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1.22. ~ 25.11.24.
베오그라드를 떠나는 날. 느즈막히 일어나 아침을 먹고, 짐을 챙겨 숙소를 나섰다. 전날 미리 알아본대로 베오그라드 중앙역에 가서 노비사드행 기차를 타러 갈 생각이었다. 떠나는 날, 유독 날씨가 흐렸다.
세르비아 돈이 조금 부족해서 환전소를 찾아 조금 환전을 하고, 곧바로 베오그라드 중앙역에 도착했다. 대중교통이 무료라 편리하고 좋았다.
11시 30분에 베오그라드 중앙역에서 출발하는 기차표를 구매했다. 요금은 494디나르, 4유로가 조금 넘는 가격. 저렴하다. 시간을 거의 맞춰서 와서, 얼마 기다리지 않아 바로 플랫폼으로 향했다. 날씨가 꽤 많이 추워져서 비니와 장갑이 없으면 안됐다. 겨울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11시 30분에 출발한 기차는 세르비아의 넓은 평원을 지나 12시 20분경 페트로바라딘역에 도착했다. 세르비아의 중북부는 디나르알프스 산맥과 카르파티아 산맥 사이의 헝가리 대평원의 일부라, 산 하나 없이 쭉 평원이 펼쳐졌다.

기차 안에서는 딱히 한 것이 없었다. 노래를 들으며 사진첩을 정리했다.
페트로바라딘은 다뉴브강을 사이에 두고 노비사드와 접한 작은 마을이다. 원래 베오그라드에서 출발하는 기차는 노비사드 기차역까지 운행하지만, 작년 일어났던 노비사드 기차역 지붕 붕괴사고로 인해 페트로바라딘역이 종점이 된 것이다. 때문에 노비사드로 향하는 현지인들도 페트로바라딘역을 자주 이용하고, 여기서 노비사드 센터로 가는 버스가 있다고 들어 나도 기차여행을 선택한 것이었다.
정확한 버스 정류장 위치는 몰랐기에 열차에서 내려 사람들이 가는 길을 그대로 따라가기만 했다. 3분 정도 걸었을까? 사람들이 모여있는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3번 / 9번 버스를 타면 된다고 들었는데, 9번이 먼저 와 현지인들과 함께 버스에 탑승했다. 기차 타고 온 사람들이 다 탄 건지 사람이 무척 많았다. 내가 듣기로는 노비사드는 대중교통이 무료가 아니라고 했는데, 아무도 요금을 내지 않아 나도 그냥 탔다.
열심히 지도를 보다가 내가 내려야 할 곳을 잘 찾아 내렸다. 숙소 체크인은 오후 2시부터여서 시간이 조금 남기도 했고, 해야 할 일을 미리 처리하자는 생각에 노비사드 버스터미널로 가서 부다페스트행 버스 티켓을 구매할 생각이었다. 기차가 있으면 좋았겠지만 아직 세르비아와 헝가리를 잇는 기차는 없다. 평야지대라 철도 놓기도 편할텐데 왜 없는지 잘 모르겠다.

버스에서 내려 처음 맞이한 노비사드의 풍경은 너무 황량했다. 회색 하늘 때문인지 더 황량한 느낌이 들었다. 세르비아 제2의 도시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활력이 없는 도시처럼 느껴졌다. 괜히 왔나..? 생각까지 들 정도였는데, 걷다보니 나름 그 황량함에서 오는 매력이 있기는 했다. 소련의 영향을 크게 받은 중앙아시아 국가의 주요 도시들과는 조금 다른 황량한 느낌. 다만 나중에 노비사드 올드타운을 방문하니 '황량함'의 이미지는 싹 사라졌다. 결과적으로 나는 노비사드에서 너무 좋은 시간을 보냈다.
버스에서 내린 곳에서 10분 정도 걸어 노비사드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노비사드 버스터미널과 기차역은 바로 옆에 붙어있다. 작년 11월 지붕 붕괴사고가 났던 바로 그 기차역이었다. 저번 글에서도 말했지만, 이 사고 이후 세르비아 정부의 권위주의에 대항하는 반정부 시위가 크게 일어났다고 했다. 조금 더 알아보니 세르비아에 무서운 속도로 침투하는 중국 자본에 대한 시민들의 반감도 크고, 이 지붕 붕괴사고에 중국 회사의 부실시공이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흠...
기차역 앞에는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화환이 여전히 놓여있었다.

기차역을 뒤로하고 바로 옆에 붙어있는 버스터미널로 들어갔다.


부다페스트로 가는 버스 티켓은 9번 창구에서 구매할 수 있었다. 24일 월요일 아침 9시 15분에 노비사드에서 부다페스트로 가는 버스를 예매했고, 7시 그리고 13시경에도 버스가 있다고 했다. 요금은 2400디나르, 터미널 이용료 90디나르를 추가해 2490디나르를 결제했다. 블로그 후기에서는 터미널 이용료로 인당 180디나르를 결제했다고 했는데, 이 사람들은 온라인으로 티켓을 구매한 뒤 버스를 탑승하기 전 터미널 이용료를 결제한 것이라 현장에서 티켓과 터미널 이용료를 함께 결제한 나와는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이게 왜 이용료가 달라질 이유인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이 발칸 국가들은 대체로 한국에서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현장에서 구매한 티켓은 플릭스 버스 티켓이었는데, 플릭스버스 공식앱에서는 노비사드 - 부다페스트 버스 티켓이 22유로에 터미널 이용료를 따로 내야하니 현장에서 구매하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이다. 2490디나르면 약 20~21유로. 다만 성수기에는 티켓이 빨리 사라질 수 있다고 하니 이건 감안을 해야 할 것 같다.
티켓을 구매하고 숙소에 체크인하러 갔다. 버스가 있을 것 같기는 한데 구글맵이 작동하지 않고, 20분 정도 걸으면 된다고 해서 그냥 걸어갔다.


터미널에서 숙소로 가는 길은 똑같이 황량하고 활력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지금까지 지내온 발칸 도시들이랑 똑같네... 생각이 들었다. 얼른 부다페스트로 넘어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같은 말의 반복이다만 노비사드 구시가지는 상당히 멋져서 결과적으로는 여기에서 2박을 한 것이 좋은 기억이었다.
숙소에 가는 길에 배가 고파졌다. 원래 노비사드에서는 세르비아 전통음식을 먹으려고 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발칸음식이 다 비슷한 것 같아서 그냥 케밥 샌드위치를 먹으러 패스트푸드점을 찾아갔다.

아이들이 몇 명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정말 뚫어지게 쳐다봐서 조금 부담스러웠다.
가게 대표 메뉴로 보이는 Index 샌드위치라는게 있길래 시켰다. 가격은 450디나르.

샌드위치에 들어가는 채소들에 햄, 치즈를 속재료로 넣은 샌드위치였다. 상당히 맛있었다. 일단 치즈가 진짜 많았는데, 모짜렐라 치즈 같은 느낌이었다. 거기에 소스 하나가 토마토 크림치즈 같은 맛이 나서 좋았다. 빵도 맛있었고 양도 많아서 만족스러웠던 것 같다.
숙소를 찾아가 체크인을 하고, 짐을 내려둔 뒤 휴대폰 충전만 조금 하고 바로 구경을 하러 숙소를 나섰다. 숙소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노비사드 구시가지가 나온다.
사실 노비사드라는 도시는 생긴지 얼마 안 되었다. 20세기에 들어서야 개발이 시작되었다고 했고, 그 전에는 완전 시골마을이었다고. 로마시대부터 주요 군사거점이자 속주의 주도로서 기능한 베오그라드(싱기두눔)와는 달라서, 구시가지라 해봐야 20세기 초중반에 지어진 건물들로 이루어진 곳이었다.


날씨가 무척 추웠다. 이때 기온이 0~1도 정도인데다가 바람이 정말 매서웠다. 베오그라드에서 장갑 안 샀으면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공화국 광장이 구시가지의 북쪽 끝이다.



그렇게 크지 않은 구시가지지만 생각보다 굉장히 예뻤다. 노비사드에 처음 왔을 때는 건물이 온통 회색빛이었는데, 구시가지에 들어오니 형형색색의 아르누보 양식 건물들이 거리를 따라 쭉 이어져서, 같은 도시임에도 분위기가 정말 달랐다. 20세기 초 유행한 아르누보 양식이 마침 20세기 초에 생겨난 노비사드에 많은 영향을 준 것이었다.
사진을 찾아보니 하늘이 푸를 때 노비사드 구시가지가 정말 아름답던데, 회색 하늘에 비가 내리는 시기에 가서 참 아쉬웠다. 발칸 반도 국가들을 돌아다니다보니 날씨가 아쉬운 날이 정말 많다. 그래서 언젠가는 여름에 다시 이곳을 찾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사진 왼쪽의 베이지색 건물은 현재 노비사드 시청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찾아본 정보로는 저 위 망루에 올라갈 수 있다고 했는데, 잠시 기다려봤지만 시청 안으로 들어가는 관광객은 없어서 그냥 단념했다.

시청 앞으로는 노비사드의 랜드마크, 성모 마리아 성당이 있다. 이 광장이 Katedral park인 것도 당연히 이 성당 때문.

첨탑이 상당히 높다. 무엇보다 지붕이 정말 예쁘다.


구시가지와 Katedral park가 너무 예뻤다. 노비사드의 황량한 첫인상은 모두 사라지고,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그런지 구시가지 너머의 회색 건물들도 어딘가 모르게 예뻐보였다. 모든 것이 마음 먹기 나름이라는 말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는 것이었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젤라또 가게가 있길래 들어가봤다.

무슨 맛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밤 맛이 있길래 바로 골라봤다. 190디나르라서 꽤 비싸네? 했는데 양이 정말 많았다. 앞으로 점점 젤라또가 비싸지겠지...
밤 맛을 골랐는데 밤 맛이 별로 안났다. 생각보다 더 시큼하고 달콤했는데, 바밤바랑은 전혀 다른 맛이었다. 밤 알갱이가 씹히는 것 같기는 했는데, 아무 정보도 주지 않고 맛봤다면 밤 맛 젤라또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맛이었다. 그래도 양 많고 달콤했으니...

성모 마리아 성당 안에 들어가 볼 수 가 있었다.

그냥 성당. 딱히 특별한 점은 없었다.

해가 질 시간이 다가오자 점점 추워졌다. 기온이 떨어지는 것보다도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서 장갑을 꼈음에도 손이 점점 얼어가 감각이 사라지고 있었다.




블로그 글들을 읽어보니 구시가지의 야경이 예쁘다고 해서, 원래는 조명이 켜질 때까지 기다리려 했지만 너무 추워서 숙소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다만 가는 길에 시장을 발견해서 잠깐 들러보았다.


숙소에 들어오니 살 것 같았다. 이날 묵은 숙소는 노비사드의 Brodysky cat's art house라는 숙소였는데, 2박에 15.9유로로 저렴했다. 베개가 조금 별로였는데 숙소가 아늑하고 젊은 청년이 호스트인데 무척 친절하고 착하다. 여기도 숙소를 참 잘 선택했던 것 같다.
숙소에서 조금 쉬다가 저녁을 먹을 생각이었다. 주위에 식당을 아무리 찾아봐도 갈만한 곳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숙소 바로 앞 마트에서 장을 봤다. 이 숙소가 좋은 또 하나의 이유가, 숙소 바로 앞 길가에 꽤 큰 idea 체인이 있다는 것이었다. 뭘 먹을까 하다가, 숙소가 작아서 무언가를 구워먹기는 힘들 것 같아 그냥 닭가슴살을 삶아먹었다.

보통 3덩이, 600그램 정도가 한 팩인데 이게 약 3~4유로. 저녁으로 두 덩이를 먹고 한 덩이는 남겨놓아 다음날 아침에 먹을 생각이었다. 빵, 토마토, 우유를 함께 먹으면 아주 건강한 식단이다. 빵 먹고 군것질 열심히 하려고 아침 저녁은 웬만하면 건강식으로 먹고 있다...
저녁 먹고 씻고 부다페스트 여행 정보를 찾아보다가 잠들었던 것 같다.
다음날 일어나서 전날 삶아둔 닭가슴살에 빵, 우유를 먹었다. 전날은 하루종일 비가 왔지만 이날은 다행히 비가 오지 않았다. 9시 반쯤 숙소를 나섰다. 비는 오지 않았지만 하늘은 여전히 흐렸다.
처음 찾은 곳은 전날 발견한 시장. 자기 전 정보를 찾아보니 아침시장이라 일찍 열고 일찍 닫히는 시장이라고 했다.


전날과는 다르게 무언갈 파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규모가 굉장히 작았다. 군데군데 빈 상점도 보이고, 손님이 많은 것 같지는 않았다. 나 역시 아침도 먹고 온데다 하루 종일 돌아다녀야 해서 구경만 하고 나왔다.

하늘이 맑았다면 얼마나 더 예뻤을까. ㅠㅠ.

이 날의 목표는 다뉴브 강을 건너 페트로바라딘 마을의 요새에 오르는 것이었다. 일종의 노비사드 필수 코스라고.

가는 길에 또다시 거대한 브루탈리즘풍 건축물을 발견했다.




강가에 가니 바람이 정말 거셌다. 너무너무 추웠다. 그래도 가야지...



진짜 놀라운 건 달리기 하는 사람들이 이 사람들뿐 아니라 정말 많다는 것이었다. 이날 진짜 추웠는데 바람 많이 부는 강변에서 달리기하는게 참 대단하다...



여기도 동네가 참 예쁘다. 다만 다리와 가깝고 요새가 있는 이쪽만 이런 건물이고, 기차역 근처는 완전 시골마을이었다.
다리를 건너면 요새까지 가는 길은 쉽다. 그냥 표지판 따라가거나 지도 보면서 가면, 몇 개의 계단을 오르기만 하면 된다.


저 멀리 보이는 육중한 콘크리트 아파트가 시선강탈이었다.



요새에서 바라보는 다뉴브 강과 노비사드 경치가 좋았다. 그대로 요새를 따라 한 바퀴 걸었는데, 아무래도 너무 추웠다. 그래도 좋은 음악 들으면서 걸으니 이게 행복이지.


요새를 한 바퀴 돌고 다시 다리를 건너 노비사드로 건너왔다. 강변의 산책로를 따라 걸어가면 노비사드 대학교가 있다길래 그 방면으로 걸어갔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학교에는 학생이 안보였다. 우리 학교는 어떤 모습이려나. 떠난지 2년이 되어가다보니 진짜 까먹을 것 같다.

권위주의 정부에 대항하는 최전선에 대학교가 서있는 것 같았다. 책임지는 지성들의 저항이 성공하기를...

그런데 왜 항상 수학부 건물은 이렇게 칙칙한건지 모르겠다. 다른 학부 건물들은 형형색색이던데. 물리학부도 붙어있어서 어두운 느낌이 두 배로 든다.

대학교를 조금 더 돌아보고 싶었는데 진심 너무 추워서 참기 힘들었다. 근처에 대형 쇼핑몰이 있어서 잠깐 들러서 몸을 녹이려 갔다.

위대한 과학자 니콜라 테슬라는 사실 세르비아계다. 비록 미국에서 활동했지만 세르비아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존경하고 있다고 한다. 세르비아 곳곳에서 이름이 '테슬라'인 가게를 발견할 수 있다.


그냥 추워서 들어간 곳이었고, 구경할 건 없었다. 다 옷가게들이라서 뭐 할 게없었는데

현재 최고의 농구선수인 니콜라 요키치가 방문한 카페가 있었다. 요키치 역시 세르비아 선수... 인구수도 작은 나라에 굵직한 인물들이 많이 나오는 세르비아였다. 요키치는 진짜 농구 잘한다. NBA에서도 독보적으로 잘한다. 모 MVP 호소인과는 다른 진정한 MVP.
쇼핑몰 안에서 쉬면서 몸을 녹이다 다시 나왔다.






이젠 정말 세계 어디서든 한국음식점을 발견하기가 쉬운 것 같다.

한식이 그립기는 하지만 라면이 그리운 것은 아니라 한국음식점에 들어가도 소비를 잘 참을 수 있다.
조금 더 걷다보니 시장 거리가 나왔다. 아마 여기가 노비사드에서 제일 큰 재래시장인 것 같다.





점심 때가 되기도 했고, 아침부터 워낙 많이 걸어다녀 슬슬 배가 고파졌다. 전날 유튜브에서 찾아본 바로는 크레페가 세르비아의 국민간식이라고 했는데, 안그래도 노비사드에 리뷰가 정말 많고 좋은 가게가 있어서 찾아갔다. 마침 시장거리 근처이기도 했다.

뭘 먹을까 고민하다 바닐라 푸딩이 올라간 초코 크레페를 시켰다. 나는 그냥 일반적인 크레페를 상상했는데

아니 근데 누텔라를 너무너무너무 많이 넣어준거다. 먹다보니까 계속 흘러서 그냥 먹을 수가 없어서 팬케이크를 쭉 짜서 누텔라를 짜내고 찍어먹어야 했다. 이게 단돈 320디나르니까 5000원 정도. 해도해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누텔라가 많았다. 이거 먹으면 바로 혈당스파이크로 쓰러질 것 같은데.
먹다가 도저히 다 먹을 수가 없어서 반쯤 먹고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팬케이크만 절반을 먹은 거지, 누텔라는 거의 다 버린 것 같다. 아깝긴 한데 이걸 다 먹을 수는 없었다. 실시간으로 건강이 나빠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누텔라 폭탄 팬케이크를 먹고나니 속이 더부룩했다. 노비사드에서 볼 것도 다 본 데다가 진심 너무 추워서 그 길로 숙소까지 걸어갔다. 구시가지를 통과해서 가는 길이라 다시 한 번 구경할 겸.



걷다보니 노비사드가 내 생각보다 너무 예뻐서 사진 찍기도 좋았다. 처음에 봤던 황량한 모습은 어느새 기억에서 잊혀졌다.


계속 말하지만, 이날이 유독 너무 추웠다. 아침에 옷을 더 껴입고 나왔어야 했는데.
숙소에 도착하니 2시쯤이었다. 점심이라고 먹은 누텔라 팬케이크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부실해서 숙소 앞 마트에서 다시 닭가슴살을 사와서 삶아먹었다. 무슨 식단하는 사람 같은데...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영양소 균형을 생각하다보니 닭가슴살을 자주 먹고, 구워먹기는 숙소 여건이 안되다보니 삶아먹는 있는 것이다. 나름 맛있다.

점심을 먹고 숙소에서 쉬다가 저녁에 야경을 보러 나갈 생각이었다. 소파에 누워 휴대폰을 보고 있는데, 숙소 주인 다니엘이 함께 와인을 먹겠냐고 해서 얼른 달려갔다.

이 친구는 상당히 독실한 크리스챤이었는데, 이날이 마침 일요일이고 호스텔에 숙박하는 사람이 얼마 없어서 내게 와인을 권한 것이었다. 다니엘을 포함해서 호스텔 관리인이 4명인데, 숙박하는 사람이 나 포함 두 명이었다. 와인을 먹으면서 이야기도 많이하고, 내가 고맙다고 하니까 크리스챤에게 일요일의 의미에서부터 시작해서 종교에 대해 많이 이야기해줬다.
나는 종교가 없다보니 종교인들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개신교 이미지가 부정적인 편이고, 솔직히 나도 종교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교인들의 worship을 이해할 수 없었다. 신에 대한 관념이나 믿음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 몰랐고, 사실 아직도 잘 이해가 가지는 않는다. 어려서는 이성적인 사람, 과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무신론을 가지게 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
다만... 이제는 이게 다 내가 한국에 살아서 그런 것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무신론적 관념이 이성적이고 과학적이어서가 아니라, 내가 유난히 비-종교적인 국가에 살다보니 이런 관념을 가지게 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종교를 믿으면서도 얼마든지 과학적일 수 있고, 종교를 가지는 것이 당연한 나라들을 여행하다보니 내가 얼마나 좁은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는지 알게 된다.
머릿속에 떠다니는 사념들이 많은데, 정리하여 논리정연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쉽지 않다. 참... 글 적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하여튼, 다니엘과 이야기하고 내게 스스럼없이 본인의 것을 나누는 크리스챤들을 보다보니 그런 생각을 했다.

와인 한 잔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갑자기 판이 커져서 숙소 관리인 네 명이서 요리를 시작했다. 또 감사하게 내 몫까지 챙겨줘서 맛있게 먹었다. 와인도 참 맛있었다.

다만 너무 배불러서 닭고기 요리만 먹고 감자는 남겨뒀다가 저녁에 먹기로 했다. 참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사람이 별로 없는 일요일이라 이런 행운이 내게 찾아온 것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설거지뿐... 맛있게 먹었다고 인사한 뒤 설거지를 열심히 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보니 점점 해가 질 시간이 다가왔고, 감사인사를 한 뒤 야경을 보러 숙소를 나섰다.





그렇게 강변으로 돌아가 한참 걸어 구시가지에 도착했다.

갤럭시가 낮에는 사진이 참 예쁘게 나오는데 유독 밤 사진을 잘 못찍는 것 같다. 설정을 찾아봐서 만져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마구 돌아다니다가 다시 숙소로 돌아와서, 씻고 저녁을 먹었다. 점심에 삶고 남은 닭가슴살 두 덩이와 감자, 빵 그리고 토마토.

진짜 건강식으로 먹고 있다. 다만 여기에 세르비아 현지 맥주까지..ㅎㅎ 정말 행복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마트에서 크루아상과 요거트를 사와서 아침을 먹고 8시 반쯤 숙소를 나섰다. 9시 15분에 출발하는 부다페스트행 버스를 타기 위해 짐을 모두 챙겨 버스터미널로 걸어갔다.

가는 날이 되니 하늘이 파랗게 개었다. 이러기 있어..?

시간을 맞춰 터미널에 도착해 부다페스트행 플릭스 버스에 탑승했다.

노비사드를 출발한 버스는 10시 반쯤 세르비아와 헝가리의 국경에 도착했다. 헝가리는 EU가입 국가이고, 여기부터 쉥겐조약이 적용되어 유독 입국심사가 빡셌다. 터키에서 불가리아 넘어올 때는 이렇게 빡세지 않았는데. 여기서 출입국 수속을 하느라 거의 1시간 반이 소요되었다.

헝가리 국경을 통과하고 12시 반쯤 한 휴게소에 들렀다.

배가 고프기는 했는데 휴게소 음식이 너무 창렬이라서 그냥 버텼다.


9시 15분에 세르비아 노비사드를 출발한 버스는 2시 30분쯤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 도착했다. 하늘은 또 다시 흐렸다. 터미널에서 내려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가서 체크인을 했다.

이렇게 대략 4주의 발칸반도 여행이 끝났다. 발칸반도 국가에 대해서는 정말 모르는게 많았고, 특히 구 유고연방에 속하는 국가는 여행을 하지 않았으면 평생 몰랐을 것 같다. 그렇지만 너무 좋은 시간을 보냈고, 정말 예쁜 곳들이 많았다. 나중에 여름에 반드시 다시 찾겠다는 다짐을 할 정도로 좋은 곳들이었다. 부디 그때까지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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