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14. ~ 25.11.16.
슈코드라의 호스텔에서 아침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일어나 바로 짐을 싸서 나갈 준비를 했다. 전날 미리 삶아놓은 계란 5알과 빵, 요거트, 잼으로 아침을 먹고 호스텔을 나섰다. 슈코드라에서 티라나로 가는 버스는 매시 정각에 있어서 적당히 여유를 두고 출발한 것이었다.
9시에 슈코드라에서 티라나로 가는 버스를 타고, 2시간쯤 걸려 11시에 티라나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이날의 목적지는 티라나 북쪽 근교의 작은 마을 크루야(Krujë)인데, 슈코드라에서 티라나에 가는 길에 있지만 슈코드라에서 바로 크루야로 가는 직행버스가 있는지 확실치 않아 티라나를 들렀다 가게 된 것이었다.

크루야는 티라나에서 북쪽으로 30키로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가까운 도시여서 거의 20분 간격으로 버스가 있었다. 티라나 터미널에서 내려 바로 크루야로 가는 버스를 찾아 탔다. 크루야까지는 200레크. 그러니까 슈코드라에서 크루야로 가는데 총 700레크가 든 셈이었다.
특이한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버스 타고 이동하는게 좋아서 도시를 이동하는 날은 항상 기분이 좋다. 날씨도 좋아서 음악을 들으며 버스 창가를 내다보니 정말 좋았다.

크루야는 알바니아의 민족 영웅 스칸데르베그가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서 본거지로 삼은 도시다. 산세가 험준한 크루야에 성을 짓고 이곳을 근거지삼아 북진하는 오스만 제국군을 막아냈고, 그때문에 알바니아 민족에게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도시라고 들었다.
내 눈에 알바니아의 지형은 무척 특이하다.

대략적으로 보면 동쪽과 북쪽에는 디나르 알프스 산맥이 있어 지대가 높고, 서쪽으로는 아드라이해와 맞닿아 평야가 많다. 그런데 위 지도에 내가 표시해놓은 부분은 산맥이 굉장히 극단적으로 솟아오르는데, 평지에서 갑자기 높고 가파른 산맥이 툭 튀어나와 있는 느낌이다.
지도를 보면, 오스만 제국이 그리스로부터 시작해 발칸반도의 북쪽으로 진군하기 위해서는 티라나에서 레저를 잇는 고속도로가 놓인 평야를 따라 올라가야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 평야의 양옆으로, 특히 크루야 방면으로는 굉장히 급격하게 솟아오르는 산맥이 있고, 따라서 수비측에서는 이 길목을 틀어막기만 하면 적의 전진을 저지할 수 있어보인다. 그리고 크루야는 이 방어선의 중심에 위치한다. 스칸데르베그가 크루야를 대오스만전쟁의 중심으로 정한 것은 이런 지리적 배경이 있는 것 같다.
티라나에서 30-40분쯤 달리니 차는 산길로 진입했다. 크루야 마을에 들어서니 정말 굽이굽이 도로를 따라 올라갔다. 크루야는 말 그대로 언덕에 위치한 도시였다.

터키 여행하며 갔던 부르사 생각이 나는 마을이었다. 방어에는 참 특화된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만큼 살기 좋은 마을은 아니어서, 크루야 아래 평야에 푸셔크루야 - 알바니아어로 new krujë - 가 생겼다고 한다.
그렇게 티라나에서 한 시간을 달려 크루야의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중간에 푸셔크루야에도 들러 사람을 더 태우고 크루야에 도착했다. 버스라기보다는 진짜 키르기즈스탄의 마슈르트카와 똑같은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승객이 내려달라는데 내려주고, 길에 서있으면 그곳이 어디든 멈춰 승객을 태운다.

버스에서 내리니 마을 뒤편으로 높은 산이 매우 급하게 솟아올라있었다. 이따 정상에 올라갈 생각이었는데, 먼저 호스텔에 들러 체크인을 해야했다.
크루야에서 묵는 호스텔은 생긴지 얼마 안 된 호스텔이어서 시설이 깨끗했다. 무엇보다 침구류에서 섬유유연제 냄새가 굉장히 향긋하게 나서 좋았고, 여행객이 없어 6인실을 나 혼자 사용했다. 다 좋았는데 샤워실에 온수가 안나왔다... 그것 빼면 괜찮다. 2박에 22.5유로, Backpacker hostel in Krujë이다.
체크인을 하고 휴대폰을 좀 충전한 뒤에 바로 크루야 구경을 하러 나왔다. 크루야에 온 건 바로 크루야 뒷산을 올라가보고 싶어서였는데, 이틀 머물거라 원래는 다음날 올라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날 생각보다 크루야에 일찍 도착하기도 했고, 다음날 푸셔크루야에 가보고 싶어 얼른 올라갔다 오는 것으로 계획을 바꿨다. 차타고 가는 길도 있는데, 내가 가진 건 두 다리밖에 없으니 맵스미의 경로를 따라 열심히 걸어갔다.


편도 1시간 정도의 짧은 코스인데, 경사가 꽤 급하고 햇살이 뜨거웠다.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서 그렇게 어려운 코스는 아니지만, 나름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물 한 병과 초코바를 가지고 올라갔다.

이날 유독 구름이 낮게 깔려있어 조금 올라오니 구름과 시야가 일치했다. 정상은 이미 구름을 뚫고 우뚝 서있었다.

정상에 가까워지니 구름 속에 들어와있었다. 겨우 해발1000미터 정도인데.

구름 안으로 들어오니 갑자기 엄청 추웠다. 공기가 차가워진다. 햇빛도 가려서 땀이 갑자기 식어 서늘했다.


정상에는 버려진 리조트? 같은 건물이 있었다. 마을에서도 건물이 어렴풋이 보였는데, 와보니 폐허였다.

정상에서 초코바를 먹으며 땀을 식혔다. 하이킹 하면 땀이 많이 나지만 정상에서 땀을 식힐 때의 이 감정을 잊지 못해 하이킹이 좋다. 멋진 풍경도 빼놓을 수 없다. 정상에서 바라보면 저 멀리 아드리아해까지 한 번에 보인다. 평야에 우뚝 솟은 가파른 산에서 보는 풍경은 조금 어색하기까지 했다. 인공적으로 만든 것 같은 느낌이랄까.

정상 근처에는 어떤 수도승의 암자가 있었다.


여기서 기도하며 머물렀나보다.
정상에서 충분히 쉰 뒤 다시 올라온 길로 내려가 크루야 마을에 도착했다. 다시 마을로 돌아오니 세 시쯤. 일단 배가 무척 고파져서 뭘 먹을까 하다가, 그냥 근처에 있는 패스트푸드 가게로 갔다.

그냥저냥 먹을만했다.
원래는 등산이 더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그냥 크루야 투어를 이날 끝내기로 했다. 크루야 구시가지의 올드 바자르와 크루야 성채가 마지막 남은 관광지였는데, 바로 근처여서 구경하러 갔다.


가다가 스칸데르베그 장군의 동상도 만났다.

작은 마을이라 구시가지까지는 10분도 안걸린다.



터키에서부터 여러 도시의 구시가지와 올드 바자르를 다니다보니, 그냥 다 똑같이 느껴진다. 다 비슷한 건물에 비슷한 기념품을 팔고 있고, 특색이 느껴지는 곳이 없다.
그렇지만 딱히 구경할 것도 없어서 그냥 돌아다녔다.


올드 바자르 바로 옆에는 크루야 성채가 있다. 이곳의 성채는 스칸데르베그 이전부터 존재하던 것으로, 스칸데르베그가 대오스만 전쟁에서 실제로 본거지로 삼은 성채를 보수해 놓았다고 한다. 안에는 스칸데르베그 박물관도 있다.
당연히 돈을 내야 할 줄 알았는데 성채 입장은 무료, 스칸데르베그 박물관은 4유로의 입장료가 있었다. 마침 해가 떨어지고 있는 시간대라 성채 구경을 하면서 노을이 질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다.


조금 구경하고 있으니 점점 해가 붉은 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볼수록 브루사랑 비슷하다. 다만 내 생각에는 부르사가 좀 더 볼 게 많고 예쁘다.


그렇지만 노을은 역시 멋졌다.

노을을 끝까지 지켜보고 싶었는데 너무 추워서 여기까지만 보고 숙소로 돌아갔다.

옷을 얇게 입고 간데다 땀이 식고 있어서 너무 추웠다. 숙소에서 좀 쉬다가 알바니아 전통 음식을 파는 식당을 찾아갔다. 여러 블로그 후기에서 '타베 다우'라는 음식이 맛있다고 해서 시켜봤다.

조그마한 고기가 있고, 위에 덮힌 걸쭉한게 계란인 줄 알았는데 찾아보니 치즈라고 했다. 토마토 맛도 나고, 맵지는 않았다. 조금 더 매콤하면 맛있을 것 같은데. 맛은 토마토계란볶음 맛이랑 비슷했던 것 같다. 그런데 뚝배기 같은 도자기 그릇에 나와서 엄청 뜨거웠고, 급하게 먹다가 입천장을 다 데었다...
밥을 먹고 나왔는데 양이 조금 부족해서, 숙소에서 고민하다 바로 앞의 마트에서 햄과 계란을 사와 스크램블 에그를 해먹었다. 맥주도 함께..ㅋㅋㅋ

이후로 여행 정보를 찾아봤다. 몬테네그로와 크로아티아의 해안 휴양도시들을 가고 싶은데, 앞으로 날씨 예보가 계속 흐려서 고민이 많이 되어 찾아볼게 많았다. 그러다가 잠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편도가 부어 목이 아프고 미열이 있었다. 요즘 계속 숙소가 추웠던데다가 전날 옷을 얇게 입고 등산한 뒤 땀이 식어 추워서 그랬던 것 같다. 일단 잠옷으로 반바지를 입는게 가장 큰 문제인 것 같았는데, 한국에서 챙겨온 짐에는 잠옷으로 입을 긴바지가 없어서 옷을 사야겠다는 생각을 전부터 계속 하고 있었다. 생각만 하고 옷을 안 사고 있었는데, 점점 날씨가 추워져서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안그래도 이날 가려했던 푸셔크루야에는 시장이 있는 것 같아서, 시장에서 옷을 보고 긴바지를 살 생각이었다.
전날 저녁에 먹은 햄과 계란이 조금 남아서, 근처 빵집에서 바게트를 하나 사와 함께 먹고 터키에서 샀던 해열제를 먹었다. 아침엔 조금 어지러웠는데 약 먹으니까 좀 나아졌다. 약 기운이 돌 때까지 기다리다가 10시쯤 푸셔크루야로 가는 버스를 탔다. 푸셔크루야로 가는 버스는 티라나에서 내린 정류장에서 탈 수 있었고, 거의 20-30분에 한 대씩 있다. 요금은 100레크. 크루야에서 30분 정도 이동해 푸셔크루야에 도착했다.

일단 푸셔크루야의 명물, 조지 부시 동상을 찾아갔다.

여기 왜 조지부시 동상이 있나 찾아보니, 알바니아의 독재가 끝난 뒤 부시가 민주화된 알바니아를 방문했고, 그때 이곳 푸셔크루야를 찾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코소보 프리슈티나에는 빌 클린턴 동상도 있고. 이쪽 나라들은 제2세계 세력에 시달린게 많아서 그런지 미국에 대한 호감이 꽤 있는 것 같다.
이후 바로 시장을 찾아갔다.

옷 가게가 꽤 있었는데, 다들 파는 바지가 거의 똑같았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니 기모 긴바지를 보통 12유로(1200레크)에 팔던데, 한 곳에서는 비슷한 바지를 10유로(1000레크)에 팔길래 바로 샀다. 사이즈는 대충 보고 샀는데, 호스텔로 돌아와서 입어보니 사이즈도 맞고 따뜻해서 잘 산 것 같다.

좀 더 이동하니 과일가게들도 있었다. 감이 맛있어보여서 감 세 개를 골랐는데, 키로당 100레크로 엄청 저렴했다. 그런데 무게 측정을 전자저울이 아니라 무게추를 이용하는 저울로 했다. 진짜 레전드 감성...ㅋㅋㅋㅋ

감만 샀는데 덤으로 귤을 한 대여섯개 넣어주셨다. 돈 내겠다고 했는데 선물이라고 안 받으셨다. 중앙아시아에서 느낀 현지인들의 정을 오랜만에 느꼈다.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정이었다.

솔직히 푸셔크루야는 볼 게 진짜 하나도 없는 동네라 관광객이 안 오는데, 그것도 동양인이 와서 시장 구경하고 있으니 신기했을 것 같다. 아이들이 정말 뚫어지게 쳐다봤지만, 다행히 이런 시선이 익숙해져서 견딜 수 있었다. 상인들도 가끔씩 말을 거는데, 무슨 말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서 그냥 웃기만 했다. 그래도 알바니아 현지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조금 더 걸어가니 마치 거리에 옷을 쌓아두고 집어가는 풍경이 나왔다.

이런 감성이 너무 좋아서 막 웃으면서 구경했다.


여기서도 따뜻한 옷을 하나 사고 싶어서 이것저것 들춰봤는데 사이즈도 안맞고 사고 싶은게 안보여서 단념했다.


그렇게 시장 구경을 마치고 푸셔크루야 메인 거리로 가봤다.


베이커리에 들어가서 빵을 하나 사려했는데, 마땅한게 안보여서 시금치 뷰렉을 하나 샀다. 뷰렉을 사고 가려는데 빵집에 걸린 사진에 부시 사진이 있길래, 점원한테 진짜 여기 부시가 온거냐고 하니까 맞다고 했다. 부시뿐 아니라 보좌진들이 빵을 들고 있는 모습을 찍어놓은 사진이 재밌었다.

시금치 뷰렉을 들고 조지 부시 동상 바로 뒤에서 간단한 점심을 먹었다.


생각보다 시금치 뷰렉이 맛있었다. 오흐리드에서 먹은 뷰렉은 엄청 기름졌는데, 이건 담백하니 딱 좋았고 시금치가 잘 어울렸다. 여기에 감을 살 때 덤으로 받은 귤을 같이 먹었는데, 제주감귤에 비할 바는 아니어도 나름 맛있었다. 시큼한 맛이 꽤 강한데, 그만큼 달아서 맛있었다.
간단한 점심을 먹고 푸셔크루야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그런데 진짜 볼 게 없었다..ㅋㅋㅋ 워낙 작은 마을인데다가 상권이랄것도 없어서, 돌아보는데 30분도 안걸렸다.

다만 구경을 하러 돌아다니는 길에 웨딩마치를 마주쳤다. 경적을 울리며 지나가는 자동차에 손을 흔들어주니 차에 타고 있던 신랑신부도 응답해줘서 재밌었다. 알바니아인들이 정이 많고 친절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티라나에서는 잘 못느꼈지만 푸셔크루야에서 한껏 느꼈다.




그렇게 좀 돌아다니다가 다시 크루야로 가는 버스를 탔다. 크루야에 도착해서 뭘 보러 다닐까 찾아봤는데, 정말 딱히 할 게 없어서 그냥 숙소에 들어가서 감이랑 귤 먹으면서 유튜브를 보다 낮잠을 잤다. 한숨 자고 일어나니 감기기운이 많이 날아간 느낌이었다. 6인실에 나밖에 없어서 많이 자유로웠다. 어느새 여행이 일상이 되었구나, 여실히 느끼게 되는 오후였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어느새 해가 지는 시간. 숙소의 루프탑에서도 노을을 감상할 수 있어 의자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석양을 바라봤다.

약을 먹어서 이날은 술은 안먹고, 그냥 마트에서 햄, 달걀을 사와서 또 스크램블해서 먹었다. 사실 알바니아는 식당에서 먹는게 오히려 해먹는 것보다 싼데, 그냥 나가기 귀찮아서 만들어 먹었다.
이날 저녁에는 다음날 어디로 갈지를 정해야했다. 원래는 알바니아의 해안도시 듀러스로 갈 생각이었는데, 듀러스에서 할 게 진짜 없다는 후기가 많아 그냥 티라나 구경을 할지, 듀러스에 갈지 고민을 많이 했다. 정보 찾는다고 한참 보내다가 그냥 티라나의 숙소를 예약했다.
발칸에서는 해가 일찍 저물다보니 자연스레 일찍 잠들게 된다. 이날도 열시쯤 바로 잠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바로 짐을 싸고, 8시에 출발하는 티라나행 버스를 탔다. 크루야에서 티라나로 가는 버스는 6시 30분부터 30분 간격으로 있는 것 같았다. 요금은 역시 200레크.
티라나 정류장까지는 한 시간이 조금 안 걸린다. 정류장에 내려서 근처 빵집에서 빵을 하나 사먹었다.

신기하게 생긴게 있어서 사봤는데, 빵 속에 햄과 기타 피자 재료들이 들어있었다. 풍부하지는 않지만 맛은 나름 조화로운 느낌? 100레크여서 많은 걸 기대하면 안되긴 했다.
터미널에서 나와 근처 정류장에서 스칸데르베그 광장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구글맵에서는 5B 혹은 4번을 타라고 했는데, 97번 버스가 오더니 검표원 아저씨가 스칸데르베그 광장 가려면 이거 타라고 하길래 일단 탔다. 실제로 스칸데르베그 광장까지 잘 갔고, 아마 최근에 생겼는지 구글맵에 업데이트가 안 된 것 같았다.
그런데 일주일 전만 하더라도 티라나 시내버스 요금이 40레크였는데, 그새 50레크로 값이 올랐다. 50레크를 내고 스칸데르베그 광장까지 이동했다.

티라나에 온 첫날 방문한 광장은 비가 온데다가 여행할 기분이 아니었어서 아무 감흥이 없었는데, 이날은 날씨가 좋기도 하고 기분이 많이 나아진 상태라 예뻤다. 항상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 같다.

참 건물 독특하게 지어. 이것 말고도 티라나에는 여러 건물들이 새로 지어졌거나, 지어지고 있는데 하나같이 외관이 범상치 않다. 창의적이니 좋다고 해야할까... 하여튼 굉장히 건물들이 독특하다. 새로 지어지는 건물 말고 기존의 오래된 건물들도 건축 양식이 전에 보던 것과는 달라서, 거리 풍경을 보는 재미가 있다.
일단 숙소를 찾아가 짐을 내려놓고 티라나 시내를 돌아다닐 생각이었다. 전에 갔던 숙소가 마음에 들지는 않아서 새로운 숙소를 예약했는데, 광장에서 조금 더 가깝고 아침도 주는데 값은 1.5유로 쌌다.
10시쯤에 방문했는데도 체크인을 해주고, 12인실을 예약했는데 침대가 남는다며 무료로 6인실로 업그레이드(?) 해줬다. 티라나의 Milingona hostel 괜찮습니다!
체크인을 하고 배가 고파 오는 길에 본 숯불구이 가게를 찾아갔다. 케밥이나 전통 고기구이를 파는 곳이었는데, 티라나에 온 첫날 방문했던 시장 근처에 있는 곳이었다.

추천을 받아 닭고기 꼬치, 돼지고기 꼬치 하나씩과 플레스카비차라는 발칸반도의 전통음식을 시켰다. 이건 우리나라의 떡갈비랑 비슷한 요리인데, 먹어보니 엄청 맛있었다.

플레스카비차가 진짜 맛있었다. 육즙폭발인데 엄청 고소하고 기름져서 빵이랑 잘 어울렸다. 저걸로 햄버거 만들어 먹으면 맛있을듯. 다른 꼬치구이들은 담백하고 짭조름해서 좋았는데, 플레스카비차가 너무 맛있어서 조금 묻혔다. 저렇게 해서 720레크, 12000원 정도? 가격도 착하다. 이게 알바니아에서는 꽤 비싼 편이다... 곧 알바니아를 떠나는데, 물가가 정말 그리울 것 같다.
밥을 먹고 다시 스칸데르베그 광장으로 돌아가 티라나 구경을 시작했다.




알바니아에는 정말 많은 지하벙커가 있는데, 이건 티라나 시내 한가운데에 있던 벙커를 박물관으로 개조한 시설이라고 했다. 옛날 독재정권의 비밀경찰 - 우리나라로 치면 중앙정보부같은 기관 - 이 사용하던 벙커라고 들었는데, 입장료가 무려 10유로.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라는 후기가 많아서 들어가지는 않았다.
맑은 하늘 아래의 티라나를 구경하니 도시가 아름다웠고, 무엇보다 지금까지 본 발칸 반도의 도시 중 가장 활기차고 역동적인 느낌이었다. 이곳저곳에서 건물들이 세워지고, 젊은 활기로 가득찬 티라나를 보니 몇 년 후에는 분명 알바니아가 많이 발전하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올라가는 계단은 여전히 힘들다. 생각보다 높아서 꽤 힘들다.

원래는 티라나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갈 수 있는 다즈티(Dajti) 산에 올라가보려 했는데, 케이블카를 안타면 왕복 6시간이 걸리는 하이킹이어서 그냥 티라나 시내구경만 하는 것으로 계획을 바꿨다. 땀 흘리기 싫어서 안 간 것도 있고... 한동안 하이킹을 너무 많이 해서 좀 쉬고싶기도 했다.

근처에 축구장이 있다길래 가봤는데, 알바니아 축구대표팀 관련 물품을 사는 상인들도 많고 유니폼 입은 사람들도 많이 보여서 무슨 일이 있나? 싶었다.

찾아보니 마침 이날이 알바니아에서 2026년 북중미 월드컵 유럽예선 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바로 이곳, 에어 알바니아 스타디움에서 잉글랜드와의 경기가 있다고 했다.

어쩐지 오후가 되어갈수록 알바니아 대표팀 유니폼 입은 사람도 엄청 많아졌고, 거리에 영국 국기가 걸려있길래 뭔가 싶었는데 다 이런 이유가 있었나보다.

일단 마저 관광은 해야했기에, 근처의 호수공원으로 걸어갔다. 근처 빵집에서 빵을 사서 호수를 보며 먹을 생각이었다.
마침 호수공원 앞 빵집이 있어 뭘 살까 둘러보다가, 티라미수가 220레크밖에 안하길래 집어왔다. 호수 근처 벤치에 앉아 티라미수 먹을 생각하니까 벌써 신이 났다.

15분 정도 걸어 호숫가에 도착했다. 물론 인공호수.


아주 맛있었다. 커피 먹으면 안되는데 티라미수는 도저히 못참겠다... 다행히 잠은 잘 자서, 이정도는 괜찮은 것 같다.
일요일 오후라 그런지 호수공원에는 피크닉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호수를 한 바퀴 도는 산책로에는 사람이 정말 많고, 러너들도 많았다. 마치 석촌호수를 보는 느낌이었다. 물론 석촌호수가 훨씬 더 예쁘지만..ㅎㅎ
가족끼리 나와 주말 오후를 즐기는 풍경이 좋아보였다. 호수 공원도 나름 예쁘고. 무엇보다 이 공원뿐 아니라 거리 곳곳에 나무가 울창한게 티라나의 매력이다. 치안도 좋고, 사람들도 친절해 살기에 좋은 도시가 아닌가 싶다.





그렇게 공원에서 티라미수도 먹고, 음악도 듣고, 사람구경도 하다가 다시 거리로 나왔다. 딱히 목적지 없이 그냥 돌아다녔다. 걷기에 딱 좋은 날씨였고, 햇살이 좋아서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건물이 특이하고 가로수가 예뻐서 사진도 많이 찍었다.








티라나의 좀 오래되어보이는 건물들이 뭔가 비슷한 건축양식 같은데, 다른 어디에서도 본 기억이 없는 모양이다. 이게 어디에서 온 건축양식인지 잘 모르겠다.


티라나 곳곳에 이런 공원들이 많다.
한참 걷다보니 슬슬 다리가 아파져 숙소로 돌아갔다. 딱히 밖에서 할 것도 없고.
숙소에 돌아가서 블로그 글을 적는데, 호스텔 주인 부부 중 남편분이 와서 이야기를 좀 했다. 알바니아 분인데, 터키와 발칸 여행한 이야기랑 슈코드라, 테스 마을 여행 이야기도 하고 이날 열리는 축구 경기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들어보니 이번 월드컵에서 토너먼트 방식이 바뀌어 참가국이 늘어났고, 알바니아도 최초로 본선에 진출할 가능성이 생겨서 알바니아 국민들의 관심이 뜨겁다고 했다. 축구는 잘 몰라서 어떤 방식인지는 모르겠는데, 아마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된다는 것 같았다. 거기서 잘 하면 본선에 가는 느낌?
한참 이야기하다가 재밌으셨는지 발칸 지역의 전통주인 라키를 한 잔 주셨다. 에스프레소 잔에 가득 담아서 줬는데, 러브샷을 했다 ㅋㅋㅋㅋ 평소 위스키를 많이 먹고, 특히 도수 센 버번을 좋아해서 독한 술은 잘 마신다고 생각했는데 상당한 양의 독주를 원샷하니까 속이 엄청 타올랐다. 목이 조금 부어서 더 세게 느껴졌는데 나름 기분이 좋았다 ㅋㅋㅋ 과일향이 있긴 하지만 약하고, 중국의 바이주랑 비슷하지만 조금 도수가 낮은 느낌이었다. 여기서는 소주나 보드카랑 비슷한 국민 술 느낌이라고 했다. 술맛을 느끼려면 적은 양을 여러번 굴려야되는데 그럴 새도 없이 넘겨버려 맛은 잘 못느꼈지만 감사했다.
한 잔만 먹어도 좀 있으니 취기가 올라왔다. 그래서 좀 쉬면서 블로그를 쓰다가 5시쯤 저녁을 먹으러 갔다. 뭘 먹을까 했는데 숙소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현지인들이 많이 간다는 알바니아 요리 가게가 있어서 가봤다. 사실 아시아 마트 가서 라면을 사올까 고민을 했는데, 이날이 알바니아에서의 마지막 날이 될 예정이라 알바니아 음식을 먹으러 갔다.

가격도 무척 싸서 요리를 세 종류나 시켰다. 단백질 섭취를 위한 닭가슴살 구이, 쵸프테, 채소였다.


저 채소 한 접시는 시킬 때는 채소 스튜인 줄 알고 시켰는데, 나온걸 보니까 그냥 삶은 채소였다. 그냥 아쉬운대로 먹었는데 쵸프테와 닭가슴살 구이가 짰어서 같이 먹으니까 궁합이 잘 맞았다.
닭가슴살은 그냥 닭가슴살 맛인데, 저 쵸프테가 엄청 맛있었다. 숯불에다가 구운 맛이 제대로 나고 기름진 고기맛이 훌륭했다.
저렇게 다 먹고 720레크, 7.2유로가 나온것이니 정말 물가가 싸다. 앞으로 점점 물가가 비싸질텐데...
저녁을 먹고 축구 경기가 시작될 때가 되는 것 같아 스칸데르베그 광장쪽으로 가봤다. 혹시 거리 응원같은걸 하나 싶어서 가봤다.

그런데 광장에 가니 아무 것도 없이 휑했다. 거리 응원같은걸 하면 같이 보고 싶었는데...

이곳저곳 돌아다녀보니 다들 펍에서 맥주를 마시며 축구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알바니아에서 친구라도 사귀었거나 한국인이 좀 많은 도시였으면 동행을 구해서 같이 펍에 갔을 것 같은데, 티라나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그래서 조금 구경하다가 그냥 숙소로 들어갔다. 혼자서 펍에 들어가서 맥주 먹기에는 좀 힘들었다.. ㅋㅋㅋ
숙소에 들어가니 스탭 몇 명이 공용공간에서 축구를 보고 있길래 씻고 나와서 합류해서 봤다. 이야기 나눠보니 여행하다가 호스텔에서 몇달간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는데, 유럽의 호스텔에는 이런 사람들이 꽤 흔한 것 같았다. 그냥 정처없이 떠돌다가 마음에 드는 곳에서 머물면서 호스트를 도와 청소같은 일을 도맡아 한다고 했다. 정말 자유롭게 사는 영혼들. 나는 아직도 한국의 관습과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모든 걸 포기하고 외국의 호스텔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지내지는 못할 것 같은데.
이야기하며 경기를 봤는데, 알바니아가 전반전은 나름 선방해 0:0으로 끝났지만 후반에 두 골을 먹혀 잉글랜드에게 0:2로 졌다. 그래서 월드컵 본선에 올라가는건지 아닌건지는 아직도 모르겠다...ㅋㅋ
축구를 보고 침대에서 유튜브를 좀 보다 잠들었다. 이날도 6인실을 나 혼자 써서 무척 편하게 잤다.
'그 외 이야기들 > 2025년 유라시아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유럽 여행기] 9.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3) | 2025.11.22 |
|---|---|
| [유럽 여행기] 8.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 (1) | 2025.11.20 |
| [유럽 여행기] 6. 알바니아 슈코드라 / 테스-발보나 국립공원 (1) | 2025.11.15 |
| [유럽 여행기] 5. 알바니아 티라나 (1) | 2025.11.13 |
| [유럽 여행기] 4. 북마케도니아 오흐리드 (1) | 2025.1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