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9. 4.(목)
오랜만에 독방을 써서 정말 잘 잤다. 9시에 조식을 준다고 했는데, 7시 반에 눈이 떠져 할 것도 없어 보콘바예보에서 카라콜로 가는 마슈르트카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보콘바예보 버스 터미널로 걸어갔다.
걸어가면서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아보다, 카자흐스탄 - 키르기즈스탄 국경에서 비슈케크로 넘어오는 34번 시내버스에 대해 알려준 외국인 블로거의 글을 다시 한 번 발견했다.


댄의 글에 따르면 카라콜에서 보콘바예보로 가는 310번 혹은 315번 마슈르트카가 발릭치 혹은 보콘바예보로 가는데, 이동 중 스카즈카 협곡에서 내려서 협곡을 관광할 수 있다. 마슈르트카의 특성을 고려할 때, 카라콜에서 보콘바예보로 가는 마슈르트카가 있다는건 그 차가 다시 카라콜로 돌아갈 때 보콘바예보에서 카라콜로 가는 사람들을 태워서 간다는 뜻이었다.
희망을 품고 터미널로 걸어갔다.


터미널을 향해 10분 좀 안되는 거리를 걸어가니, 아니나 다를까 카라콜로 가는 마슈르트카가 기다리고 있었다.

기사 아저씨한테 물어보니 매일 아침 7시 30분부터 마슈르트카 운행이 시작되고, 하루 5대가 있으며 한 차량이 가득 차면 출발하기 때문에 정확히 정해진 출발시간은 없다는 것이었다. 내일 다시 오겠다고 말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로 돌아와서는 이틀 전부터 고민하고 있던 파미르 하이웨이 횡단 투어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원래는 히치하이킹으로 파미르 하이웨이를 횡단할 생각이었는데, 히치하이킹은 몇 가지 장단점이 있다. 내가 생각했을 때는 단점이 더 많았다.
장점 : 훨씬 싸게 파미르 하이웨이를 횡단할 수 있다 / 일정을 유동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 내가 하고싶은 대로 해도 된다
단점 : 9월 중순에 들어서면 파미르 하이웨이 투어는 비수기에 막 접어들고 있는 상황인데, 파미르 하이웨이 횡단에서 가장 어려운 구간인 사리타쉬 → 무르갑 방향의 히치하이킹이 불가능 할 수 있다. 이 구간을 이동하는 현지인이 극히 적어져 말 그대로 부르는게 값인 상황 /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 / 갈 수 있는, 구경할 수 있는 포인트가 한정되어 있다 / 멋진 풍경이 나와도 잠시 멈춰 감상할 시간이 없을 수 있다
내가 선택한 Visit Alay의 파미르 하이웨이 투어는 9월 17일 ~ 25일 오쉬에서 두샨베로 향하는 8박 9일 일정으로, 파미르 하이웨이를 히치하이킹으로 지나기로 했을 때 가보고 싶었던 도시를 모두 지날 뿐 아니라 새로운 관광지도 가고, 확실하게 안전을 담보할 수 있었다. 총액 2000달러를 최대 4명의 여행객이 나눠 내는 건데, 이미 2명이 예약을 완료해서 지금까지 나를 포함해 3명이 예약한 상태다. 이대로 한 명이 더 모집되지 않는다면 개인당 687달러를 차+드라이버 비용으로 내야하고 한 명이 더 예약 신청한다면 500달러를 내면 된다. 제발 누가 예약 좀 해줬으면 좋겠다...
내가 결제한 건 500달러에 추가로 파미르 고원을 입장할 수 있는 허가증(GBAO permit)에 서비스 요금이고, 다 해서 560달러를 낸 것이다. 두샨베에 가면 GBAO를 10달러면 발급받을 수 있지만 나는 파미르 고원을 통과한 뒤에야 두샨베에 가고, 그냥 이미 돈 쓴 김에 귀찮게 하지말고 다 써버리자 싶어서 여행사에다 대리 신청을 요청한 것이다.
나중에 다시 한 번 파미르 하이웨이를 횡단할 때는 오토바이로 횡단하거나 히치하이킹을 해보고 싶다. 지금은 처음이니까... 이때 아니면 또 언제 넘어가겠나 싶어 그냥 투어를 신청했다. 결국 17일까지는 계속 키르기즈스탄에 있어야 하는데, 일정을 잘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결제를 하고 짐을 다시 쌌다. 원래 계획은 보콘바예보에서 5키로 정도 떨어져있는 작은 해안 마을 통(Tong), 그리고 그 중심에서도 5키로 정도 떨어진 해안 바로 앞에 자리잡은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루 숙박하며 이식쿨 호수에 입수하는 것이었다. 걸어가거나 히치하이킹을 해 볼 생각이어서 큰 가방은 숙소에 맡겨두고 작은 가방에 하루 지낼 옷들과 씻을 것, 빨래할 것을 모아 짐을 챙겼다.
9시가 되어 아침을 먹었다.


이 날은 그냥 통 마을의 게스트하우스에 체크인하는게 목표여서 시간은 굉장히 여유로웠다. 아침 먹고 차를 마시면서 게스트하우스 주인 아들하고도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여유롭게 있다가 9시 45분쯤 내일 보자는 인사를 하고 게스트하우스를 나섰다. 그런데 숙소를 나서서 걸어가다보니, 보콘바예보에서 통으로 가는 차를 히치하이킹해서 잡아타면 숙소까지 가는데 10분도 안걸리는데 그럼 하루가 너무 지루할 것 같았다. 마침 걸어가는 길에 자전거 가게가 보이길래 자전거나 빌려타서 이식쿨 호수를 좀 돌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보콘바예보 유일의 자전거 가게다. 부품 수리도 하고 자전거 렌트도 해주는 곳이었다. 하루 빌리는데 800솜이라길래 헉! 너무 비싸요... 저는 가난한 학생입니다, 한국과 키르기즈스탄은 친구입니다 하면서 500솜 부르다가 600솜에 합의를 봤다. 9600원에 하루 자전거 렌트인데, 사실 좀 비싼 것 같았는데 기분값으라 생각하고 자전거를 빌렸다. 여권을 맡겨야 빌릴 수 있어서 여권 잘 챙겨달라고 부탁도 하고 자전거를 타고 보콘바예보를 떠났다.
처음엔 정말 기분이 좋았다.

보콘바예보에서 통으로 가는 길은 쭉 내리막길이어서 페달도 밟지 않고 바람을 맞으며 프리 라이딩했는데 이때 정말 기분이 좋았다. 이식쿨 호수는 넓은데다 예쁘고, 길가에서 공사하는 아저씨들이 손도 흔들어주고 주위로 보이는 산들도 예뻐서 이미 600솜어치 행복은 차고 넘치게 받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리막길이 계속되니까 슬슬, 돌아올 때 어떡하지 생각이 들긴 했는데, 다음 날 자전거를 타고 다시 보콘바예보로 갈 예정이었으니 '내일의 내가 잘 하겠지' 하고 그냥 넘어갔다.
해발 1800미터에 위치한 이식쿨 호수는 주위에 4000미터급 고봉이 즐비하게 둘러싸고 있고, 만년설과 빙하가 녹은 물이 분지 지형으로 흘러들어 들어오는 물만 있고 나가는 물은 없으며 염분이 있어 겨울에도 얼지 않는 호수다. 이식쿨 호수는 내륙국가인 키르기즈스탄에 수산물 자원을 공급하고 소련시절부터 여름 휴가지로 각광받았다고 한다. 남부 이식쿨은 북부 이식쿨에 비해 최근에서야 발달되기 시작했는데, 그래서인지 물놀이 하는 사람이 많이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게 통을 지나 계속 달리다보니, 문득 근처에 블로그에서 읽어봤던 스카즈카 협곡이 있다는게 떠올랐다. 내가 읽은 블로그는 보콘바예보와 카라콜 사이의 작은 도시 토소르에서 스카즈카 협곡까지 걸어서 한 시간 정도 거리를 히치하이킹으로 다녀왔다는 글이었는데, 그것 말고도 블로그 후기를 여럿 찾아보니 비슈케크에서 카라콜로 가는 길에 많이들 들러 구경하는 관광지였다. 이 날 할 것도 딱히 없겠다, 자전거도 빌렸겠다, 스카즈카 협곡까지 자전거 타고 한 번 다녀와볼까? 지도로 세 시간 좀 넘게 찍히는데 6시 전에는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으니 괜찮을 것 같은데? 하고 무모한 도전을 시작했다. 보콘바예보에서 편도로 34키로 떨어진 곳을 자전거 타고 왕복하겠다니, 정말 미친거다. 이때는 힘들면 중간에 돌아오면 되지, 하고 가볍게 생각하고 출발했었다.





한 절반쯤 달려 작은 마을 카지세이에 도착했을 때 잠시 쉬었다. 카지세이 역시 블로그 후기가 많은 도시였는데, 역시 스카즈카 협곡을 방문하기 위한 거점도시 중 하나였다. 이때부터는 슬슬 힘들어지기 시작했는데, 문제가 다리는 전혀 아프지 않은데 안장이 너무 좁고 딱딱해서 앉는 부위가(...) 상당히 많이 아파왔다. 진짜 많이 아팠다...

몇 키로 더 달리다가 이대로는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조치를 취했다. 하루 숙박하려고 가져온 가방에서 두꺼운 옷을 꺼내 안장 위에 덧대고 신발주머니를 이용해서 그 위를 묶어 고정했다. 문제는 신발주머니에 들어있던 슬리퍼를 잘 챙겨야 했다는 건데, 한참 고민하다가 자전거 자물쇠를 신발과 함께 가방에 거니 딱 맞았다. 캬, 하고 다시 자전거를 달렸다.
안장을 덧대니 조금 낫긴 했는데, 여전히 아팠다. 반납할 때 사장님한테 안장 좀 바꾸라고 따져야겠다는 생각만 하면서 달렸던 것 같다. 이때부터는 주위 풍경도 다 비슷해서 풍경은 들어오지도 않고, 되돌아갈까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데 이만큼 온 게 아까워서 어떻게든 스카즈카 협곡까지 가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지나가면서 해안가에 리조트를 굉장히 많이 짓고 있는 것을 보았다.

리조트가 되면 여름에 이곳을 찾는 사람이 무척 많아질 것 같았다. 바로 옆 마을인 카지세이도 더 커지지 않을까? 이거 완전 호재네...
이 사진을 찍을 때쯤엔 진짜 엉덩이가 너무 아파서 도저히 못 갈 것 같았는데, 스카즈카 협곡까지 4.5키로 밖에 안남았다고 해서 하...미치겠네 하고 그냥 달려갔다. 여기서라도 그냥 되돌아가지 목표 좀 못 이루면 어떻다고 계속 자전거를 탔는지 모르겠다.

이때는 진짜 힘들어서 가다가 쉬고 가다가 쉬길 반복했고, 심지어 오르막길이라 4.5키로 가는데 20분 넘게 걸렸던 것 같다.



그렇게 결국 스카즈카 협곡에 도착했다. 10시 좀 넘어서 출발했는데 1시 반쯤 스카즈카 협곡에 도착한 것이다. 협곡 구경도 하려고 했는데 돌아다닐 힘도 없고 블로그 찾아보니 예쁘긴 한데 자전거 타고 오면서 본 풍경이랑 어딘가 닮아있는데다가 입장료도 200솜이라길래 그냥 되돌아가기로 했다.
스카즈카 협곡 구경간 사람이 아니라 그냥 스카즈카 협곡 입구를 간 사람이 되었다.

다시 자전거를 돌려 출발하기 전 쉬고 있었는데, 앞에서 공사하고 있던 사람들이 쉬고 있다가 말을 걸어서 이야기를 좀 했다. 키르기즈스탄 사람들이었는데, 영어 할 줄 아는 사람이 있어 다행히 소통이 됐다. 이때 차 좀 얻어탈 수 있을까 싶어서 언제 보콘바예보로 돌아가냐고 하니까 5~6시는 되어야 간다고 해서 그냥 단념하고, 쉬는 시간이 끝나자 나는 다시 보콘바예보를 향해 자전거를 달렸다.


돌아오는 길은 진짜 힘들었다. 이때는 안장에 앉은 엉덩이 뿐 아니라 다리도 슬슬 아파오기 시작해서 다시 보콘바예보에 갈 수 있을지 슬슬 걱정이 되던 때였다. 가방에 포카리스웨트 분말을 챙겨와서 물에 타먹고, 꿀이 있어서 꿀 퍼먹고 하면서 겨우 버텨서 자전거 페달을 계속 밟았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를 죽을듯이 달려 딱 중간거점인 카지세이에 도착했다.

카지세이에 가면 상점에 들러 반드시 음료수를 사먹겠다는 생각으로 계속 달렸는데 아무리 봐도 상점이 안보이는거다... 신기하게 배는 안 고팠고 탄산음료가 정말 먹고 싶었다. 그래서 그냥 식당으로 갔다. 이 식당에는 탄산음료는 또 안팔더라고... 정말 슬펐다.


음식이 나오는데 오래걸려서 거의 40분을 쉬고 다시 자전거를 탔다.
그런데 생각보다 오래 쉬었더니, 다시 자전거 페달을 밟을 때 허벅지에 경련이 왔다. 진짜 큰일났다... 싶었는데, 오르막이 보이면 자전거 끌고 걸어가고 내리막이나 평지에서는 어떻게든 자전거 페달 밟으면서 계속 갔다. 자전거로 여길 오겠다고 한 내 자신을 얼마나 욕했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평소에 자전거 타는 것도 아니면서? 거의 3년만에 자전거 탄 것 같다. 운동을 계속 하고 있었으니 괜찮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할 수 있는게 걷고 자전거 타는 것밖에 없어 죽어라 갔다. 중간에 쉬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시간도 한참 걸려 4시 50분쯤 통 마을에 도착했다. 이번엔 반드시 음료수 사먹어야지, 했는데 통 마을의 작은 상점에는 내가 먹을 수 있는 카페인 없는 탄산음료 환타는 안팔고 콜라밖에 안팔았다. 이 와중에도 잠 자는 걸 걱정해서 카페인 없는 음료를 찾는거보니 고생을 덜 했던 것 같다. 정말 어쩔 수 없이 맥주를 사 마셨다.

원래 통 마을에서 자려고 해서, 마을 중심에서 해안가쪽으로 5키로 정도를 가면 해안을 바로 접하고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체크인해야 했다. 그런데 이때 와서는, 그 다음 날 다시 자전거를 끌고 보콘바예보까지 거의 10키로를 타고 가면 나 정말 죽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서, 어차피 5키로를 가야 하는데, 보콘바예보까지도 5키로니 그냥 보콘바예보에 가서 자전거 반납하고 전날 잤던 숙소로 다시 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왓츠앱으로 이야기해 두었던 통 마을의 숙소에는 연락해서 못 가겠다고 하고, 보콘바예보의 숙소에는 자리가 있는지 없는지도 확인 안 한 채 그냥 갔다. 가는 길에 구글지도를 보니 도로에 접한 게스트하우스가 인근에 있어 가봤는데 문을 두드려도 주인은 나오질 않았다. 이젠 정말 보콘바예보로 다시 가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문제는 통에서 보콘바예보까지는 쭉 오르막이라는 것이었다... 자전거 기어를 최대로 낮춰서 페달을 밟아 갔는데, 이때는 정말 한계였다. 도저히 안되겠어서 자전거를 끌고 가는데, 햇살은 따갑고 눈앞은 점점 흐려져서 이대로는 절대 보콘바예보까지 못 간다 싶어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히치하이킹을 시도했다.
자전거가 없었다면 히치하이킹이 어렵지 않았을 테고 조금만 힘들었어도 바로 히치하이킹을 시도했을 텐데, 자전거를 가지고 있어서 이걸 차에 싣고 가달라고 하기엔 너무 민폐일 것 같았다. 히치하이킹 생각은 카지세이에서부터 계속 했었는데, 민폐일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어서 시도를 못했다. 이제는 내가 죽게 생겼는데 민폐가 문제냐, 해서 그냥 지나가는 차 중에서 좀 큰 차가 보이면 다 손 흔들었다.
몇 번 하다보니까 정말 고맙게도 픽업트럭 한대가 섰다. 러시아어의 이동동사를 간신히 기억해내 띄 이됴시 브 보콘바예볘? 를 외치니 그렇다고 해서 나 좀 태워줄 수 있겠냐고 바디랭귀지로 간절히 부탁했는데 정말 흔쾌히 내려서 자전거도 트럭에 같이 올려주고 나도 태워줬다. 타서 계속 스파시바, 스파시바 이랬는데 별거 아니라고 해서 정말 눈물이 날 뻔 했다. 러시아어를 배워서 정말 다행이었다...



증기기관의 발명가 제임스 와트, 최초의 증기 자동차를 발명한 프랑스의 니콜라 퀴뇨, 최초의 가솔린 자동차를 만들어 특허를 받은 독일의 카를 벤츠 등등 자동차를 발전시킨 모든 인물들에게 감사했다.(출처 : 나무위키ㅎ) 문명의 이기를 누리고 있음에 항상 감사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캐리어 따위가 아니라 증기기관을 발명한 제임스 와트가 인류사의 진정한 GOAT라는걸 알게 됐다. 내 생명의 은인에게도 너무 감사하다. 키르기즈스탄에 지내는동안 키르기즈스탄 사람들에게 정말 잘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자전거 가게 앞까지 태워다줘서 자전거를 반납하고, 여권을 다시 받아 전날 묵었던 숙소까지 10분을 걸어갔다.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하루 잘거라고 가방에 짐을 많이 챙긴 것도 패착이었다. 심지어 물을 2L를 넣어간 미친놈이었다. 그렇지만 그 물이 없었으면 못버텼을거야...

숙소 주인을 찾아가 방이 있냐고 물어보니, 어제 사용한 방은 새로 게스트가 들어왔고 바로 앞에 더블룸이 있는데 1인 가격으로 해주겠다고 해서 전날과 같이 1200솜을 내고 방을 받았다.


방에 짐을 풀고 샤워하니 행복하다는 생각이 아니라 살았다는 생각밖에 안들었다. 흙먼지를 잔뜩 머금은 옷과 안장으로 깔아두었던 옷을 한참 시간을 들여 다 빨래하고, 겨우 침대에 누웠다. 온 몸이 뻐근했다. 뭘 많이 먹지도 않았는데 배는 하나도 안고파서 계속 누워서 유튜브를 보다보니 몸살 증세가 와서 으슬으슬하고 추워졌다. 다행히 경량패딩을 챙겨와서 패딩을 입고, 뭐라도 먹어야 할 것 같아서 숙소 앞 글로버스에 가서 샌드위치를 샀다.

단단히 미친놈인게, 몸이 추워지니 약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게 아니라 보드카 먹어서 따뜻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상점에 딱 한 컵 분량의 보드카를 단 돈 50솜(800원!)에 팔길래 업어와서 샌드위치랑 먹었다.

보드카가 먹으니까 속이 엄청 뜨거워지고 노곤해졌다. 다 먹고 나서 금방 잠들었다. 밤에 속이 너무 안좋아서 일어나보니 새벽 한 시도 안되었는데, 아마 보드카때문에 속이 안좋아진 것 같았다. 몸살 기운도 심해져서 챙겨온 타이레놀 두 알을 먹고 다시 잠들었다. 새벽에 계속 깼다가 잠들었다를 반복하다, 7시 반쯤 완전히 일어났다. 속은 여전히 계속 안 좋았다. 소주 2병을 먹은 듯한 숙취였다. 양이 적은 보드카가 저것밖에 없어서 가져온 건데, 엄청 싸구려 보드카였나보다..ㅠㅠ
25. 9. 5.(금)
아침에 일어나니 엄청난 갈증이 났는데, 물도 없어서 또 글로버스에 가서 물과 시원한 과일차를 사왔다. 뭐라도 단 걸 먹어야 속이 괜찮아질 것 같았다. 계산을 끝내고 500미리 병을 단번에 비웠다. 속이 좀 나아지긴 했는데.. 여전히 힘들었다. 힘들어도 이 날은 카라콜로 이동해야 했어서 간신히 기운을 내 짐을 다 쌌다.

숙소에는 나 말고도 두 명의 여행객이 더 있어서 같이 아침을 먹었다. 영국인 잭도 전날 스카즈카 협곡을 다녀왔다는데, 거기서 발을 헛디뎌 발목을 삐었고 병원에도 다녀왔는데 한동안은 잘 걷지도 못할 것 같다고 했다.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그래도 난 다치진 않았으니 다행이었다. 잭의 쾌유를 빌어주고 짐을 모두 챙겨 터미널로 걸어갔다.
전날 확인한대로 마슈르트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얼른 발걸음을 재촉했다. 럭키! 다행히 카라콜로 가는 마슈르트카가 있었다.

비슈케크에서 보콘바예보로 올 때는 한 시간 반 이상 인원이 채워지길 기다렸는데, 이번엔 내가 타자마자 5분도 안되어서 차가 출발했다. 조금만 늦었으면 또 엄청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마슈르트카는 전날 자전거를 타고 지났던 익숙한 도로를 따라 카라콜로 향했다. 통, 카지세이, 토소르, 바르크순 등등 카라콜로 가는 길에 있는 정류장에 들러 승객을 태우기도 하며 2시간 반을 달려 그렇게 카라콜에 도착했다. 보콘바예보에서 토소르 즈음까지 가는 길은 포장이 잘 되어 있는데, 토소르에서부터 나머지 절반의 경로는 포장도 제대로 안 되어 있어 속이 더 안좋아진 것 같았다. 하... 나란 놈 왜 그랬니, 계속 후회하면서 버스를 타고 달렸다.




카라콜은 이식쿨 동부 관광의 거점도시로, 인근에 여러 명소가 있다. 나뿐 아니라 많은 여행객이 카라콜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알틴아라샨 그리고 아라콜패스 트래킹인데, 나는 다음날 알틴아라산 마을로 트레킹을 가기로 예약해 둔 상태였다. 그래서 이날은 무조건 심신의 안정을 취해야 했다.
터미널에서 숙소까지는 1.5키로 정도로, 평소라면 무조건 걸어갔을 텐데 이날은 배낭도 모두 가지고있겠다 상태도 안좋아서 택시를 찾았다.

아니 근데 택시가 5분 가는데 120솜을 달라는거다. 보콘바예보에서 카라콜 오는데 300솜이었는데 미친거지? 그래서 그냥 히치하이킹을 해보기로 했다.
앞뒤로 가방매고 있는 동양인이 불쌍했는지 한번에 히치하이킹을 성공했다. 숙소 바로 앞 공원까지 데려다줘서, 버스요금 정도인 20솜을 감사표시로 줬다.
체크인이 1시였는데 12시 20분쯤 공원에 도착했다. 좀 쉬는데 화장실이 너무 가고싶어서... 숙소로 그냥 출발했다. 5분정도 걸어 숙소를 찾았다.


체크인 안되는거 아는데 화장실만 쓸 수 있냐고 물었더니 그냥 체크인 하라고 해서 감사하게도 얼리체크인을 했다.

도미토리인데 방 상태도 정말 깔끔하고 주인이 시트를 다림질하고 있는 것도 봐서 위생은 정말 좋은 것 같았다. 구글 리뷰도 위생에 대해 칭찬일색이었다. 알틴아라샨 트레킹 가는 길에 있어서 위치도 나쁘지 않은데 값도 800솜에 불과해서 정말 가성비 좋은 숙소를 찾은 것 같았다.
일단 좀 쉬어야해서 짐 풀고 바로 잤다. 1시 반부터 거의 3시 반까지 자니까 좀 나았다. 그렇지만 속은 여전히 안 좋았다. 일단 내일 트레킹가서 먹을걸 좀 사야하기도 했고, 환전도 해야해서 중심가까지 20분정도 걸어갔다.



듀엣호스텔 앞에 마트가 있는 것 같길래 이따 여기서 먹을걸 사야겠다 생각했다.




내일 갈 알틴아라샨 지역은 해발 3000미터 정도로, 고산병이 본격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고도여서 약국에 들러 고산병약을 샀다. 카라콜 시내의 약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다. 10알에 20솜으로 무척 저렴하다. 약효가 있을까..?






카라콜은 환율을 좀 더 잘쳐준다. 보콘바예보는 1달러에 87.2솜이었는데 여기는 87.35솜이었다. 100달러를 환전했다. 좀 쉬려고 공원을 찾아갔다. 쉬면서 알틴아라샨 가는 정보를 좀 찾아봤다.




좀 쉬다가 카라콜의 명물 아쉴란푸를 먹으러 갔다. 내 점저.

아쉴란푸는 키르기즈스탄 전통 냉국수인데 맛있다는 말이 많아서 기대를 했었다.





돌아가는 길에 듀엣 호스텔 앞에서 본 마트에서 물을 사려했는데, 문을 닫았다. 멘붕이 왔는데 네 블럭 옆에 글로버스가 있다는 걸 발견해서 그냥 걸어갔다.

속이 계속 안 좋아 물 한 병과 환타 500미리 한 병을 샀다. 여기 환타가 맛나다. 우리나라 환타보다 훨씬 맛있다. 전에 육식맨 영상에서 유럽 환타는 과즙 비율이 높아 우리나라 환타보다 맛있다고 했는데, 이것도 똑같은 것 같다. 엄청 맛있었다. 덕분에 속도 좀 좋아진 것 같았다.
숙소에 들어와서 씻고 또 빨래하고 쉬다가 글을 쓴다.

내일은 다시 트레킹을 간다. 앞으로 여행할 때 일정을 적당히 힘들게 잡아야겠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
'그 외 이야기들 > 2025년 유라시아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중앙아시아 기행] 7. 카라콜 악수 온천 다녀오기 / 카라콜 시내 투어 / 카라콜에서 촐폰아타로 마슈르트카 타고 가는 법 (8) | 2025.09.10 |
|---|---|
| [중앙아시아 기행] 6. 알틴-아라샨 트레킹, 카라콜 350번 마슈르트카 타는 법 / 하산하고 카라콜 돌아오기 (0) | 2025.09.08 |
| [중앙아시아 기행] 4. 비슈케크 알라 아르차 국립공원 버스로 가기 / 비슈케크 → 보콘바예보 마슈르트카로 가기 (2) | 2025.09.04 |
| [중앙아시아 기행] 3. 알마티 → 비슈케크 버스 이동, 국경 넘는 방법 그리고 비슈케크 시티 투어 (2) | 2025.09.02 |
| [중앙아시아 기행] 2. 알마티 시내 구경 (5) | 2025.09.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