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9. 2.(화)
비슈케크에서의 이틀차 아침이 밝았다. 이 날은 일정이 많지 않아 7시 반쯤 여유롭게 일어났다.

8시에 조식 시작이어서 간단하게 씻고 하루동안 돌아다닐 짐을 모두 챙겼다.

이날 갈 곳은 비슈케크 시내에서 차로 1시간정도 떨어진 알라-아르차(Ала-Арча) 국립공원.
원래 이곳에 가려면 현지 투어사를 이용하거나 개인적으로 택시를 불러 가야했다. 그래서 나도 한국에서 떠나기 전 현지 여행사 Kettik에 연락해서 이것저것 알아보고 있었는데, 최근 시내와 국립공원 입구를 운행하는 시내버스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택시를 부르면 편도 600솜(9600원) 정도에 입장료 별도로 해서 1400~1500솜 정도가 드는데 버스를 타면 모두 합쳐서 300~400솜 정도로 저렴하게 갈 수 있으니 시간 여유만 있다면 무조건 버스를 타는게 나아보였다.
현지 여행사 투어는 18달러 선이라 택시를 불러서 가는 것보다는 저렴하지만, 하이킹 코스나 시간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단점도 있었다. 버스는 8시부터 4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고 하니, 버스가 출발하는 정류장에 9시 10분쯤 도착하면 9시 20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탈 수 있을거라 생각하고 여유롭게 아침을 먹었다.



꿀과 함께 전날 산 치즈도 함께 먹었는데, 무지하게 짰다. 치즈 조금에 빵을 크게 베어물어야 먹을만했다. 꿀이랑 먹으니 겨우 먹을만 했다. 꿀 맛이 뭐라 설명해야 할까... 질감이 무척 됨직하고 연유를 굳힌 맛이 나는데 하여튼 상당히 맛있다.
이날 아침에 알았는데, 내가 묵었던 애플 호스텔 바로 옆이 옛 비슈케크 버스터미널이었다고 한다.

전에 중앙아시아 여행 유튜브를 봤을 때, 어떤 유튜버가 비슈케크 버스 터미널에 갔는데 폐허가 되어있었고, 돌아다니다 현지인을 만나 물어보니 거기 이미 문 닫고 다른데로 터미널 옮겼다고 하면서 택시 태워주겠다고 하는 영상을 봤었다. 그때 본 폐쇄된 터미널이 이 터미널이었나보다. 옛 이름은 비슈케크 서부 버스터미널이었다고 한다. 어떤 블로그에서 이 호스텔을 추천하는 글을 보고 예약했는데 호스텔이 시내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어서, 왜 이런 호스텔을 추천했을까 의문이었다. 이때 이 의문이 풀렸다. 예전엔 여기가 위치 최고의 호스텔이었을텐데. 지금은 위치가 애매하긴 하지만 관성 때문인지 여전히 배낭여행객들이 정말 많이 온다. 사실 값도 싸고 시설도 이만하면 나쁘지 않은데다가 호스텔에서 주최하는 투어 상품도 많아 시간이 많은 여행자들에게는 좋은 선택지인 것 같다. 다만 혼자 갈 때면 몰라도 여럿이 갈 때면 에어비엔비로 시내 중심에 숙소를 잡는게 훨씬 더 가성비 좋을 것 같다는 후기가 있다.
그렇게 아침을 다 먹고 숙소 앞 정류장으로 나왔다.

비슈케크 버스는 사람이 엄청 많이 탄다. 관광객은 많이 안 보이고 거의 다 현지인들이었다. 사람이 정말 많다... 이따 글 후반에 만원버스를 찍은 사진이 있다. 서울 저리가라할 정도다.
버스에서 내렸는데 9시 정도여서 시간 여유가 있었다. 전날 먹어보기로 다짐했던 키르기스스탄 전통음료를 찾아 먹어보려고 했는데, 찾을 필요도 없이 정류장 바로 옆에 노점이 있었다.


그리고 나서 정류장에 가서 버스를 기다렸다. 내 계산대로면 적어도 9시 30분에는 와야되는데 버스가 계속 안 와서 평일은 운영 안하나? 싶어 레딧도 찾아봤는데 분명 매일 운행이라고 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안오길래 내가 놓쳤나 싶었는데 난 휴대폰도 안보고 음악 들으면서 계속 도로만 보고 있어서 그럴리도 없었는데...
10시가 넘어가고 지쳐갈 때쯤 드디어 버스가 왔다. 10시 5분쯤 버스 탄 것 같다. 배차간격이 엄청 긴데 규칙적이지도 않은 것 같다. 아님 정말 내가 놓친걸까? 출발 지점에서 기다린게 아니라 바로 그 다음 정류장에서 기다렸는데, 웬만하면 출발 정류장에서 기다리는게 제일 안전할 것 같다.

그렇게 버스는 남쪽으로 달려 시내를 벗어나고 있었다.


시내를 벗어나니 버스가 거의 멈추지 않고 달렸다. 이렇게 생각하면 택시 타고 가는거랑 시간도 얼마 차이 안 날 것 같다.


한 시간 정도 달리니 매표소에 도착했다. 버스는 매표소 바로 앞에 내려준다.

화장실이 유료라는 얘기가 있어 동전을 준비해갔는데 그냥 쓸 수 있었다.
매표소를 통과하면 또 다시 버스를 탄다. 버스 타고 또 20분 정도 올라가는데, 이건 무료다. 입장료에 버스 가격이 포함되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걸어서 올라가면 꽤 많이 시간이 올라갈 것 같고, 어차피 버스 타는 곳 근처에 안내원이 있어 걸어가려는 사람들을 버스 쪽으로 불러 모았다.

산을 향해 올라갈수록 경치가 장관이었다.


이날은 날씨가 따뜻해서 바람막이를 가방에 넣고 반팔을 입었다. 후기를 읽어보니 벌레가 많아 긴팔 긴바지를 입으라고 해서 팔토시를 챙겨갔다. 결과적으로는 벌레같은건 없었지만 팔토시가 오히려 시원하게 해줘서 계속 하고 있었다.



걸어가는 길이 정말 예쁘다.












산에 가면 좋은게 다들 인사를 잘 받아준다는거다. 하이, 헬로 번갈아가면서 하다가 어떤 부부를 만나서도 헬로, 했는데 갑자기 한국분이세요? 하길래 놀라서 엇 하고 인사했는데, 어떻게 알았냐고 하니까 이렇게 얼굴을 꽁꽁 싸매고 다니는건 한국 사람밖에 없다고 했다.
50대 부부가 은퇴하고 세계 여행중이라고 했는데, 8개월째 동남아, 중국을 횡단하고 중앙아시아로 왔다고 했다. 엄청 대단한 분들이었다. 남자분은 예전에 피파 에이전트였다고 했고(!!) 여자분은 내과 의사라고 했다. 이야... 서로 이름도 밝히고 걸어 올라가는 내내 이야기했다.




얘기하면서 올라오다보니 발걸음이 점점 느려졌다. 1시 반쯤 되어서 근처 너른 곳을 찾아 식사를 했다.
내가 사온 빵을 먹으려고 했는데 감사하게도 샌드위치를 주셨다.

사과를 가져와서 드리려고 했더니 과일을 안좋아하신다고 안받으셔서 내가 두 개 먹었다. 아침에 먹고 남긴 짠 치즈를 사과랑 먹으니까 또 먹을만했다. 많이 먹었지만 다 먹지는 못하고 그냥 챙겨가서 버렸다. 신기한게 공원 안에 쓰레기가 하나도 없다.(말똥은 많다) 올라오는 사람들이 다 양심적인 사람들인가보다.



점심을 먹고 이분들은 여기서 내려간다길래 나는 조금 더 올라가기로 하고 헤어졌다.
20분정도 더 올라갔는데, 목표지점은 한참 남은데다 뷰도 계속 똑같았는데 슬슬 돌아갈 시간이 되어서 그냥 발걸음을 돌렸다.


그렇게 하산했는데 거의 다 내려와서 다시 아까 그분들을 만났다 ㅋㅋ
그래서 또 계속 얘기하면서 산을 내려왔다.

왔던 길을 그대로 돌아가서 다시 똑같은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내려갔다. 시내로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 두 분이 파키스탄의 카라콜람 산맥, 중국쪽 파미르 고원을 여행한 사진을 보여줬는데 정말 어메이징했다. 카라콜람 하이웨이도 반드시 가봐야겠다.
감사하게도 버스비 50솜을 내주셨다. 괜찮다고 헸지만 얼마 안되니 그냥 받아달라고 하셔서 감사히 받았다.

이분들은 중간에 내리셨다. 이야기가 너무 재밌었고 앞으로 여행하시는게 궁금해서 인스타도 교환하고 내 블로그도 알려드렸다. 나도 나중에 은퇴해서 이렇게 아내랑 세계일주 하고싶다...
나는 다시 알라투 광장에 내려 시티투어를 했다.



근무교대식이 매시정각인데 우연히 시간이 딱 맞았다.


교대식을 보고 길 건너 반대편에 있는 알라투 광장에 앉아 비슈케크 시내에 볼만한 것들이 있는지 찾아봤다.






승리 광장에서 나와 세 블럭 정도 걸어가면 비슈케크 중앙 모스크가 있다. 모스크 안에서 기도하는 목소리가 계속 들렸다. 안에 들어갈 수는 있는데 좀 뻘줌할 것 같아서 그냥 밖에서 사진만 찍었다.


시내를 막 걷다보니 숙소 반대편으로 와버렸다. 걸어갈까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너무 멀어서 모스크 앞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그런데 내가 알던 버스가 아니라 미니미 버스가 왔다.


차가 엑셀을 밟아도 힘겹게 움직였다. 엄청 오래된 차 같았는데... 이거 매연 괜찮을까? 비슈케크는 알마티보다도 매연이 더 심하던데, 대체 몇 년 되었는지 모를 중고차를 끌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 보였다. 여기도 빨리 전기차가 보급이 되면 좋을텐데.
버스를 타고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글로버스에 내려 물과 이것저것 샀다. 빵이랑 먹을 우유도 사고 닭다리를 팔길래 사봤다. 그리고 공원에서 저녁을 먹었다.

근데 이거 엄청 비렸다. 원래 데우거나 다시 익혀먹는 것 같았다. 뼈 부분은 조금 핏기가 있어서 겉에만 좀 발라먹고 버렸다...
빵도 전날 산거여서 엄청 딱딱해졌다. 빵 먹고 우유를 머금고 부드럽게 만들어서 겨우 먹었는데 그것도 얼마 못 먹고 버렸다. 우유만 엄청 마셨는데 맛있긴 했다. 사실 숙소 앞에도 대형 식료품점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닭다리를 맛없게 먹고 나서는 그냥 숙소 앞 식료품점에서 간단하게 먹을거리를 사서 숙소에서 먹을걸, 후회하긴 했다. 그런데 이날 저녁에 숙소 앞 마트에 가보니 글로버스에서는 55솜 하는 맥주를 80솜에 팔고 있더라고..? 그냥 글로버스 가길 잘했다.


숙소에 도착해서 식당쪽에 갔는데 어제 인사한 일본 친구가 빵을 먹고있길래 우유를 좀 줬다. 이야기해보니 내일 아침에 비슈케크 터미널로 가서 촐폰아타로 간다길래 아침에 같이 버스타고 가자고 했다. 같은 방이기도 해서 일어나면 서로 깨워주고 준비해서 나가기로 했다.
이후 다음날 가야하는 보콘바예보행 버스 정보를 찾아봤다.


혹시 몰라 숙소 데스크에도 물어봤는데 터미널에서 보콘바예보 가는 595번 마슈르트카를 탈 수 있다고 했다. 8시 25분부터 운행한다니 7시 20분쯤 출발하면 여유를 가지고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급한 일을 해결했으니 좀 쉬었다. 맥주가 먹고싶어서 그 전에 숙소에 있던 철봉에서 턱걸이랑 푸시업을 했다. 여행와서 살이 좀 빠졌는지 턱걸이가 무척 가벼웠다? 오랜만에 운동하니 헬스장이 정말 가고 싶었다.
그렇게 극한의 갈증 상태를 만들고 숙소 바로 앞 마트로 갔다.

둘러보다가 키르기즈스탄 맥주처럼 보이는걸 샀다.

라거 계열 맥주 같았다. 저번에 알마티에서 먹은 맥주보다는 더 맛있었다. 꽤괜.
그리고 나서 샤워하고, 빨래하고 잠에 들었다.
25. 9. 3.(수)
아침 6시 반에 기상, 바로 짐을 챙겨 나왔다. 체크아웃을 했는데 카운터쪽에서 일본 친구 두 명이 짐을 모두 싸들고 앉아있길래 말 걸어봤더니 알마티로 가야해서 터미널까지 택시 타고 간다고 했다. 어제 같이 버스타고 터미널 가기로 했던 일본인 친구가 있으니까 괜찮으면 넷이서 택시 타자고 했다. 좋다길래 개꿀 하고 숙소를 나왔다. 알마티 가는 버스에 대해서도 물어보길래 알마티에서 비슈케크로 버스 타고 온 이야기를 해줬다. 경험해보니 비슈케크에서 알마티 가는 시스템은 조금 더 복잡하지만 그래도 막상 가면 다 할 줄 알더라.


그런데 택시가 안잡히는거다. 7시 15분이 넘어도 택시가 안잡혔는데, 알마티로 가는 일본 친구들은 8시 버스를 예매해서 긴급한 상황이었다. 나랑 촐폰아타 가는 친구는 현장에서 티켓을 살거라 상관없었는데, 이 친구들은 이미 예매를 해서 계속 카운터 직원하고 이야기하면서 택시를 잡으려고 하더라.
시간이 늦어지길래 나와 촐폰아타 가는 친구는 그냥 버스타고 간다고 하고 나왔다. 택시타고 잘 갔으려나 모르겠다.
숙소 앞 정류장에 나와 13번 버스를 기다려 탔다. 출근시간이라 사람이 무지하게 많았다.


7시 30분에 숙소 앞에서 출발해 8시 15분쯤 터미널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호객이 시작됐다. 보콘바예보를 외치는 사람이 있길래 가격을 물어보니 600솜이라고 해서 그냥 지나갔다.
좀 더 안쪽으로 가니 또 보콘바예보가 있어서 값을 물어보니 400솜이랬다. 내가 찾은 정보와 같아 이걸 타려했는데, 그냥 한 번 300솜? 하니까 아저씨가 웃으면서 이것저것 설명했다. 가까운 발릭치나 코치코르가 300솜이고 보콘바예보는 400솜이라고 말하길래 하라쇼 하라쇼 하고 탔다.

8시 20분쯤 탔는데 안에 두 명이 있었다. 값을 물어보니 역시 400솜이랬다. 일년 전 블로그에서는 300솜이었는데 그새 값이 올랐나보다. 마슈르트카는 정해진 출발시간 없이 인원이 다 찰 때까지 기다렸다 자리가 다 차면 바로 출발하는 시스템인데, 사람이 생각보다 모이질 않아서 한참 기다리다 10시 넘어서 출발했다. 대기하면서 글을 쓰고 있다.
가는 길이 대단했다. 톈산산맥쪽만 웅장한 줄 알았는데 이식쿨호수로 다가갈수록 산맥이 더 장엄해졌다.

12시쯤 휴게소에 들렀다.



비슈케크에서 발릭치, 그리고 그 너머로 삼십분 정도는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는데 그 이후로 보콘바예보까지는 중간중간 포장이 안 된 도로가 있다. 군데군데 공사중이어서 공사 중인 곳을 우회해서 길을 임시로 뚫어 놓느라고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것 같은데, 아씨고원으로 가는 비포장도로를 경험해보고 나니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찾아보니 중국 회사에서 키르기즈스탄과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도로 곳곳을 개보수하고 있다고 했다. 옛 소련 시절에는 러시아에서 주도적으로 개발했던 중앙아시아 지역에 이제는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었다. 이쪽으로 와서 일하는 중국 사람들도 많아지고, 중국 차들도 많이 들어온다고 했다. 옛 당나라 그리고 청나라가 가졌던 실크로드에 대한 영향력을 다시 회복하려는 것일까? 대륙으로 넘어가기엔 러시아나 아랍 지역을 뚫기는 쉽지 않아 보이는데... 또 어떤 정치경제학적 이유가 있을지 궁금하다.


마슈르트카 시스템이 특이한게 반드시 정해진 정류장까지 이동하는게 아니라, 가는 중간 내리고 싶은 곳이 있으면 기사님께 얘기하면 바로 내려준다는 점이다. 보콘바예보로 가는 길에도 여러 마을이 있었는데, 마을 하나를 지나칠 때마다 내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마을이라고 해봐야 집 몇 채가 모여있는 것인데, 식료품점과 학교가 도로를 중심으로 세워져 형성된 마을은 반경 100미터도 되지 않아 보였다.
10시에 비슈케크를 출발한 마슈르트카는 1시 40분쯤 되어서 보콘바예보에 도착했다. 보콘바예보의 버스 터미널이 어디 있는지는 몰랐지만 내가 묵을 게스트 하우스 근처에서 내리는 사람들이 있길래 거기서 걸어가는게 좋을 것 같아 함께 내렸더니, 기사님이 내가 가는 목적지를 보여달라고 해서 확인하더니 다시 타라고 했다. 좀 있다가 숙소 바로 앞까지 태워다 주고 짐도 내려줬다. 시크하게 이것저것 손짓하더니 숙소 주인 아주머니도 불러주고 나를 데려가라고 했다. 키르기즈스탄 남자의 츤데레에 반한다.


나를 맞아준건 주인 아주머니와 그 아들. 아들 이름이 바이엘인 것 같았다. 바이엘만 영어를 조금 하고 나머지 분들은 영어는 못하는 것 같았다. 내가 도착한게 1시 50분이었는데, 체크인 시간이 2시여서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그래서 짐을 내려놓고 근처를 둘러보는데, 게스트하우스 바로 앞에 보콘바예보 유일의 글로버스가 있었다. 바로 들어가서 이 날의 첫끼를 해결하려 음식을 좀 샀다.


단백질을 좀 섭취하고 싶어서 우유, 치즈, 빵 그리고 계란 10구를 샀다. 다 해서 214솜, 우리 돈으로 3300원 정도? 확실히 물가가 저렴한 것 같긴 하다.
다시 숙소로 돌아오니 체크인 시간이 되어서 내 방을 안내해줬다. 짐을 풀고 나와, 아침부터 아무것도 못 먹어서 밥을 좀 먹고 싶다고 하니까 주방을 소개해줬다. 주방이 좀 더럽긴 했는데 사실 위생 따지면서 중앙아시아 여행을 하는건 불가능해서 그냥 대충 신경 끄기로 했다. 인덕션도 연결해주고 프라이팬과 식용유, 포크, 접시를 다 가져다줘서 너무 고맙다고 하면서 계란을 프라이를 구웠다. 여기 계란은 한국 계란보다 좀 작은데, 그래서 4개를 프라이했다. 사실 프라이 하려 했는데 노른자가 다 터져서 그냥 스크램블 에그로 바꿔 먹었다. 빵 1/3쪽, 우유, 은박지로 쌓인 치즈(이건 안 짜고 맛있었다), 계란 4개로 첫 끼니를 먹고 마지막에 꿀을 조금 떠 먹었다. 꿀이 진짜 맛있다...

다 먹고 설거지를 하려고 물어봤는데 놔두면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고 했다. 정말 감사하다... 심지어 냉장고 사용할 수 있냐고 하니까 자기 집 냉장고에 넣어주겠다고 해서 마다하지 않고 우유와 계란을 좀 넣어달라고 했다. Спасива, Байел!
이 날은 할게 딱히 없어서 밥을 먹고 나니 컨텐츠가 없었다. 보콘바예보를 온 것은 이식쿨 호수를 마주하고 있는 작은 마을 통에 가기 위해서였는데, 그냥 보콘바예보에 도착해서 바로 통으로 갈 걸 괜히 하루 자고 가는 계획을 잡았나 후회하고 있었다. 뭐라도 해보자 해서 바이엘한테 보콘바예보에서 뭐 할 거 없을까 물어보니 CBT에 가보라고 했다. CBT는 키르기즈스탄에서 관광객이 좀 방문하는 큰 마을에 있는 일종의 관광사무소인데, 여기서는 영어가 통하고 투어 상품이나 택시 연결을 시켜준다. 그래서 바이엘이 알려준 CBT를 향해, 물 절반이 든 페트병과 모자, 마스크 그리고 가방을 매고 게스트하우스를 나섰다.



아뿔사. CBT문이 잠겨있었다. 앞에 가보니 나 말고도 CBT를 찾아온 외국인 커플 두 명이 있었는데, 일정을 물어보니 CBT를 통해 독수리 사냥 체험 프로그램을 예약했다고 했다. 나보고 괜찮으면 같이 가자길래, 가격을 물어봤더니 총 경비가 6000솜이고 이걸 나눠내는 거라고 했다. 괜찮은 것 같아서 정보를 좀 찾아봤는데, 키르기즈스탄 전통 중 하나인 독수리 사냥의 명맥을 잇는 사람들이 보콘바예보 근처에 모여 살고 있고 여기로 가서 독수리 사냥을 보고 독수리를 만져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재밌어보이긴 하지만 여기에 2000솜을 태우긴 좀 아까워서 나는 그냥 도시 구경을 한다고 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산책을 하다보니 블로그에서 본 공원에 도착했다.

공원에 들어가보니 저 멀리 철봉에서 어떤 남자애가 턱걸이를 하고 있었다.

가까이 가봤는데 턱걸이를 잘하길래 괜찮으면 같이 하자고 말 걸어봤다. 흔쾌히 같이 하자고 해서 서로 번갈아가면서 턱걸이를 했다. 턱걸이 하면서, 힘이 조금 부족해질 때 밑에서 등을 밀어주면 한계까지 턱걸이를 할 수 있고 그럼 더 좋다고 했더니 자기는 그렇게 안해봤다면서 좀 꺼려하길래, 그럼 나한테 한 번 해달라고 해서 보조를 받았다 ㅋ. 한 번 해주고 나니까 생각보다 괜찮아 보였는지 자기도 보조해달라고 했다. 엄청 좋아해서 그 후로도 계속 번갈아가면서 턱걸이하고 보조하고 했다.
세트 사이사이 쉬는 시간에 이야기도 많이 했다. 이 친구 이름은 Вилал(빌랄)이었고, 내 이름은 '정'을 Жон이라고 소개했더니 이름이 왜 그렇게 어렵냐고 했다. 알마티에서 비슈케크 오는 버스 티켓에 그렇게 써져있길래 말한거였는데...
운동을 하던 중 자기한테 친구가 있는데, 얘가 운동하기는 싫어하고 먹는 것만 좋아한다고 쓴 소리를 나보고 해달라는거다. 그래놓고 자기가 다 대사를 짜서 나한테 주길래 어차피 볼 일도 없겠다, 그대로 다 해줬다 ㅎㅎ
키르기즈 사람들은 보통 영어를 잘 하는 편은 아닌데 이 친구는 영어를 상당히 잘하길래 어디서 영어를 배웠냐고 했더니, 자기는 비슈케크에서 12살 애들을 가르치는 선생 일을 하고 있는데 보콘바예보에 부모님이 있어서 5일 정도 잠깐 왔다고 했다. 나이가 겨우 만으로 17살인데 선생을 하고 있다고 해서 좀 놀랐다. 내가 (만으로)21살이라고 하니 젊어보인다고 해서 고마웠다. 이제 완전 아저씬데... 한국 군대와 북한에 대해서 많이 궁금해하길래 또 뻥 살짝 섞어서 이야기해줬다. 키르기즈스탄 경제를 굉장히 비관적으로 이야기하길래, 비슈케크 가보니 알라투 광장 인근은 되게 발달해있고 사람들이 아이폰도 많이 쓸 정도로 여유 있어보이더라 했는데 그게 다 가짜라고 했다. 이건 조금 놀랐다. 아이폰을 많이 쓰길래 여긴 값이 조금 싼가? 했는데 다 가짜였구나..ㅋㅋ..
턱걸이로 등을 다 털어서 더 이상 안올라갔는데, 내가 푸시업 하자고 해서 같이 푸시업하고 딥스도 했다. 같이 운동하니까 재밌었다. 운동한 뒤 벤치에 앉아 쉬면서 이야기했었는데, 앞에 앉은 아주머니가 흐뭇하게 웃으면서 우리를 바라보길래 또 Здравствуйте, 했다.
이야기해보니 키르기즈스탄 사람들은 헬스장을 많이 안가고 이렇게 맨몸운동을 많이 한다고 했는데, 이 친구는 경력이 좀 됐는지 몸도 좋아보이고 수행능력도 좋았다. 칭찬도 엄청 해줬다.
세 시 좀 안되어서 같이 운동을 시작했는데 네 시 반까지 운동하고 이야기하다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져온 물은 손 씻고 서로 나눠먹느라고 다 마셔버렸다. 이 친구 만나서 같이 운동하고 이야기한게 무척 신기하고 재밌었다. 기억하자고 함께 사진도 찍었다.

키르기스어도 좀 알려줬는데 'Hello'인 '칸다이' 빼고는 다 까먹었다.
나는 다시 공원을 나와 보콘바예보를 계속 돌아다녔다.













그리고 마을의 북쪽 끝에 다다르자 이식쿨 호수가 보였다.

내가 내일 갈 곳이다. 더 이상 갈 길이 없어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왔다.

지나가는데 어떤 아이가 헬로, 하길래 간단한 러시아어 실력을 뽐내며 이야기했다. 이름이 뭐였더라... 까먹었는데 6살이고 방금 학교가 끝나서 가고 있단다. 집 가야된다고 하길래 프로블로거 정신으로 사진 하나만 찍자고 했다.





다시 CBT에 들러 통으로 가는 마슈르트카, 카라콜로 가는 마슈르트카가 있는지 확인했다. 이번엔 CBT가 열려있었는데, 꽤 어려보이는 여자애가 있었다. 통으로 가는 마슈르트카는 없고, 카라콜로 가는 마슈르트카는 아침에만 몇 대 있고 오후에는 없으며 타는 장소는 CBT 바로 앞이라고 했다. 값은 350~400솜?
통에 다녀온 뒤 모레 아침 일찍 다시 보콘바예보로 돌아와 마슈르트카를 탈 생각에 조금 아찔해졌다.
그렇게 보콘바예보 구경을 마치고 5시 반이 넘어 숙소로 돌아왔다. 보콘바예보에서 카라콜 가는 마슈르트카 정보를 더 찾아봤는데, 정보가 거의 없었다. 한참 끙끙대다가 7시가 가까워져서 저녁을 또 먹어야했다.

이번에 지내는 방은 싱글룸이다. 이정도에 조식 제공이고 친절하기까지 한 주인들이 있는 방이 14달러, 거저다 거저!!
점심처럼 바이엘에게 부탁해서 프라이팬, 식용유, 포크, 접시를 받아오고 다시 계란 프라이 4개를 해서 빵, 치즈 그리고 우유와 함께 먹었다. 이번엔 빵을 많이 안먹었는데, 배가 그렇게 고프지는 않았었다. 그리고 계란 프라이는 성공했는데, 이땐 또 사진을 안찍었네. 설거지는 또 바이엘이 한다고 놔두라고 했다. 고마워라.
저녁을 해치우고 다시 방으로 돌아와 또 정보를 찾다가, 바이엘에게 카라콜로 가는 마슈르트카에 대해 물어보니 10시부터 오후 5-6시까지는 있을거라고 했다. 뭐가 맞는걸까? 일단 내일 통에서 하루 자고, 모레 조금 일찍 출발해서 보콘바예보 터미널에 죽치고 있어봐야 할 것 같다.
이후 파미르 하이웨이 정보를 찾아보다가 글을 마무리했다. 내일은 보콘바예보 인근의 이식쿨을 접한 마을 통으로 떠난다. 차로 30분 거리인데 히치하이킹을 해 볼 생각이다. 정 안되면 걸어가도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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