서 너무 힘들었다. 같은 방을 쓴 Cho에게도 무척 미안했지만... 내가 너무 힘들어서 당시에는 남을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좀 시간이 흐른 것 같아서 시계를 보니 아직 새벽 1시도 안되어있고, 억지로 잠을 청해도 금새 일어나 화장실에 가야했다. 속이 풀어지는 느낌이 든다고 저녁 먹을 때 차를 너무 많이 마신게 문제였다. 고산증세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날 밤이 너무 힘들었다. 다음날이면 고도가 1000미터 이상 낮아진 곳으로 간다는 생각으로 버텼던 것 같다. 훈련소 첫날 밤이 인생에서 제일 힘든 밤일 줄 알았는데, 이날 저녁이 훨씬 더 힘들었다. 수면제를 먹어본 적도 없지만, 수면제가 너무 먹고싶었다. 여행와서 이런 컨디션이면 안되는데 하는 걱정도 많았다. 어떻게 밤을 지새운건지 모르겠다. 고산병이 정말 무섭다.
25. 9.20.(토)
알리추르→ 부룬쿨 호수(3900m)→ 카르가쉬 고원(4500m)→ 와칸 회랑(3500m)→ 랑가르(종 마을 / 2900m)
요일 감각이 점점 사라져간다. 일기를 쓸 때가 되어서야 이날이 토요일이라는걸 알았다.
해발고도 2900미터에 위치한, 와칸 회랑에서 가장 큰 마을 중 하나인 랑가르 근처의 작은 마을 종(Zong)에서 글을 적는다. 고도가 낮아지는게 이렇게 편할 줄이야. 가슴에 답답한 느낌은 완전히 사라졌고, 점점 심해지던 두통도 없다. 감기 기운은 조금 남아있지만 진통제로 버틸만하다. 고산지대는 정말 힘든거였다...
알리추르의 Sher's Inn에서 맞은 아침은 여행 중 가장 힘든 아침이었다. 기름 냄새가 역겨워 토할 것 같아 계란프라이는 먹지도 않고, 따뜻한 홍차에 빵을 몇 입 먹다 제쳐두고 초코파이를 한 봉지 먹었다. 초코파이 안 사왔으면 어쩔뻔했나, 덕분에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있었다.
내 상태가 좋지 않은걸 눈치챘는지 다들 한마디씩 건넸다. 너무 친절히게 대해주고 약이나, 비타민c가 필요하다면서 과일을 챙겨줬다. 국적에 관계없이 여행자들은 정말 친절했다. 아직까지도 고맙다.
감기약과 고산병약을 챙겨먹은 뒤(사실 얘네들을 같이 먹어도 되는지는 모르는데 내 상황이 그런걸 따질 상황이 아니라 그냥 먹었다..ㅋㅋ) 게스트하우스를 나섰다. 파미르 지역의 게스트하우스 1박 요금은 250소모니, 대략 28달러라 비싼 편이지만 너무 오지인데다가 아침 저녁을 챙겨준다는걸 생각하면 또 합리적이라고 느껴진다.
이날의 일정은 해발고도 4000미터에 위치한 부룬쿨 호수를 둘러보고, 카르가쉬 고원의 파노라마 포인트 히치하이킹을 한 뒤 와칸회랑을 건너 랑가르까지 도착하는 것이었다. 고산지대에 접어든지 만으로 3일이 넘자, 약 기운 때문인지는 몰라도 가슴이 답답한 것은 많이 해소되었지만 두통이 무척 심해지고 어지러워졌다. 거친 오프로드를 달리다보니 머리가 많이 흔들려서 힘들었다. 좋지 않은 컨디션을 약 기운으로 겨우 붙들어매고 차를 타고 파미르를 달렸다. 알리추르에서 부룬쿨 호수로 가는 길은 전부터 보던 풍경과 비슷해서 그냥 잠을 잤다. 예전같았으면 넋놓고 봤을 풍경이었을 텐데...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여기에 어제 저녁부터 속이 끓었는데, 결국에는 아침에 배탈이 제대로 났다. 아무래도 야크고기가 내게는 안맞았던 것 같다. 아직까지 생각만으로도 메스꺼워진다.


알리추르에서 1시간 정도 달리면, 파미르 하이웨이와 와칸회랑으로 가는 도로가 분기되는 지점에 도착한다. 분기점에서 도로에서 벗어나 북쪽으로 30분정도 오프로드를 달리면 부룬쿨 호수와 그에 접한 부룬쿨 마을에 도착한다. 호수 물 색이 너무 예뻤는데 그냥 호수였고, 주위에 산이 멋지긴 했다.




약기운이 점점 들기 시작해 컨디션이 좋아졌는데, 호수를 배경으로 투어에 참여한 인원 모두가 모여 단체사진을 찍었다. 이후 부룬쿨 마을을 잠시 둘러봤다.







정처없이 걷다보니 Cho와 이야기하고 있는 할머니가 보여 다가갔다. Cho에게 들어보니 본인 사진을 찍어달랬단다. 간단한 러시아어 회화 스킬을 뽐내며 이야기를 조금 했는데, 러시아어를 잘한다고 하시길래 기분이 좋아졌다. 배워놓길 참 잘했다.
부룬쿨 호수 근처에는 최근 타지키스탄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는 야시쿨 호수가 있는데, 120소모니(15달러 정도)의 입장료가 있다고 했다. 가이드는 부룬쿨 호수와 크게 다를게 없다고 해서,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야시쿨 호수는 건너뛰기도 했다.
이후 우리는 다시 분기점으로 돌아와, 파미르 하이웨이를 벗어나 아프가니스탄과의 국경으로 향했다. 이쪽 도로에 비하면 파미르 하이웨이는 아우토반이었다. 이걸 과연 길이라고 할 수 있을지, 지도에는 고속도로 색깔이 칠해져있는데 이게 합당한건지 고민하게 만드는 길 상태였다. 타지키스탄은 키르기즈스탄에 비해서도 도로 상태가 훨씬 안좋았다.
전날 저녁에 잠을 잘 못 자 흔들리는 차 안에서도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한 채 졸고 있었다. 11시쯤 되어서 이날의 하이킹 포인트에 도착했다. 해발 4300미터가 조금 안되는 카르가쉬(Kargush) 고원에서 출발해 주위의 산맥을 둘러볼 수 있는 해발 4800미터의 파노라마 포인트까지 올라가는, 3~4시간의 하이킹 코스였다. 전부터 두통이 너무 심하고 호흡이 가빠서 이걸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이 됐는데, 이번 하이킹 코스만 끝나면 고산지대는 끝이기도 했고, 안되면 중간에 돌아와야겠다는 생각으로 일단 하이킹을 도전했다. 너무 몸을 막 쓰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파노라마 포인트가 예쁘다는 이야기를 들은데다가 여기까지 와서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처음 올라갈 때만 해도 한걸음 한걸음이 힘들고 두통이 굉장히 심해져 걱정이 많았다. 호흡을 잡는다고 계속 걸음마다 리듬을 주면서 걸었다. 그렇게 노력했는데, 나중엔 가파른 언덕을 오르자 호흡은 다 망가졌는데도 신기하게도 두통은 사라졌다. 이미 몸이 너무 힘들어서 두통을 느낄 여유가 없었을까? 다시 한 번 느꼈지만, 고산지대 하이킹은 너무 힘들다. 심지어 이번에는 가장 높은 고도에서 하이킹을 한 거라 진짜 죽는 줄 알았다. 이번 파미르 여행에서 내 한계를 자주 경험한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할 수가 없어서 그냥 올라갔다. 한계를 극복하는데엔 매몰 비용의 비중이 100에 90이다...
진짜 뒤지게 힘들게 올라오니 정상 근처에서는 바람이 무척 심하게 불었다. 중간 능선에서 본 풍경도 너무 멋져서 얼른 끝까지 올라가고 싶었다. 알마티 아씨고원은 아무 것도 아니었어... 이게 정말 고원이구나, 싶은 뷰였다.



정상까지는 얼마 안되는 거리에 고도차가 200미터가 넘는 가파른 길이었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 죽는 줄 알았다. 감기증세도 점점 심해지고 허벅지는 터질 것 같았다. 겨우 파노라마 포인트에 올라서서 본 모습 덕분에 살아있다.







아프간과의 국경이 눈덮인 산맥으로 가득했다. 소련 놈들은 도대체 왜 이런 풍경을 보고도 아프간을 침공했을까? 그냥 한 눈에 봐도 접근금지라고 적혀있는 것 같은데.
파노라마 포인트에서 한참 설산과 고원, 황량한 산책을 구경하면서 초코파이를 먹었다.

입이 너무 건조해서 먹느라 힘들었다. 감기기운이 점점 심해지고 있어서 얼른 내려가야 했다. 올라갈 때는 한시간 반정도 걸린 것 같은데 50분도 안돼서 하산을 끝냈다. 두통은 좀 더 심해져서, 얼른 타이레놀을 먹고 차에서 잤다.
한시간쯤 잤을까, 모두 돌아와서 하이킹을 마무리하고 다음 지역으로 이동했다. 아프간과의 국경을 따라 와칸 회랑(Wakhan corridor)를 지나가는 여정이었다. 영국과 러시아의 그레이트 게임이 펼쳐진 그곳으로 이동한다니, 무척 설렜다. 아프간의 지형이 너무나 험해, 그곳을 제국의 무덤이라고 부른다고 했는데 그 지형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싶었다.
아... 정말 감탄의 연속이다. 중앙아시아에 온 뒤로는 자연에 대한 관념이 정말 송두리째 바뀌고 있다. 와칸 회랑의 풍경이 너무 멋졌다. 잠이 확 달아나도록 아름다웠다.









파미르 그리고 와칸 회랑에 와서는 내가 느낀 것을 온전히 글에 담을 수 없다는 한계를 여실히 느낀다. 그렇다고 사진을 찍자니 사진도 본질적 한계가 있고, 동영상은 조금 비슷하지만 여전히 직접 보는 것만 못하다. 이런 지구화 시대에 굳이 여행을 직접 가야하는지 모르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파미르로 보내주고 싶다. 말로도 사진으로도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다.
게다가 중간중간 체크포인트가 있어 타지키스탄 군인들이 있었는데, 반경 얼마는 사진을 찍는게 금지되어 있다고 가이드가 강력히 말해서 사진을 계속 찍을수도, 차량을 잠시 멈춰 세울 수도 없었다. 그저 지나가는 풍경을 눈으로 담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다. 와칸 회랑의 풍경은 정말 너무너무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거의 몇 백미터 깊이의 협곡 사이로 도로가 구불구불 나있고, 저 멀리로는 눈덮힌 산이 우뚝 솟아있고 가끔씩 길 위로 가축을 이동시키는 유목민을 마주한다. 겨우 강 하나를 사이에 둔 아프간 땅에서 동물들이 풀을 뜯어먹고 있는데, 타지키스탄 군인들은 총을 메고 아프간쪽 국경을 감시하고 있었다. 소초가 정말 많았다. 반지의 제왕 / 왕의 귀환에서 나온 곤도르의 봉화를 실제로 보는 느낌이랄까? 영화에서 봉화가 켜지고 로한의 기마대가 펠렌노르 평원으로 도착해 돌격하는 장면을 정말 좋아했는데, 뉴질랜드가 아니라 아프가니스탄에서 반지의 제왕을 찍었어도 굉장히 아름다웠을거다.
사실 와칸 회랑에 들어선 뒤로 랑가르에 이르기까지의 풍경을 모두 담아낼 수 있다면 그 자체로 한 편의 영화일텐데. 타지키스탄 정부와 협조하면 이걸 다 찍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갑자기 영화감독의 꿈까지 생기게 하는 풍경이었다. 게다가 갑작스레 등장한 푸르른 초록과 나무 사이에 자리잡은 랑가르 마을의 풍경을 봤을 때 느낀 충격이란. 이게 리븐델이지...


와칸 회랑의 풍경은 정말 최고였다. 앞으로 내가 무얼 보든 와칸 회랑의 풍경을 이길 수 있는 곳은 없다고 확신한다. 감히 확신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여행사에 낸 가이드 및 차량비용 560여달러가 전혀 아깝지 않은 풍경이었다. 만약 후불제였다면 두 배를 냈어도 이해가 될만한 광경을 봤다. 아프가니스탄과의 국경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아프가니스탄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너무 가보고 싶었다. 나중에 나이가 들어 오토바이를 타고 파미르와 와칸 회랑을 다시 달려보고 싶다. 반드시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 가축을 키우는 유목민들을 많이 마주쳤는데, 이들은 이 풍경에도 더 이상 감흥이 없을까? 모든 것을 버리고 나도 함께 유목을 하며 경치를 즐기고 싶어지는 풍경이었다. 안빈낙도의 삶을 꿈꾸는게 이해가 되는 풍경이었다. 이 풍경을 그대로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도 아쉽다.
아이들은 외국인들에게 관심이 많은지 뛰어와서 얼굴을 보고 하이, 인사를 하고 다시 뛰어간다. 해발고도 2900미터의 랑가르는 날씨도 좋다. 고산증세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저녁에도 그렇게 춥지 않아 참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