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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이야기들/2025년 유라시아 여행

[유럽 여행기] 13. 슬로바키아 반스카 비스트리차

by Orthy 2025. 12. 2.

25.11.29. ~ 25.11.30.

전날 새로 옮긴 부다페스트의 호스텔은 정말 별로였다. 이전에 묵은 호스텔이 너무 좋기도 했지만, 1박 14유로인데 공용공간, 부엌 등이 전무한데다가 보증금 10유로를 맡겨야했다. 보증금은 어차피 돌려주기는 하지만, 왠지 기분이 좋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이곳이 현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이 묵는 호스텔인지, 어디 노가다 아저씨같은 사람들이 도미토리에 많았다. 여행객이 많지 않은 호스텔은 머무르기 좋지 않은데, 여기가 딱 그랬다.

저녁 12시, 난 자고 있을 때 우당탕 들어와서 다짜고짜 불을 켜고 큰 소리로 대화를 시작했다. 시간을 보라고, 불을 꺼야한다고 했지만 영어는 통하지 않고 내가 불을 끄자 다시 불을 켜고... 너무 스트레스 받았지만 싸우면 나한테만 문제가 생길 것 같아 그냥 잤다. 피곤하기도 했고.

아재요...

다음날 아침 일찍 일을 나가시더라. 어김없이 또 불을 켜고 한껏 떠든 뒤 옷을 챙겨 숙소를 나섰다. 왜 하필 내가 잘 때 이런 일이.

어차피 나도 일찍 떠나야해서 깬 김에 그냥 짐을 챙겼다. 9시 15분에 부다페스트에서 슬로바키아로 가는 플릭스 버스를 예매했는데, 가는 길에 마트에 들러 아침으로 먹을 빵과 요거트를 사가려고 조금 일찍 숙소를 나섰다.

상쾌했다.

짐을 모두 챙겨 나가 빵과 요거트를 사고 지하철을 타러 가는데, 노래가 듣고싶어 주머니를 뒤적였지만 내 이어폰이 없는거다. 출시때부터 나와 함께한 버즈2프로를 숙소에 두고 온 것이다... 버스 출발까지는 45분이 남았고, 숙소까지는 걸어서 5-10분, 지하철 타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정말 빠듯했다. 티켓을 연장하려했더니, 티켓값이 17유로였는데 다음 시간대를 타려면 13유로를 더 내야했다. 어쩔 수 없이 앞뒤로 무거운 가방을 맨채로 뒤뚱거려 숙소까지 달려가서 이어폰을 다시 챙겨나와 지하철을 탔다. 다행히 빨리 알아차려서 겨우 시간에 맞춰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침부터 땀범벅이 됐지만 찾아오고 버스도 시간 맞춰 탈 수 있었다.

이어폰을 다시 가져와도 다행히 시간이 남았다. 지하철 타기 전 역 앞에 있던 헝가리 오페라 하우스의 트리를 찍었다. 이틀전만해도 없었는데.

평소 시간 여유를 가지고 이동하는 습관을 가져서 다행이다.

지하철을 탄다.

부다페스트 1호선을 타고 터미널까지 간다. 이 1호선은 런던 지하철 다음으로 지어진, 세계에서 2번째로 오래된 지하철이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대타협' 이후 성난 헝가리 민심을 달래기 위해 빈보다도 먼저 지하철을 놓았다나 뭐라나...

그런만큼 오래되어 보였다.

오래됐지만 관리를 잘했는지 깨끗했다. 뉴욕 지하철을 생각하니 이건 너무 깨끗한 것 같다

1호선 종점에 내리면 플릭스 버스 정류장이 나온다.

종점
길가에서 플릭스 버스를 타게 된다.
그래도 표지판은 있다.

너무 더워 겉옷을 벗고 몇 분 기다리니 버스가 왔다.

부다페스트에서 슬로바키아를 통과해 폴란드 남부 최대도시 크라코프까지 가는 버스.

버스를 타고 아침에 산 빵과 요거트를 먹었다. 가는 길에 갑자기 옆에 엄청나게 큰 삼성 공장이 보였는데 빵 먹느라 사진을 못찍었다.

자랑스럽다 삼성

버스는 헝가리 북부를 지나 슬로바키아에 입성한다. 톨게이트처럼 생긴 국경검문소가 있기는 했는데 아무런 절차 없이 바로 통과할 수 있었다. 쉥겐 국가들 사이의 이동이 참 편리하다.

국토의 대부분이 평야인 헝가리와는 달리 슬로바키아는 카르파티아 산맥의 북쪽을 형성하는 타트라스 산맥이 있어 국토 대부분이 산지다.

그나마 수도가 있는 남서쪽에 평야가 많네

산이 많은만큼 자연환경이 예쁘다고 해서 등산을 하기위해 슬로바키아를 가고싶었다. 유명한 관광지는 없어도 이곳저곳 예쁜 마을이 많은 것 같아 기대도 됐다. 다만 그런만큼 이쪽을 여행하는 여행자도 많이 없고, 특히 한국인은 거의 없어서 정보를 찾는게 조금 힘들었다.

산길을 꼬불꼬불 달려, 3시간쯤 걸린 12시 10분경 반스카 비스트리차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슬로바키아어로 '반스카'는 광산이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 주위에 '반스카'가 붙은 지명이 많다. 이쪽 주위 산골짜기에서 은과 구리가 풍부하게 나와 중세시대부터 자본과 사람이 모였고, 주위 마을에서 나온 광물이 바로 이곳 반스카 비스트리차로 모여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더 자세한 역사 이야기는 스크린샷으로 갈음
네이버 카페 유랑의 여행기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특히 반스카 비스트리차는 나치에 맞서 싸운 슬로바키아 민족운동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이것도 ai에게 맡겼다.
그렇구니

여러모로 방문해볼만 한 도시인 것 같아 슬로바키아 여행의 첫 목적지로 반스카 비스트리차를 택했다.

3시간여를 달려, 반스카 비스트리차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반스카 비스트리차 버스 터미널
터미널 밖으로 나와서
도로가 휑하네

터미널에 내려서 숙소로 가기 위해 도로를 걸으니 너무 휑하고 아무것도 없었다. 이런 모습을 보려고 온 건 아닌데? 어라? 이거 왜이러지? 하며 조금 이상함을 느꼈다. 내가 상상했던 분위기가 아니었던 느낌. 또, 헝가리와 기온은 거의 비슷한데 여기는 온통 눈밭이었다. 며칠 전에 눈이 엄청 많이 온 것 같았다. 기온이 비슷해도 산지라서 그런지 눈이 많이 왔나보다.

일단 당황스러운 마음을 뒤로하고, 숙소까지 계속 걸어갔다. 반스카 비스트리차는 작은 마을이라 시 외곽의 터미널에서 구시가지 중심까지는 걸어서 20분이면 간다.

가는 길에 통과한 공원
눈이 무척 많이 내린 듯하다.
저 건물이 뭔가 했는데 슬로바키아민족봉기 기념박물관이었다.

하얀 눈으로 뒤덮인 공원을 걸으니 당황스러운 마음이 조금 사그라들었다. 눈 덮이 공원에서 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게 좋았다. 일단 눈 내린 모습이 너무 예쁘기도 했고.

너네 재밌게 논다.

옷이 더러워지는걸 신경쓰지 않고 눈에 굴러본게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공원의 끝에 있는 계단에 올라 눈덮인 공원을 바라봤다.

계단의 끝에는 슬로바키아민족봉기(SNP) 기념박물관이 있었다.

기념 조형물

꺼지지 않는 불꽃이 희생자를 기리고 있었다.

현지인들이 꽤 많이 찾는 것 같았다.

가볼까, 생각도 들었지만 영어 설명이 없다는 후기가 있어 마음을 접었다.

건물을 참 멋지게 지어놨다.

박물관을 지나 숙소로 계속 걸어갔다.

숙소로 가는 길
'GRAN'이라고 써진 검은 간판이 나의 숙소다.

관광객이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또 없는건 아니라 다행히 도미토리 호스텔이 있었다. 반스카 비스트리차의 유일한 도미토리인 것 같다. 1박에 21유로로 싼 건 아니지만 시설이나 침대가 좋고 깨끗해서 지낼만했다.

체크인을 하고 너무 배가 고파서 숙소 바로 앞에 있는 케밥 가게로 갔다.

자연스럽게 영어를 했는데, 점원분들이 다들 영어를 못했다. 발칸반도나 헝가리에서는 웬만한 가게에서 영어가 잘 통했는데 의외로 슬로바키아는 안그런가?

그래도 어찌저찌 잘 주문했다. 또, 슬로바키아는 유로를 사용해서 결제도 편리했다.

치킨 케밥 라지사이즈 6유로

아주 맛있었다. 닭고기가 아주 잘 구워진데다 야채와 소스도 아낌없이 넣어주는데, 알고보니 여기가 슬로바키아의 케밥 체인점이었다. Ozay kebab이라는 프랜차이즈인데 퀄리티가 괜찮은 것 같다.

케밥으로 배를 채우고 반스카 비스트리차 구경을 나섰다. 숙소가 구시가지 안에 있는데다가 구시가지 자체도 그렇게 크지는 않아서 컴팩트하게 돌아다니기 좋았다. 작지만 예쁘고 아기자기한 매력이 있는 동네였다.

반스카 비스트리차의 중심, SNP광장
반스카 비스트리차 성

여름에는 성에 올라갈 수 있는데 겨울에는 운영을 안한단다. 왜 그런지 잘 모르겠다.

SNP광장의 크리스마스 마켓

광장에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한창이었다. 관광객이 찾는 부다페스트의 크리스마스 마켓과는 달리 이곳 크리스마스 마켓은 거의 다 현지인이 찾아서 그런지 가격이 굉장히 합리적으로 느껴졌다. 부다페스트 크리스마스 마켓은 핫도그 하나에 20유로씩 받던데, 여기는 비싸봐야 4-5유로?

물론 부다페스트 크리스마스 마켓처럼 규모가 크지는 않다.
그래도 있을건 다 있다.
착한 가격

광장을 따라 구시가지를 걸어다녔다. 크리스마스 마켓도 보고, 사람들 구경도 하면서 다녔다. 유럽 소도시의 크리스마스 마켓 분위기가 좋았다. 정말 현지인들이 즐기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달까? 난 그런게 좋다.

트리 장식이 없네?
SNP광장은 이게 끝이다. 작은 광장이다.
맛있어보인다.
이것저것 팔고있다.
분위기가 좋았다.

뛰노는 아이들이 많아서 보기 좋았다. 한국에서도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좋을텐데...

SNP광장의 슬로바키아민족봉기 기념탑
기념탑 앞으로 회전목마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런 모습
창문 넘는 산타가 귀여워서
SNP광장

눈이 온 모습이 잘 어울렸다. 슬로바키아에 와서 눈을 보니 정말 겨울이 왔다는데 실감이 난다.

쭉 그냥 걸었다.

성당이 있어서 들어가보려 했는데 안에서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길래 바로 나왔다. 쩝...

그렇게 걸어다니다보니 구시가지가 끝났다. 끝에서 끝까지 걸어서 10분? 정도 걸리는 것 같다.

다음날은 반스카 비스트리차 근처의 광산 마을 슈피아나 돌리나라는 곳으로 갈 생각이었는데, 그곳으로 가는 버스에 관한 정보를 찾기 위해 버스정류장을 찾아갔다.

가는 길에 주거단지를 통과해야 했다.
저 Fleck이라는 카페가 나름 유명한 것 같았다.
반스카 비스트리차 주거 지역의 한적한 도로

처음 반스카 비스트리차 터미널에 내렸을 때는 생각보다 너무 황량하고 아무것도 없어서 조금 실망했는데, 구시가지를 돌아다니고 이곳저곳 구경하다보니 마을이 정말 예뻤다. 확실히 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내린 공원
작은 실개천

마을이 참 예쁘다.

저 멀리까지 가보고싶기는 했지만 너무 멀어보였다.

구시가지에서 조금 떨어진 버스정류장에 가니 버스 운행정보가 붙어있었다.

여기서 나는 Spania Dolina라는 곳으로 가야했는데, 슬로바키아어라서 알아먹을 수 없었으나 제미나이 덕분에 다 해석할 수 있었다. AI의 발전으로 여행하는 것도 너무 편리해졌다.

버스 정보를 알아내고 다시 구시가지로 이동했다. 처음 돌아다니면서 보지 못한 곳들을 이곳저곳 둘러봤다.

구시가지의 거리
반스카 비스트리차 성 뒤편의 성당에서

성당은 관광객 입장 불가여서(...) 들어갔다가 바로 나왔다.

누굴까?
다시 반스카 비스트리차 성
성 앞의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굴뚝빵을 팔고 있었다.

굴뚝빵 파는 곳에서 나는 계피 냄새가 꼭 호떡냄새와 비슷해 근처를 지나갈때면 항상 호떡 생각이 난다. 기름에 한껏 지져낸 진짜 달디단 호떡이 먹고싶다...

귀엽다..
성 뒤편으로도 멋진 거리가 있었다.
무슨 벽화인지 모르겠다.
되게 멋진 건물이 있어서 뭔가 했는데 법원이었다.
여기까지 보고 다시 광장으로 돌아갔다.

광장에 돌아오니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노을을 보는건 항상 좋아
사람이 점점 많아졌다.
해질녘의 반스카 비스트리차

노을을 기다리며 광장을 배회했다.

이거 대마가게 맞아요?

대마 파는 가게도 발견했다. 슬로바키아는 대마가 합법인가?

예쁘다
주홍빛 하늘

노을을 끝까지 보고 싶었는데, 산 뒤로 해가 넘어가 여기서 볼 걸 다 봤다. 저녁거리를 사기 위해 구시가지 끝에 있는 슈퍼마켓 리들로 가서 저녁에 먹을거리를 샀다.

와중에 슬로바키아 맥주를 발견해서 사왔다.

저녁거리 쇼핑을 하고 숙소에서 조금 쉬다가 다시 광장으로 나왔다. 이날 5시에 광장에서 공연이 있다고 해서 시간에 맞춰 나간 것이었다.

SNP광장의 저녁
날이 무척 추웠는데도 사람이 많이 있었다.

저녁이 되니 정말 쌀쌀해졌다. 바람도 매서워서 체감 온도는 훨씬 떨어졌다.

스테이지가 준비되고 있었다.

시간이 되자 슬로바키아의 'AYA'라는 밴드가 나왔다. 날이 정말 추웠는데 맨손으로 악기를 연주하던데, 직업정신이 참 대단하다.

공연중

슬로바키아어로 노래를 부르는 것 같았다. 생각보다 노래가 좋다. 내가 원래 밴드 음악이랑 락을 좋아해서 더 재밌게 들었다. 옆에 있는 사람들도 다 신나서 이리저리 뛰어다니기도 했고, 어차피 이역만리 타국의 저녁이라 눈치 볼 필요가 없었다. 나도 신나게 즐겼다.

아니 근데 진짜로 노래가 좋았다.

미러볼도 띄우고

슬로바키아 역시 치안이 상당히 안정되어 있다고 들었다. 마을사람들이 다 광장에 모여 공연을 즐기는 모습이 무척 보기 좋았다. 이렇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건데, 작은 이벤트라도 사람들과 함께하면 더 행복해지는 것 같다. 한국의 조그마한 지방 도시에서는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6시가 조금 넘어서 공연이 끝나 숙소로 돌아왔다. 어차피 숙소가 광장 바로 옆이어서 편했다. 숙소에 돌아와 따뜻한 물로 몸을 지지고 저녁을 먹었다. 엄청 추웠는데 샤워하니까 살 것 같았다.

저녁은 마트에서 산 닭다리살 정육 구이. 하나에 200그램 정도인 닭다리살이 네 개 들어있었고, 단돈 3.6유로였다. 닭가슴살 네 덩이에 8유로였는데 유럽은 닭다리살이 훨씬 싸다. 소금 후추 간을 해서 올리브유를 둘러 구웠다.

맥주도 함께
슬로바키아 맥주. 정말 도수가 10프로인가?

내가 구웠지만 참 잘 구웠다. 맥주랑 먹으니까 진짜 맛있었고, 빵도 토스터에 구워 같이 먹었다. 이렇게 간단하게라도 조리해서 유튜브를 보며 먹는 저녁식사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밥을 다 먹고 나서는 앞으로 여행할 곳 정보를 찾다가 일찍 잠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일찍 슈피아나 돌리나로 가는 버스를 타야했다.

7시 반쯤 일어나 바로 옷을 챙겨입고, 짐을 싸고 전날 찾아둔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일요일 아침이라 마트도 문을 늦게 열고, 식당도 다 문을 닫아 뭘 먹을 수가 없었다. 정류장은 숙소에서 10분 거리였는데, 나는 이날 8시 7분에 반스카 비스트리차를 떠나 슈피아나 돌리나로 가는 버스를 탈 생각이었다. 이게 아니면 거의 11시가 다 되어야 다음 버스가 오는데, 이러면 너무 늦어져서 어쩔 수 없었다.

버스정류장 가는 길

조금 기다리니 버스가 왔다. 다행히 시간표는 잘 맞았다. 구글 지도에도 버스 시간표가 반영이 되는지, 구글 지도로도 슈피아나 돌리나 가는 버스를 찾아볼 수 있었다.

슈피아나 돌리나로 가는 버스

내가 찾아본 정보글에서는 버스 요금이 1.7유로였는데, 기사님이 학생이냐고 물어보더니 0.65유로만 내라고 하셨다.

반스카 비스트리차에서 슈피아나 돌리나까지는 버스로 20분 정도, 약 7키로 정도 떨어져있다. 다만 산길을 올라가야 하고, 눈이 많이 와서 도로 제설이 잘 안되면 고립될 것 같았다.

전날 슈피아나 돌리나로 가는 길을 찾아보다 등산해서 가는 하이킹 코스도 있는걸 발견했는데, 편도로 약 3시간이면 갈 수 있었다. 여름이었다면 이 길로 갔을 것 같은데, 이때 눈이 너무 많이 와있어 등산을 하는게 망설여져서 그냥 버스를 탔다. 눈이 없으면 가는 길이 가파른 편이 아니라 하이킹해서 가도 좋을 것 같다.

슈피아나 돌리나 도착
마을 지도

버스에서 내려 돌아가는 버스 시간표를 확인했다.

이 중에서 십자가 표시가 있는 8:42, 14:22, 17:02, 18:47만 일요일/공휴일에 운행을 하는 것이었다. 평일에 왔다면 더 선택지가 많았을 텐데. 나는 8시 반쯤 마을에 도착했기 때문에 6시간쯤 둘러보고 14:22 버스를 타고 다시 반스카 비스트리차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이후 마을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슈피아나 돌리나
슈피아나 돌리나의 SNP 기념탑

반스카 비스트리차의 인근에 있는 마을 슈피아나 돌리나는 중세시대의 광산마을 중 하나로, 은과 구리가 많이 생산되었으며, 생산량이 굉장했다고 한다. 당시 중요한 광산도시였는데, 합스부르크의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가 방문하기도 했다고 한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루이14세의 황후로만 알고 있었는데, 슈피아나 돌리나를 방문한 사람은 이름이 같은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고, 이 사람이 훨씬 더 대단한 사람이었다.
https://namu.wiki/w/%EB%A7%88%EB%A6%AC%EC%95%84%20%ED%85%8C%EB%A0%88%EC%A7%80%EC%95%84#s-4

마리아 테레지아

"역사 속에서 나보다 더 좋지 않은 상황에서 나라를 떠맡게 된 군주의 사례를 찾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나의 백성

namu.wiki

궁금한 사람은 나무위키를 참고...

슈피아나 돌리나의 중심에는 커다란 성당이 있다.

슈피아나 돌리나의 성당
계단을 한참 올라가야 성당에 다다를 수 있다.

설명문에는 계단이 160개라고 적혀있었다.

중턱에 있는 예수상

계단이 정말 많다. 겨우 올라와 교회 주위를 둘러봤다.

눈사람이 있었다.

맵스미 지도를 보면 교회 뒤편 산길에 뷰포인트가 있길래 일단 그쪽으로 올라갔다.

완전 산골마을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무엇으로 먹고 사는지 궁금했다. 가축을 키우는 것도 아닐 것 같고, 관광으로 먹고 산다기에는 숙박업소도 없고 식당도 술집 딱 하나만 있는데.

조금 올라가면 이런 설명문들이 있다.

과거 슈피아나 돌리나의 광산 산업에 대한 설명문들이었다. 어차피 6시간동안 돌아다녀야해서 시간 여유가 있어 하나하나 천천히 읽어보았다. 설명을 보니 여기 있는 광산들은 너무 깊게 파들어가다가 붕괴된 광산들이 많은 것 같았다.

고양이 발견
첫 번째 뷰포인트

아니 근데 계속 걷다보니 너무 배가 고팠다. 챙겨온거라곤 퍽퍽한 호밀빵에 생수 한 병이었는데, 잼도 가져오지 않았다. 마을에는 술집 하나, 슈퍼마켓 하나가 있는데 안봐도 물가가 비쌀거였다. 너무 배가 고파서 뷰포인트에 잠시 멈춰 빵 두쪽에 물을 아껴가며 먹었다. 대충 배고픈걸 해결한 뒤 다시 걸어갔다.

뷰포인트만 보고 다시 마을로 돌아가라고 했는데, 지도를 보니 근처에 폐광이 두 개 있었다. 하나씩 방문해봤다.

첫 번째 폐광
원래 여기에 입구가 있는데 눈이 많이 와서 가렸다.
무슨 설명문들이 있는데 영어가 없어서 알아볼 수가 없었다.

이날 관광객은 나 혼자밖에 없었던 것 같다. 눈 덮힌 산길을 홀로 걸어가니 좀 적적하긴 했는데, 침착맨 들으면서 다니니까 재밌었다. 침착맨 영상 중에 왕날편이라고, 예전에 진행한 라디오같은게 있는데 이걸 오프라인 저장해두고 걸어디니면서 들으니 참 좋다. 침착맨 없었으면 지루해서 어떻게 살았을까...ㅋㅋ

산길이라 제설이 되어있지 않아 눈을 뽀득뽀득 밟으면서 걸어다녔다. 다행히 등산화라서 방수가 되었다.

이런 길이었다.

걸어다니는게 참 여유롭고 좋았다. 사람들이 밟지 않은 눈 위로 일부러 걸어다녔다.

두번째 광산으로 가는 길에 나온 넓은 운동장

이런 눈 내린 운동장을 보면 정말 눕고 싶어진다. 빨래하는게 힘들어서 진짜 뒹굴지는 않았지만, 아쉬울 따름이다.

두 번째 광산
이런 모습이었다고
그렇다고 합니다.

광산 유적 두 개를 다 찾아보고 마을에서 가장 뷰가 좋다는 전망대를 찾아갔다.

가는 길...

고도가 꽤 높은 곳인데도 집이 많았다. 진짜 뭐하고 사는 걸까? 이미 은퇴한 사람들이 말년을 보내러 오는 마을인가?

성당에서 15분 정도 걸어가면 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뷰포인트에 도착한다.

예쁘다~~
이 뷰를 보고싶어서 슈피아나 돌리나에 왔다.
평화로운 슈피아나 돌리나 마을
눈이 내려서 더 예쁜 것 같다.
뷰포인트의 설명 표지판

한참 머무르다 다시 길을 떠났다.

원래는 하이킹을 하고싶어서, 슈피아나 돌리나 마을 인근에 있는 산 정상까지 갈 생각이었다. 편도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짧은 코스여서 금방 다녀올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올라갈수록 눈이 너무 많이 쌓여있어 발이 푹푹 들어갔다.

이런 길을 따라 올라갔다.

올라갈수록 발이 너무 깊이 빠졌는데, 미끄럽지는 않았지만 눈이 계속 신발 안으로 들어와서 양말이 계속 젖어갔다. 계속 올라가기 힘들 것 같아서 절반쯤 올라와 그냥 포기하고 다시 마을로 돌아갔다.

마을로 돌아가는 길에 발견한 썰매타는 아이들

11시쯤 다시 성당으로 돌아왔는데, 음악 소리가 들려 입구를 찾아가보니 미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쓱 들어가보는데 딱히 제지하지 않길래 나도 맨 뒤에 앉아 미사에 참여해보았다. 슬로바키아어로 진행되어서(당연함) 무슨 말인지는 몰랐지만 남들 일어날 때 일어나고, 남들 앉을 때 앉아서 미사를 같이 진행했다. 오르간 소리가 좋기도 하고 성가 부르는 것도 좋아서 끝까지 들었다. 끝날 무렵 헌금을 걷었는데, 다들 동전으로 내길래 나도 1유로를 냈다. 그런데 헌금한 사람들이 다들 신부님 앞으로 가서 줄을 서길래 나도 섰는데, 내 차례가 되자 신부님이 내 입에 과자같은걸 하나 넣어주는거다. 쌀과자 같은 얇은 칩이었는데 뭐지?하고 받아먹었다. 궁금해서 제미나이한테 물어봤는데

아뿔사

신자만 참여할 수 있는건지는 몰랐다. 난 아무 생각없이 남들 따라한건데...

예수님께 사죄를 드려야겠다.

어쨌든 작은 마을 슈피아나 돌리나에 와서 미사도 참여해보고,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다. 미사가 끝나고 다들 기도하길래 나도 예수님, 좋은 경험 하게 해줘서 감사하다, 앞으로 여행 안전하게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드렸다.

미사가 끝나고 성당을 나섰다.

어차피 2시 반까지 기다려야 해서 마을을 계속 둘러봤다. 정말 아기자기하고 예쁜 마을이었는데, 겨울인데다가 눈까지 내려서 더 분위기가 좋았다. 여기는 여름이나 봄가을보다도 눈 내린 겨울이 가장 예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슈피아나 돌리나의 일요일 일상?
산을 오르는 아이들
광산 박물관 같은게 있었다.
입구

박물관같은건 되게 작았다. 안에 인형들이 있었는데 처음 들어갔을 때 무척 놀랐다. 귀신인줄 알았다.

무섭게 생겼어

그냥 정처없이 길 따라 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다. 마을이 너무 예뻐서 찍는 사진마다 그림이었다.

이런 장작도 굉장히 오랜만에 본다.
눈이 정말 많이 왔구나
평화롭다~

다 좋은데 너무 추웠다. 진짜 너무... 아까 산에 오르다 신발에 들어간 눈 때문에 양말이 젖어서 발이 정말 시려웠다. 게다가 아침부터 먹은 것도 없어서 배도 많이 고팠다.

그래도 예쁘다.
마을에서 드라마?같은걸 찍고 있었다.

스태프한테 영화 찍는거냐고 물었는데 영화는 아니고 짧은 단막극 같은거라고 했다. 장르가 뭐냐고 물었는데 이 스탭이 영어를 잘 못해서 설명을 못했다. 그냥 대충 알았다고 하고 갔는데, 연기하는 저 여배우가 절규하는 장면만 한참 찍더라. 창밖을 내려다보고 절규하고는 사라지고, 의사 복장을 한 노인이 창밖을 내려다보던데 아마 누가 건물에서 떨어진 상황이려나? 무슨 작품인지 전혀 모르겠다.

성공을 기원합니다.

드라마 촬영 현장도 보고, 2시 반이 될때까지 계속 마을을 둘러봤다.

이곳저곳, 예쁜 곳이 참 많다.

마을을 돌아다니다보니 광산 유적이 하나 더 나왔다.

여기는 좀 크다

설명을 읽어보니 여기는 여름에는 투어도 있는 것 같았다.

밖에서 내부를 찍어봤다.

그렇게 돌아다니다보니 어느새 버스가 올 시간이 되어 다시 마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버스를 기다리며 슈피아나 돌리나의 유일한 슈퍼마켓을 구경했다.

내부 모습

생각보다 그렇게 비싸지는 않았는데, 곧 반스카 비스트리차로 돌아갈거라 그냥 아무것도 안 사고 버텼다. 너무 배가 고팠다.

위생용품도 파는걸 보면 마을 주민들이 많이 이용하나보다.
촬영 현장도 다시 보고

아니 근데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가 안 오는거다. 뭐지, 싶어서 제미나이를 다시 돌려보니 비고란에 적힌 설명에, 14시와 17시 버스는 여름(9월말까지)에만 운행한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 다음 버스는 18시에 있었다.

하는 수 없이 그냥 반스카 비스트리차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춥고, 양말은 젖었고, 배는 고프고... 정말 힘들었는데 방법이 없었다. 큰길로 나가서 걸어가면 2시간 반정도 걸리는 길이었다.

걸어가는 길에 마주친 성당

그런데 산길을 다 내려오니까 버스정류장이 하나 있었다. 버스 시간표를 제미나이에게 번역시켜보니 십분 정도만 기다리면 버스가 온다고 되어있었다. 경로도 검색해보니 반스카 비스트리차 인근으로 가는 버스여서, 어차피 답도 없는거 이걸 기다려보기로 했다. 이 다음 버스는 거의 2시간 이후에 온다고 되어있었는데, 운 좋게 시간을 잘 맞춰서 온 셈이었다.

진짜 버스가 오기만을 기도했다.

아침에 성당에서 예수님께 기도한게 효과가 있었는지 진짜 그 버스가 왔다.

요금은 1유로

2시간 반 걸어갈 생각을 했는데 한 시간 정도만 걷고 끝났다. 진짜 너무 감사했다..ㅋㅋㅋ 버스로는 이렇게 금방인데. 한 20분도 안걸려 반스카 비스트리차에 도착했다.

반스카 비스트리차 도착. 멀리 전날 본 법원 건물이 보인다.

숙소에 가기 전에 전날 갔던 케밥 가게로 가서 또 케밥 라지사이즈를 포장해왔다.

추운 날씨에 개고생하고 따뜻한 숙소에 들어와 배고픈 상태로 침착맨 보면서 먹는 케밥 이거 어떻게 이길건데. 진짜 너무 맛있어서 눈물이 났다. 숙소에 돌아오니 4시 반쯤이었다.

케밥을 먹고도 배가 다 차지 않아서 6시 반쯤 전날 먹고 남은 닭다리살을 다시 구워먹었다. 그 전에 마트에 가서 맥주와 크루아상, 빵, 요거트까지 사왔다.

내가 구웠지만 너무 잘구웠다. 이날은 닭껍질이 정말 바삭하게 구워졌는데, 너무 맛있었다.

저녁을 먹고 나니 당장 다음날 어디갈지를 결정해야 했다. 두 가지 후보가 있어 어디를 가야할지 결정하려 한참 정보를 찾아봤다. 겨우 행선지를 결정하고 숙소를 예약한 뒤, 가는 방법을 찾아보고 쉬다가 잠에 들었다. 오랜만에 정보가 부족한 여행을 하는 것이었는데, 슬로바키아는 오히려 발칸반도 국가들보다 여행 정보가 없는 느낌이다. 알바니아보다도 중앙아시아의 향취가 강하게 난다고 해야할까? 물가나 시스템은 훨씬 선진적이지만... 하여튼 반스카 비스트리차에서 보낸 이틀은 정말 알찼다. 숙소도 좋았고, 마을도 예뻐서 여러모로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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