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1. 1. ~ 25.11. 3.
이날, 플로브디프에서 소피아로 가는 1시 버스를 예매한 터라 아침에 여유가 있었다. 할 수 있다면 더 일찍 출발하는 버스를 예매했을 테지만 1시 출발 버스가 가장 빠른 차편이어서 별 도리가 없었다.
11시에 방을 비우고 공용공간에서 휴대폰을 보고 있다가 12시쯤 숙소를 나섰다. 플로브디프 버스 터미널까지는 걸어서 30분 정도 걸리는데, 플릭스버스를 타는 장소가 정확히 나와있지 않아서 혹시 몰라 좀 일찍 출발했다.
그런데 가는 길에 유니폼 입은 사람들이 모여서 알레알레~~ 하고 있었다. 티스토리는 동영상이 첨부가 안돼서 찍어놓은 동영상을 못 올리는데... 플로브디프가 정말 조용한 도시라고 생각했는데 축구 할 때는 또 다른가봐.


아마 보통 경기가 아니라 결승? 정도는 되는 큰 경기인 것 같은 느낌.

터미널에 가는 길에도 계속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을 마주쳤다. 글을 쓰다가 궁금해서 검색해보니까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하네. 우리로 치면 잠실 엘지두산전같은 느낌이려나...ㅋㅋ 경기 중 팬들의 투척물로 경기가 중단되었다는게 재밌다.
다시 길을 떠난 나는 전날 걸어갔던 공원을 지나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정확히는 버스 터미널로 가면 안되고 기차역으로 가야했는데, 어차피 둘이 바로 붙어있어서 가는 길에 플릭스버스를 발견했다.

아직 탈 시간이 안돼서 근처 마트에 가서 빵을 두 쪽 샀다. 소피아로 가는 버스는 이것 말고도 뒤에 주차된 버스 한 대가 더 있었다.

2년도 더 전에 뉴욕에서 워싱턴DC로 가는 버스를 탄 게 마지막이었다.
버스 안에서는 자느라 뭐 한 게 없다. 예정 도착시간은 15:20이었는데, 기사님이 열심히 밟으셨는지 15시에 소피아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버스터미널에서 숙소까지는 걸어서 30분 정도 걸렸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지하철을 타고 갈 수 있었지만 유심이 없었던터라 대중교통 탈 생각은 못하고 그냥 걸어갔다. 그래도 가는 길에 뭔가 볼 게 있을거라는 생각이었다.

불가리아의 상징이 사자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소피아 곳곳에서 사자 조각상을 볼 수 있다. 불가리아의 화폐 단위인 레프(лев) 역시 사자와 연관되어 있다고 하는데...
소피아에 도착하고 느낀건 트램이 정말 많다는 것이었다. 버스는 안보이고 온통 트램이고, 도로에 트램이 다닐 수 있도록 전기줄이 쫙 깔려있어서 교통에 방해가 될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들긴 했는데, 있어보니 그정도로 차가 많지는 않아서 교통체증은 한 번도 못봤다.

숙소로 걸어가는 짧은 길에 한인마트를 두 개나 봤다. 찾아보니 불가리아 시내에 한인마트와 한식당이 꽤 많았는데, 후기가 거의 다 불가리아 현지인 케이팝 팬이더라. 여기도 BTS가 침투했나보다.

발칸반도는 이스탄불보다도 일찍 오스만 제국에게 함락당했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이슬람 신자가 많고 당연히 모스크 유적도 많다. 다만 히잡 쓴 사람이 많이 보이지는 않는다. 내가 본 유튜브 영상에서는 적어도 10프로는 이슬람 신자라고 했는데, 문득 궁금해진다.

나도 한 번 물을 떠 먹어봤는데, 차가운 물이 아니라 뜨거운 물이 나온다. 심지어 유황냄새까지 나는 진짜 온천수다. 소피아가 실제로 온천으로 유명하다고 하긴 하더라.

여기까지 욌으면 숙소에 거의 다 온 것이다. 5분 정도 더 걸어 호스텔에 도착했고, 체크인을 하고 짐을 놓았다. 잠시 휴대폰을 확인하다 토스 앱에서 12월 1일까지 본인 확인을 하라는 걸 봤는데, 지금 나는 유심을 잃어버린 상태라 본인 확인이 안 된다... 근데 이거 못하면 12월부터는 토스를 사용할 수 없고 그러면 트레블월렛 카드도 충전을 못하는 대참사가 일어나는 상황이었다. 급한대로 알아보다가 KB 나라사랑카드 계좌를 트레블 월렛에 연결하는건 성공했는데, 내가 가져온 카드가 트레블월렛이랑 토스카드밖에 없어서 12월 이후로는 트레블월렛 카드를 잃어버리면 진짜 끝장나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유심 좀 잘 챙길걸... 어디서 잃어버렸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ㅠㅠ
하여튼 이거 해결한다고 숙소에서 한 시간 정도 씨름하다가 밖으로 나왔다.

세르디카역은 굉장히 특이하게도 지하철역 내부에 로마시대의 유적이 전시되어있는 역인데, 2010년도 초에 지하철 2호선 공사를 하다가 로마시대의 유적이 발견되어 노선을 수정하고 그때 발견된 유물 일부를 지하철역에 함께 전시해두었다고 했다. 로마시대의 포럼을 밖에서도 잘 관찰할 수 있게 개방형 광장 형태로 만들어두어서 주변 경관과도 잘 어울렸다.


세르디카역은 불가리아 정치의 중심지기도 한데, 의회의사당, 정부청사, 대통령궁이 모두 모여있다.



세르디카역 주위로 뭐가 다 모여있기는 한데, 배치된게 좀 중구난방으로 느껴지고 뭔가 좀 웅장한 느낌이 없다. 폭이 너무 좁고 중간중간 지하철역의 환풍시설 같은 것들이 걸리적거리는 느낌이다. 아무리 돌아다녀도 아직까지는 광화문 광장만한데가 없다. 덕수궁에서 광화문 광장으로 걸어가는 길과 청계천쪽이 진짜 잘 만들어졌다는걸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일단 의회의사당을 지나, 소피아의 상징이자 불가리아인들의 정신적 지주라는 알렉산드르 넵스키 성당쪽으로 걸어갔다. 그러다 중간에 성 니콜라스 교회를 만나 잠깐 들어가봤다.

불가리아의 교회/성당은 보통 입장료는 없는데 내부 사진은 돈을 내고 찍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성 니콜라스 교회도 그래서 내부 사진은 없는데, 들어가보니 예배를 드리는 중이어서 잠시 구경했다. 불가리아 정겨회의 예배모습이 궁금해서 좀 오래 있었던 것 같은데, 성호를 긋고 항상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모습이나 성상(이콘)에 입을 맞추는 모습들이 되게 신기했다. 그것 외에도 신부님과 성가대가 노래를 부르듯이 예배를 진행하는데, 성가대의 목소리가 진짜 성스럽다. '성스러움'의 현현이라고 해야할까? 너무 좋아서 한참 듣고있었던 것 같다.
분명 밝을 때 들어갔는데 예배를 보고있다가 밖에 나오니 해가 지고 있었다. 얼른 알렉산드르 넵스키 성당으로 걸어갔다. 의사당 건물에서는 도보로 10분 정도?


외부는 랜드마크라고 하기엔 좀 평범한 모습이었는데 내부는 꽤 화려했다. 천장이 무척 높고 돔이 큰데, 그 내부를 성화로 가득 채운 모습이 볼만했다. 역시 내부 촬영은 10레프(약 8500원)을 내야 해서 안찍었고, 구글 리뷰 사진을 가져와봤다.

내부를 둘러보고 나오니 어둠이 내려앉았고, 성당 종탑에서 타종이 진행되고 있었다. 근처 벤치에 앉아 종소리를 듣고있었다. 생각보다는 종소리가 조화롭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냥 들었다.


옆에서 보니까 좀 더 예뻤다.

타종 행사가 끝나고 날도 어두워져서 숙소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이 좀 무서울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사람들도 많고 조명이 예뻤다.

들어가는 길에 슈퍼마켓에서 장을 봐왔는데, 뭘 먹을까 하다가 아침 점심에 계속 빵만 먹었어서 단백질 섭취를 해야할 것 같아서 닭가슴살과 토마토를 사왔다. 원래는 소금 후추 뿌려서 구워먹으려고 했는데 여기 호스텔은 식용유, 소금, 후추도 돈 내고 사용해야 하는거다. 아니 내려면 낼 수는 있는데 기분이 나빠서 오기로 삶아먹었다.

근데 굉장히 촉촉하게 잘 삶아서 맛있게 먹었다. 비린내도 안나고 괜찮았다.
닭을 삶는 중 불가리아의 한 소도시에서 의대를 다닌다는 우크라이나 청년을 만났는데, 컨퍼런스 때문에 소피아에 와있다고 했다. 밥을 먹으면서 얘기를 많이 했다. 나는 유튜브 보면서 먹고 싶었는데... 그래도 재밌게 얘기하고 헤어졌다. 공부를 하고싶었는데 여기 호스텔은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 도저히 나오지를 않아서 그냥 방에서 다음에 여행할 곳들 정보도 찾아보고 침착맨도 보고 했다. 참고로 이번에 나온 성세천하-여제의 탄생편 진짜 재밌다... 6시간 반짜리를 스킵없이 계속 돌려보면서 쉼없이 웃으면서 봤던 것 같다.
다음날 8시쯤 일어나 침대에서 조금 빈둥대다가 9시에 숙소를 나섰다. 근처 마트에서 크루아상과 뱅오쇼콜라에 요거트를 사서 세르디카역 옆 공원에서 먹었는데, 아주 좋았다. 유럽이라 그런지 마트에서 파는 빵도 진짜 맛있었다. 뱅오쇼콜라가 너무 맛있었다.
이날은 딱히 계획은 없었고 그냥 소피아 시내를 이곳저곳 돌아다닐 생각이었어서 그냥 발길 닿는대로 걸어갔다.

세르디카역 안에 성당 건물이 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안에서 예배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일반인의 출입은 막아서 밖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대통령궁 내부에 교회가 있다고 해서 한 번 가봤다.

나중에 알았는데 정각쯤에 가면 교대식도 볼 수 있다고 한다. 나는 못봤다...

아니 근데 대통령궁 1층?이 온통 상가 건물이다. 청와대나 백악관 같은 철통보안 대통령실에 익숙한 나로서는 좀 놀라웠다. 이 교회도 누구나 출입이 가능한데 보안 문제는 없는건지 궁금해진다. 건물 자체로 들어가는 입구만 막으면 된다는건가..? 평화로운 나라라서 테러에 대한 걱정은 없는건가? 마음만 먹으면 이 교회쪽에서 테러가 너무 쉬울 것 같다.



한 바퀴 둘러서 교회에 들어갔다. 앞에 어떤 여자가 돈 달라고 구걸하고 있다. 교회 측에서 왜 막지 않는지 궁금한데, 리뷰를 찾다가 우연히 1년 전에도 이 여자로 추정되는 사람이 구걸하거나 있다는걸 발견했다.

집시처럼 생긴 여자인데, 이 여자 말고도 소피아 시내 곳곳에 집시같은 사람들이 돈을 구걸하고 있다. 위협이 되지는 않지만 보는게 유쾌하지도 않다. 실제로 집시가 아니라면 미안하지만... 발칸 지역에 집시들이 실제로 거주하고 워낙 집시들 악명은 높다보니 그럴 확률이 크지 않나 생각이 든다.
일단 정문 앞의 집시 여자는 차치하고, 내부는 정말 오래된 성화들이 보존되어 있다. 이 교회가 소피아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라고 한다. 여기서도 실제 예배가 진행 중이었는데, 조그마한 내부에 신부와 옆에서 추임새 넣어주는 여자와 남자가 한 명씩 있었다. 사람도 얼마 없어서 더 성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소피아의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모습을 같이 보는게 참 좋은 경험이었다. 내가 뭘 한 건 아니고 종교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한국에서 절을 갈 때 느끼는 종교적 감정을 여기서도 느꼈던 것 같다.
근처에는 또 다른 교회가 있다.

여기서도 내부에서 예배가 진행되는 와중 성가대의 노래가 들려왔는데, 또 다시 한참 노래를 듣고 있었다. 노래를 참 잘 불러.
성 네델리아 교회에서부터 소피아의 중심 거리인 비토샤 거리가 시작된다. 여기는 차가 없는 보행자 거리이고, 길 양편으로 레스토랑과 카페가 가로수와 조화롭게 어우러져서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거리였다.




분위기가 정말 좋다. 울창한 나무와 함께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게 좋았다. 이날 날씨도 딱 선선하니 덥지 않아서 더 좋았다. 비토샤 거리는 끝에서 끝까지 15~20분이면 걷는 짧은 길이다. 그리고 그 끝에는 국립문화전당이 있었다.

공원이 단풍으로 물들어 주홍빛이었다.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가을 단풍은 한국이 제일 예쁜 것 같다.
그렇게 공원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푸른 단체복을 입은 소녀들이 나타나서 행진을 시작했다. 뒤로는 음악대가 붙어서 행진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무슨 막대같은걸 막 돌리면서 행진하는데 연습 엄청 했구나, 느낄 수 있었다.


애들이 엄청 집중해서 막대 돌리면서 걸어가는게 귀여웠다. 공원에 있는 사람들이 모여 행진을 따라가면서 박수를 치는데, 그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행진이 끝나고 공원에 앉아서 쉬다 배터리를 충전하려고보니, 숙소에 보조배터리 가방을 두고 나온 것이 생각났다. 그 안에 여권도 있는데 공용공간에 두고 그냥 나온 것이었다. 갑자기 눈앞이 하얗게 변해서 얼른 가려는데, 지하철이 있어서 바로 지하철역을 찾아가 표를 끊고 세르디카역으로 갔다.

여긴 한국과 다르게 왼손으로 표를 태그하고 들어가야 한다. 오른손으로 태그하고 들어가려다 표만 날릴 뻔했다.


지하철은 6-7분에 한 대씩은 오는 것 같았다.

한 정거장만 가면 세르디카역이었다.


숙소에 돌아가니 다행히 가방은 잘 있었다. 유럽 오면 이런거 조심해야 하는데... 앞으로 더 잘 챙겨야 한다.
숙소에 온 김에 숙소에서 휴대폰을 충전하고 좀 쉬다가 다시 나갔다. 이번에는 알렉산드르 넵스키 성당쪽으로 걸어갔다.

가을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소피아 거리였다.



숙소에서 10분 정도만 걸으면 성당에 도착한다. 위치는 참 좋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성당 근처 공원에서 플리마켓이 열렸다. 바로 구경을 갔다.

선데이 마켓이라고 해야할까?



구경을 마치고 넵스키 성당 바로 앞에 있는 성 소피아 성당에 갔다.

성 소피아 성당은 로마시대 때부터 이 자리를 지켰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복원, 증축되어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바로 이 성당으로부터 도시의 이름 '소피아'가 유래되었다. 로마 시대부터 이 자리에 있던 성 소피아 성당이 이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었고, 어느새 랜드마크가 도시의 이름이 된 케이스.
알고 있던건 아니고 바로 옆에서 시티투어를 하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어서 알게 되었다.

플로브디프에서도 그렇고, 소피아에도 무료 시티 워킹투어가 있는 것 같다. 미리 참여 신청을 하는 것도, 돈을 내는 것도 아니고 매일 정해진 장소 정해진 시간에 자율적으로 모인 사람들이 가이드와 함께 도시의 주요 장소들을 돌아다니는 모임인 것 같다. 물론 아예 무료는 아니고 - 그러면 운영이 안되니까 - 투어가 종료된 후에 자율적으로 가이드에게 팁을 건네주는 형식이라고 들었다. 네이버 블로그에도 여러 후기가 있었는데, 나는 참여를 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도시의 여러 명소를 돌아다니다보면 이런 투어 그룹을 쉽게 볼 수 있는데, 가끔 귀동냥 하면 재밌는 이야기도 듣곤 한다.

역시 입장료는 무료인 대신 사진을 찍으려면 돈을 내야 했다. 안에 볼 거리가 있는 성당은 아닌데, 마침 내가 갔을 때는 세례식이 진행중이었다. 정장을 빼입은 아이에게 신부님이 세례를 해주고 있었는데, 세례를 보는건 처음이라 끝까지 다 봤다. 나 말고도 소년의 세례식을 본 관광객들이 몇 있어서 부담없이 볼 수 있었다. 성수로 발을 씻기고 머리를 감기는 등 의식을 직접 보는게 굉장히 신기했다. 그 외에도 어김없이 성가대의 멋진 노래가 함께했는데, 진짜 목소리가 아름답다. 녹음파일을 만들어뒀는데 역시 티스토리에는 첨부가 안되어서 무척 아쉽다.
세례식을 보고 알렉산드르 넵스키 성당을 한 바퀴 돌아 근처의 공원으로 걸어갔다.

지나가는 길에 소피아에 온 첫 날 본 사자 조각상이 있는 다리와 비슷하게, 독수리 조각상이 있는 다리를 발견했다.

도시 군데군데에 조각상이 참 많다.

가을색이 물든 나무와 도시 분위기가 참 잘 어울렸다. 가을의 소피아가 정말 예쁘다.

뭐가 있는 공원은 아니고 도심 한가운데에 굉장히 큰 공원이 있길래 한 번 가보고 싶었다. 일요일 오후답게 나들이 나온 주민들이 정말 많았다. 저마다 가을을 즐기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볼 건 없어도 살기는 참 좋은 도시 같다. 한달살기 같은 프로젝트를 한다면 불가리아는 좋은 선택지가 되지 않을까.



출산율 1.8이 넘는 국가답게 아이들도 정말 많다.

공원 구경도 하고, 벤치에 앉아서 쉬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숙소까지 걸어갔다. 유심을 안 사서 인터넷이 안되는 상황이라 오프라인 저장해 둔 노래들만 듣고 있는데, 휴대폰 안하고 눈 앞의 상황에만 집중할 수 있는게 오히려 좋을 때가 많다.
브로콜리 너마저 1집을 저장해두고 정말 많이 듣고 있는데, 들을수록 가장 좋은 곡이 계속 바뀐다. 특히 요즘은 속좁은 여학생이 왜 이렇게 좋은지 모르겠다. 기타와 비프음이 너무 좋다...
돌아오는 길에 NDK와 비토샤 거리를 다시 가로질러 숙소로 돌아왔다. 배가 고파져서 동네 빵집에서 불가리아의 전통빵인 바니차를 사먹었다.

안에 치즈가 든 빵이었는데, 이즈미르에서 먹은 보요즈랑 진짜 똑같다. 모양만 다르고 맛은 그냥 똑같다...
아무리 돌아다녀도 불가리아 음식 찾기가 힘들고 다 터키 음식뿐이다. 레스토랑을 갈까 했는데 혼자서 들어가기도 좀 뻘쭘해서 그냥 슈퍼마켓에서 저녁거리를 사서 숙소에서 먹었다. 저녁에는 그냥 휴대폰을 보다가 잠들었던 것 같다.
다음날 3일은 월요일이었는데, 내가 머무른 호스텔은 매주 월요일 와플 데이라는 행사를 진행해서 무료로 와플을 나눠준다. 9시부터라고 해서 8시 50분쯤 나가 근처 마트에서 요거트, 크루아상, 뱅오쇼콜라를 사들고 와플을 받으러 갔다. 생각보다 와플이 너무 커서 아침부터 탄수화물을 과다섭취하고 말았다. 와플은 그냥... 별로 맛이 없었다. 기계 하나로 너무 많이 만들어야 해서 그런지 빠삭하게 익지 않고 좀 물렁물렁했는데 그래도 다 먹기는 했다.
그렇게 아침을 먹고, 할 게 없어서 어디를 갈까 지도를 뒤적이던 중 소피아 남쪽의 거대한 산 비토샤 산의 등산로를 발견했다. 네이버 블로그 후기를 찾아보니 딱 3개가 나왔는데, 모두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갈 수 있다고 그랬다. 마침 계속 등산을 하고 싶었던 참이라, 얼른 대중교통 루트를 검색해서 스크린샷 찍어놓은 뒤 환승지점을 오프라인 지도에 기록해두고 숙소를 나섰다.
숙소를 나서면 인터넷이 안되는 상황이어서 긴급상황에 대처가 불가능했지만...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음 하나로 일단 등산로를 찾아갔다. 숙소 앞 세르디카역에서 27번 트램을 타고 불가리아몰 근처의 정류장에서 내려, 61번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면 등산로에 도착하는 경로였다.

소피아 시내 교통은 토스 카드를 이용해서 태깅이 가능했다. 요금은 지하철과 마찬가지로 1회에 1.6레프.

27번 트램을 타고 불가리아몰 근처의 Kableshkov(Каблешков)역에서 내려 61번 버스를 기다렸다. 배차간격이 40분으로 긴 버스인데 운이 좋았는지 5분도 안 기다려서 바로 버스가 왔다.

몰랐는데 이 비토샤 산으로 가는 61번 버스의 종점은 소피아 시민들의 유명한 피크닉 장소라고 했다. 특히 주말이 되면 버스가 항상 만원이라고 했는데, 이때는 월요일 정오 즈음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버스에 사람이 꽤 많았다.

불가리아몰에서 30-40분 정도 버스를 타고 가면 61번 버스 종점이 나온다. 이곳까지는 63번 버스도 오니까 둘 중 아무거나 타고 오면 될 것 같다.

어디를 가야되는지 몰라서 일단 맵스미에서 뷰포인트를 찾아 무작정 걸어갔다.




중앙아시아에서 3000미터가 넘는, 길도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고산들을 오르다보니 길이 나있는 불가리아의 산은 쉬웠다. 버스가 내려준 곳은 해발1300미터 정도이고, 거기서 해발1850미터 정도까지 올라갔다. 길은 위 사진처럼 일단 포장은 되어있는데, 그 후 정비를 안 한건지 가끔 진흙밭에 신발이 푹 들어가거나 길 한가운데에 나무가 쓰러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시에서 등산로를 정비를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무 쓰러진거야 돌아가면 되는데 진흙밭이 넓게 펼쳐져 있는건 진짜 난감했다. 몇 번 넘어질 뻔하기도 했다. 넘어졌으면 진짜...
물론 중앙아시아의 산에 비하면 감지덕지지만, 한국이었으면 민원 폭주로 문제 생기자마자 조치 되었을텐데. 한국의 이런 민원 시스템이 참 좋기는 한데, 전반적으로 민원을 좀 줄여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공무원들의 부담이나 '진상' 민원인들의 횡포를 줄일 필요가 있다. 얼마 전 읽은 기사에서, 최근 국가정보관리원 화재로 정부전산시스템이 마비되자 민원 건수가 확 줄어들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말 필요한 민원이 아니라면 실무 공무원 차원에서 컷할 수 있는 권한과 그에 따르는 책임이 주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각설, 다시 등산 얘기나 하면...

이럴줄 알았으면 물병 놔두고 올 걸.

비토샤 산은 우리나라 산과 굉장히 비슷하다. 척박하고 건조한 중앙아시아의 산과는 달리 흙이 물을 한껏 머금고 있었고 숲이 울창한게, 꼭 한국에서 등산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뷰포인트를 찾아다니다보니 조금 더 가면 해발1850미터의 Kamen Del 봉우리가 나오길래 여기까지만 갔다가 돌아갈 생각을 했다.




봉우리 올라가는 길이 완전 돌길이라 조금만 집중하지 않으면 발목 돌아가기 딱 좋다. 나도 몇 번 돌아갈 뻔 했는데 등산화가 잘 잡아줘서 겨우 살았다. 여행 떠나기 전에 굳이 등산화 사야되나 고민했는데 정말 사기를 잘했다. 네파 칸네토 최고다 최고.


정상의 바람이 무척 시원하고, 소피아 전경도 굉장히 멋지다. 산에 올라가서 보니 소피아의 분지 지형이 완전히 드러났다.

이날 다행히 날씨가 좋아 풍경이 예뻤다. 이 다음날부터 소피아 지역에 일주일 내내 비 예보가 있던데, 참 운이 좋았다.




이곳저곳 뷰포인트를 찍고 오늘과 2시간 정도 걸렸는데, 버스에서 내린 곳에서 가장 빠른 길로 온다면 넉넉잡아도 1시간 20분이면 카멘 델 봉우리에 도착할 수 있다. 투자한 시간에 비하면 경치가 참 좋았다. 할 게 없어서 심심한 하루가 될 뻔했는데 너무 좋았었다.
구경을 마치고 숨 좀 돌리다 다시 내려갔다.

나중에 알았는데, 시내에서 다른 버스를 타고가면 비토샤 산의 정상 바로 앞까지 가는 케이블카를 탈 수 있고, 케이블카에서 1시간도 걸리지 않아 정상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포토리뷰 보니까 카멘 델 봉우리의 소피아 뷰가 더 예쁘다.
돌아가는 길은 일부러 가장 빠른 길을 선택했는데, 여기 진흙이 정말 장난없다. 몇 번 넘어질뻔하고 등산화가 엉망진창이 된 채로 겨우 내려왔다. 버스에서 내린 곳 근처까지는 1시간정도 걸렸다.

여유를 즐기는 가족들의 모습이 참 예뻤다. 가을로 물든 나무들 덕분에 더 예뻐 보였다.

버스에서 내린 곳 바로 근처에 다시 시내로 내려가는 버스를 탈 수 있는 정류장이 있다. 운수가 좋아서 이번에도 도착하자마자 61번 버스가 와서 바로 탈 수 있었다.

불가리아몰에서 버스를 내려 다시 27번 트램을 타면 되는데, 온 김에 불가리아몰 구경을 하러 들어가봤다.


꽤 크고 여행 중 지금까지 본 쇼핑몰 중에서는 가장 내부가 화려했다.

아침 이루로 아무것도 안먹은채 4시가 되어있어서 푸드코트를 찾아갔다. 푸트코트에는 불가리아 전통 음식이 있을 것 같아서 찾아갔는데, 일단 터키에서 못 본 음식이 몇 개 있어서 음식 두 그릇을 주문했다.

전통음식이겠거니, 하고 주문했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진짜 불가리아 전통음식이 맞았다.

불가리아 물가를 생각하면 엄청 비쌌다. 고급 쇼핑몰 푸드코트라 그런가.

내가 시킨게 아마 카바르마와 치킨 프리카세인 것 같았다. 그런데 저 초록색 치킨 프리카세가 진짜 맛있었다. 진짜진짜 엄청 맛있었다. 닭가슴살도 촉촉하게 시금치 크림소스 같은게 너무 맛있었다. 불가리아몰 가면 꼭 먹어보시길...
안에는 거의 다 옷가게여서 밥만 먹고 바로 나왔다. 디저트를 먹고 싶었는데 전에 찾아둔 비토샤거리의 젤라또 가게를 가고 싶어서 열심히 참았다.

다시 27번 트램을 타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비토샤 거리 인근에서 내려 젤라또 가게를 찾아갔다.

알아보니까 본점이 플로브디프라고 했다. 좀 찾아 먹을걸...
두 가지 맛 150그램에 5.2레프라 생각보다 너무 쌌다.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맛 하나를 물어봤는데, 직원이 정말 크게 맛보기 스푼을 줬다. 그것도 맛있었는데 이미 먹었으니 다른 맛으로 두 개 시켰다 ㅋㅋㅋ


내가 시킨건 마스카포네 치즈맛과 요거트 멜라그라나(석류 요거트)맛이었다.

등산하고 와서 그런지 정말 맛있었다. 값도 싸고 직원도 친절한 소피아 Afreddo 강추 드립니다.
이후 숙소에 돌아와서 다음날 갈 북마케도니아 스코페행 버스를 예약하고, 숙소도 예약했다. 가장 싼 숙소가 11000-13000원 정도로 엄청 쌌는데, 후기도 읽고 비교해보니까 그냥 조식포함 2만원 정도 하는 호스텔을 예약했다. 지금은 그 호스텔에 들어와서 글을 적고 있는데, 시설이 소피아 호스텔과 비교하면 너무 좋다. 역시 다 비싼 이유가 있어...
그 후로는 7시쯤 다시 배가 고파져서 근처 슈퍼에서 간단하게 빵이랑 소세지를 사와서 먹고, 다음날 7시 버스를 타야해서 10시쯤 일찍 잠들었다.
다른 것보다도 등산을 할 수 있어서 소피아 여행이 정말 재밌었다. 비토샤 산 접근성도 좋으니까 소피아에 간다면 꼭 가보기를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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