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2. 4. ~ 25.12. 6.
슬로바키아의 슈트르바를 떠나 폴란드 크라쿠프로 가는 날, 평소처럼 일어나 아침을 먹고 짐을 챙긴 뒤 체크아웃을 했다. 크라쿠프로 가는 버스가 오후 4시 50분 차 하나뿐이라 체크아웃 후에 공용공간에서 블로그 글을 쓰며 기다렸다. 마음 같아서는 버스가 도착하기 바로 직전에 나가고 싶었지만, 내가 있는 슈트르바에서 버스가 출발하는 포프라드까지는 시내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이동해야 했어서, 시내버스 시간에 맞춰 1시에 호스텔을 떠나야 했다.

1시 10분쯤 포프라드로 가는 시내버스를 탔고, 요금은 2.5유로였다. 트레블 월렛카드로 태깅이 가능했다. 이동거리가 꽤 길어서 그런지 버스 요금이 좀 비싼 느낌이었다.
터미널에 도착해서 계속 기다리다가 버스를 탔다. 중간에 근처의 빌라 마트에서 점심으로 먹을 샌드위치와 약간의 빵, 요거트를 샀는데, 아침을 거하게 먹었어서 별로 배가 안 고파서 기다렸다가 버스 안에서 먹었다.

포프라드 터미널에서 세 시간 넘게 기다려 겨우 플릭스버스를 탔다. 다행히 무료 와이파이가 있었다.

버스는 타트라스 산맥 사이의 좁은 골짜기를 넘어 폴란드로 향했다. 전날 열차를 타고 방문했던 비소케 타트리, 타트란스카 롬니차 같은 마을에도 들러 승객을 태웠다. 해는 4시면 이미 저물기 때문에 어둠이 내린 산길을 달렸는데, 안개 때문에 시야확보가 엄청 어려워 보였다. 운전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안개도 심하고, 중간에 기사님이 어디 이상한 데서 내려 택배 같은 걸 가져온다고 시간이 늦어져 예정보다 30분 늦은 8시 20분에 크라쿠프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버스는 코시체에서 출발해 바르샤바까지 가는 버스였다.
터미널은 시내 중심가와 많이 떨어져 있지 않다. 구시가지 안쪽에 잡은 내 숙소까지는 걸어서 10-15분 정도인데, 터미널에 내려서 구시가지로 들어가는 길이 무척 을씨년스러웠다.

안개가 짙게 내려 도시 분위기가 무슨 포스트아포칼립스물에 나오는 도시처럼 변했는데, 중심가에 가까워지니 사람들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활기찬 분위기여서 왠지 이상한 기분까지 느껴졌다.

가시거리가 거의 한 블럭도 안 되어서 뭐가 있는지 구경도 못하고 바로 숙소로 향했다. 숙소로 가는 길에는 다행히 사람이 많기는 했는데, 낯선 곳에 안개까지 껴있어서 스산한 기분이 들었다. 범죄영화에 나오는 장소 같은 느낌? 다행히 크라쿠프 유럽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 중 하나라는 건 나중에 알게 되었다.

숙소에 체크인하고 짐을 풀었다. 시설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는데 일단 위치가 정말 좋았고 가격도 크라쿠프에서는 가장 저렴한 축이었어서 그런대로 만족했다. 장기숙박 하고픈 마음은 안들었고, 2박이면 딱 적당한 것 같았다.
짐을 정리한 뒤 배가 고파 뭐라도 사 와야겠다, 하고 숙소를 나섰다. 바로 근처에 크라쿠프 중앙광장이 있어 나가는 김에 한 번 돌아봤다.

웬 마차인가 했는데 중앙광장 한편에 여러 대의 마차가 주르르 늘어서 있었다. 냄새가 무척 지독했다.
중앙광장에 들어서니 광장 중앙에 자리한 직물시장 앞으로 크리스마스 마켓이 펼쳐져있었다.


여기도 안개가 엄청 심했는데 관광객이 무척 많이 모여있었다. 썰렁할 줄 알았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놀랐었다. 크리스마스 마켓 구경을 좀 했는데, 부다페스트나 반스카 비슈트리차에서도 많이 본 소시지나 핫도그, 햄버거를 파는 가게가 많았다. 다만 폴란드 전통음식을 파는 가게들도 몇 개 보였는데, 만두처럼 생긴 피에로기나 전통 수프를 파는 가게들이 있었다.


뭘 먹어보려고 해도 가격이 너무 창렬이다. 그 돈이면 그냥 식당을 가지 여기서 먹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핫도그 하나에 2-3만원씩 하니까 뭘 사먹기가 애매하다. 게다가 1년 전만 해도 1즈워티가 300원이 좀 넘었는데 지금은 1즈워티가 405원이다. 환율이 너무 안 좋아서 문제다 ㅠ.ㅠ
크리스마스 마켓을 구경하고 직물시장 뒤로 넘어가는 크라쿠프의 랜드마크, 성모승천성당이 나왔다.

안개가 없거나 파란 하늘일 때 보면 엄청 예쁠 것 같은데, 아쉬웠다. 성모승천성당 앞 광장에서 캐롤이 흘러나오고 사람들이 모두 모여 춤추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굉장히 신기했다. 유럽 와서 그런 모습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폴란드인들의 특성이려나?
광장을 한 바퀴 둘러보고 이날은 하루를 마무리했다. 돌아오는 길에 숙소 근처 마트에 들렀는데, 마침 전자레인지에 데워먹을 수 있는 피에로기를 팔길래 맥주와 함께 사왔다.


맥주는 엄청 맛있었는데 피에로기가 너무 별로였다. 고기 피에로기를 사왔는데, 냄새는 무척 좋았지만 너무 맛이 없었다. 반죽은 두껍고, 고기맛은 하나도 안 난다. 냉동만두는 진짜 비비고가 짱인데... 비비고 먹고 싶다.
다음에 식당에서 피에로기를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배를 조금 채우고 나니 10시가 넘어서 바로 씻고 잤다.
다음날 7시 반쯤 일어나 좀 뒹굴거리다가 전날 먹고 남은 피에로기를 데워 홍차와 함께 먹었다. 여전히 맛은 별로였다.
크라쿠프에는 이틀 머무는 계획이었는데, 보고 싶은 것이 많았어서 바로 숙소를 나섰다. 이날은 좀 흐리긴 했지만 다행히 안개는 전혀 없었고, 오후에는 해가 조금 보인다는 예보가 있었다.

일단 환전을 하러 구시가지 북쪽으로 갔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폴란드의 화폐는 즈워티로, 현재 환율은 1유로가 4.2즈워티 정도다. EU회원국이지만 유로를 쓰지 않는 것이었는데, 이런 나라가 생각보다 많다. 이 사실도 이번 여행하면서 알게 됐다.


크라쿠프는 고대로부터 폴란드의 가장 중요한 도시 중 하나였고, 16세기말 바르샤바 천도 전까지 폴란드-리투아니아 왕국의 수도였다고 한다. 근대 이후 폴란드의 역사가 바르샤바 등 북부를 중심으로 진행되며 중심지에서 벗어났지만 오히려 그 덕에 각종 전쟁의 화마에서 벗어나 현재까지도 중세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근처에 여러 관광지가 많아 수도 바르샤바보다도 많은 관광객이 찾으며, 연간 방문객이 100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유명하지 않지만(사실 나도 얼마 전에 처음 들었다.) 나름 유명한 관광지였다.

유럽 특유의 좁은 길, 벽처럼 느껴지는 높은 용적률의 직사각형 건물들, 그 건물을 장식하는 멋진 파사드가 참 아름답다. 부다페스트에서부터 느끼지만 난 이런 도로가 특히 예쁜 것 같다.

하늘이 흐려 아쉽다. 슈트르바에서 맑은 하늘을 본 것으로 만족해야겠다.
환전을 하고 본격적으로 크라쿠프를 둘러보기로 했다. 환전소 근처의 얀 마데이코 광장에서 시작했다.

걷다 보니 간이매대에서 터키빵 시미트를 팔고 있는 아주머니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이스탄불에서 많이 본 장면이어서 정말 반가웠다. 이스탄불을 생각하니 카자흐스탄 악타우에서 기나긴 기다림 끝에 새벽비행기를 타고 이스탄불에서 내렸을 때가 떠올랐다. 어느새 두 달 전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몇 개 살펴보니 가격은 3즈워티 혹은 3.5즈워티였는데, 이스탄불의 빨간색 간이매대에서 파는 시미트에 비해서는 (미안하지만) 삐쩍 말라 맛없어 보였다. 크라쿠프에서 지내는 동안 한 번도 먹어보지 않았다.

화려한 건축물도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용적률이 높은, 밀도있는 건물에서 매력을 느낀다. 부다페스트 거리가 그렇게 예뻤던 것도 그 때문이었는데, 크라쿠프 거리에서도 이런 육중한 건물을 많이 볼 수 있었다.

파사드가 화려한 건물 역시 언제나 사진뽐뿌가 오게 한다.

크라쿠프를 얼마 돌아보지 않았는데도 트램이 정말 많이 다니는 걸 알 수 있었다. 교외지역에는 버스가 다니는 것 같기는 하지만, 구시가지 주위에서의 대중교통은 트램뿐이고 버스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트램이 정말 많고 노선도 다양한데, 트램이 다니는 길과 차가 다니는 길이 따로 구분되지 않았다. 크라쿠프 거리를 걸으면서 보니 항상 차보다 트램이 우선시 되고 운전자도 이를 인지하고 있었고, 트램이 잘 운영되고 있어서인지 교통체증이 없었다. 일단 도시가 그렇게 크지 않기도 하고, 기본적으로 운전의식도 성숙해서 대중교통이 이렇게 잘 굴러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얼마 전 서울 강동, 송파를 달리는 위례선의 트램이 거의 완공되었다는 뉴스를 봤다. 그런데 서울시와 경찰청의 입장차 때문에 개통일정에 차질이 생기고 있다고 했는데, 서울시는 트램에 우선신호가 부여되어야 한다는 입장이고, 경찰청은 여러 제약 때문에 우선신호 부여가 어렵다는 입장이라고 읽었다. 별도의 신호도 없이 차량의 양보를 받으며 크라쿠프 시내를 누비는 트램을 보며 한국의 운전 문화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렇게 단편적으로 생각할 문제가 아니지만, 운전자들의 인식이 기본적으로 다르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그래도 문제점이 있다는 건 개선될 여지가 있다는 거니까... 언젠가는 한국의 운전 문화도 성숙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조금 걸어서 얀 마테이코 광장에 도착했다. 얀 마테이코 크라쿠프 출신의 화가로, 폴란드 역사를 배경으로 한 그림을 그려 민족의식을 고취했다고 한다. 성모승천성당에도 얀 마테이코의 그림들이 있다.

얀 마테이코 동상은 아니고, 그가 다룬 주제 중 하나인 그룬발드 전투 전승기념상이다. 그룬발드 전투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군이 독일 기사단국에 대승을 거둔 전투인데, 여기에도 또 무지 복잡한 역사가 있다. 유럽 역사는 너무 복잡하다.
나무위키를 보니 그룬발드 전투는 폴란드인에게 우리의 명량해전과 비슷한 느낌으로 받아들여진다고 하니, 대충 그 위상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얀 마테이코 광장과 그룬발드 기념상 뒤로는 멋진 거리가 펼쳐져있다.



광장의 북쪽 끝에는 성 플로리안 성당이 있다.

무료입장이라고 해서 들어가 봤더니 미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발칸반도의 정교회 성당과는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 정교회 성당은 성당 내부가 텅 비어있고 곳곳에 배치된 성상과 성물에 신자가 직접 기도를 올리는 느낌이라면, 카톨릭 성당은 신부의 자리가 정해져 있고 그 앞으로 신자들이 앉을 의자가 놓여있는 느낌. 카톨릭 성당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그 전형적인 모습인데, 더 많이 화려하다고 해야 할까? 크라쿠프의 다른 성당들 역시 내부가 무척이나 화려했다.
미사를 조금 듣다가 나와서 크라쿠프 구시가지로 향했다.


크라쿠프는 원형 구시가지 주위로 공원이 담장처럼 둘러싸고 있는데, 겨울이 되어 나뭇잎이 다 떨어져서 휑했다. 여름 가을에 오면 정말 예쁠 듯.

플로리안 문을 통과해 구시가지 내부로 들어왔다.



플로리안 문 한편에는 그림을 팔려는 사람들이 장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림을 전시하는 게 이 사람들에게는 장사 준비다. 오후에 다시 돌아와 그림을 봤다.

플로리안 문을 통과하면 넓은 도로와 그 끝으로 성모승천성당이 보인다. 이 도로를 킹스로드라고 부른다고 한다.

전날 저녁, 안개에 가려져 제대로 안 보였는데 성모승천성당 이놈 상당히 예뻤다. 킹스로드의 상점들과 조화가 아주 멋졌다.

탑에 그려진 인물이 아마 성 플로리안이겠지?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니 단체관광객이 정말 많이 보였다. 그리고 이날은 단체관광객만큼 소풍 온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이 많이 보였다.

어디서 온 걸까?

사진 찍을 때는 그냥 귀여웠는데, 지금 보니까 선생님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사람 엄청 많은데 애들 다른 길로 안 새는지 잘 따라오는지 계속 확인하고 말도 엄청 크게 해야 할 텐데. 내가 해야 된다고 생각하면... 어우 끔찍하다.
킹스로드를 걸어 크라쿠프 중앙광장에 도착했다.

크라쿠프의 중앙광장은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광장 다음으로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광장이라고 한다. 수키엔니체라는 이름의 직물회관은 예전에 시장으로 쓰이던 것이 지금은 1층은 기념품 가게, 2층은 박물관으로 개조된 것이라 한다.

광장에는 비둘기들이 엄청 많았다.


직물회관 바로 옆에는 시계탑도 하나 있다.


탑 옆의 설명문을 읽어보면, 이 시계탑은 원래 크라쿠프 시청사의 일부분이었다고 한다. 오스트리아 점령기에 시청사가 해체되며 시계탑도 사라질 뻔했으나 주민들의 탄원으로 시계탑은 살아남았다고 한다.
중앙광장을 한 바퀴 둘러보고 바벨성 쪽으로 걸어갔다. 전날 저녁에 둘러볼 때는 안개 때문에 잘 안 보였는데, 광장이 무척 크고 아름다웠다.
바벨성으로 가는 길에는 성당이 몇 개 더 있다. 구시가지 안에 성당이 무척 많다.

이 사진이 참 예쁘다.

문이 열려있어 삼위일체 성당에 들어가 봤다.

성 아시시 성당은 아직 닫혀있어서 내부는 보지 못하고 다시 걸어갔다. 메인도로를 따라 쭉 걸어가면 성 베드로 성당이 나온다.


의외로 내부는 그냥 그랬다. 매일 저녁 8시에 클래식 공연이 있다고 하는데, 얼마 전 블로그에서 읽은 바로는 60즈워티니까 약 24000원으로 그렇게 비싼 건 아닌 것 같다.
계속 걸어 바벨성에 도착했다.



바벨성 자체는 무료로 입장이 가능한데, 성 안의 각종 박물관이나 바벨 대성당에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내야 한다. 나는 밖에서만 잘 구경했다.

구글 리뷰를 보니 한여름에 이 정원에 핀 꽃들이 그렇게 아름답던데. 나중에 여름에 다시 오고 싶은 곳들이 점점 많아진다.

크라쿠프가 수도이던 시절에는 즉위식 등 각종 행사가 바로 이 바벨 대성당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통일감 있으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이질적인 성당의 종루들이 정말 멋지다.

성당 옆에 무기고가 있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인다고.

밖으로 나와 정원을 한 바퀴 둘러보고 강 쪽으로 걸어갔다.


강이 생각보다 별로 예쁘지는 않았다.
이날 낮기온이 6도 정도였는데, 평소처럼 입고 나갔는데도 너무 추웠다. 슬로바키아에서는 같은 옷차림이어도 0도까지 거뜬했는데 이때 왜 그렇게 추웠는지 모르겠다.
아침부터 돌아다니느라 힘들기도 하고 너무 추워서 숙소에 들어가서 잠깐 쉬다 올까 생각이 들었는데, 그게 더 귀찮아서 그냥 계속 돌아다녔다. 돌아다니는 길에 빵집 있으면 빵이나 하나 사 먹을 생각이었다.
바벨성을 한 바퀴 둘러보고 다시 시가지로 내려왔다.

처음 듣는 성인이었는데, 내부가 무척이나 화려했다.

바벨성 바로 옆에는 예로부터 유대인 거주지역이었던 카즈미에르시가 있다. 이쪽 분위기가 독특하다고 해서 카즈미에르시로 걸어갔다.

가는 길에 빵집을 발견했다. 나중에 알았는데, 이게 체인점이더라. 폴란드에서는 도넛을 퐁츠키(pączki)라고 부르는데, 퐁츠키를 파는 빵집이었다.

뭘 먹을까 하다가 배(pear)맛 퐁츠키를 골랐다. 가격은 10즈워티, 약 4000원. 도넛 주제에 왜 이렇게 비싼건지.

맛있기는 했다. 글레이즈드 코팅이 된 데다가 안에 배로 만든 잼이 있는 것 같았는데, 사실 배맛은 잘 안 났다. 위에 있는 토핑이 살구? 비슷한 맛이 났는데 꽤 괜찮았다.
처음 폴란드에 대해 알아볼 때는 퐁츠키에 뭔가 폴란드만의 특색이 있는 것처럼 설명되어 있어서 사 먹었는데, 그냥 도넛이랑 똑같아서 앞으로 먹을 생각은 없어졌다.
퐁츠키를 먹으며 카즈미에르시로 걸어갔다.






구시가지를 벗어나 10-15분 정도 걸으면 카지미에르시에 도착한다. 초입부터 바로 시나고그가 나왔다.



카지미에르시 구역은 예전부터 유대인들이 모여 살던 동네라고 했다. 역시 잘 모르고 있었는데, 유럽의 유대인 차별은 그 뿌리가 굉장히 깊었다. 나치 이전에도, 예로부터 유대인들은 굉장히 많은 차별을 받고 있었고, 때때로 차별이 완화되었으나 박해받는 삶이 일상이었다고 한다.

올드 시나고그는 내부가 개조되어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들어가지는 않았다.
올드 시나고그가 있는 앞쪽 거리에서 영화 쉰들러 리스트가 촬영되었다는 표지가 있었다.

지금은 양옆으로 상점이 늘어서있고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거리였다.



크라쿠프 시내에는 그래피티가 거의 없었는데, 이쪽은 유독 그래피티가 많았다. 이런 것 때문에 분위기가 다르다고 한 것 같은데, 이미 발칸 국가를 지나면서 그래피티에는 너무 익숙해진데다가 발칸 국가의 그래피티에 비하면 이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어서 사실 별 감흥이 없었다. 너무 추워서 벌벌 떨고 있었어서 더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계속 걸어서 카지미에르시 거리의 쉰들러 리스트 촬영지 중 가장 유명한 곳을 가봤다.


한쪽 벽에 나치 점령시기의 유대인 게토에 대한 설명이 적혀있었다. 읽고 싶었는데 몸이 으슬으슬 떨려서 처음만 조금 읽고 그냥 다 스킵하고 사진만 찍었다.

쉰들러 리스트를 보지 않았어서 그런지, 큰 감흥을 못 느꼈다. 이때 컨디션이 안 좋았어서 더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이후 유대인 게토 지역으로 넘어갔을 때도 별로 감흥을 느끼지 못했었는데, 지나고 보니 아쉬워서 저녁에 쉰들러 리스트를 보게 됐다. 영화가 참... 참 대단하더라.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사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카지미에르시 거리에 어떤 특별함이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처음에 이렇게 느낀 게 당시 내 컨디션 때문인가 싶었는데, 이날 저녁 쉰들러 리스트를 보고 큰 감명을 받은 뒤 다음날 다시 카지미에르시 거리를 찾아가도 감상은 비슷했다. 가볼 만한 건 맞지만, 너무 많이 기대하고 가면 안 될 것 같다.
시간이 흘러 정오가 지나자, 하늘이 점점 맑아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먹구름이 많았지만 햇빛이 나오고 있었다.

유대인 거주구역은 예로부터 이 카지미에르시 지역이었지만, 2차대전 발발 후 나치가 크라쿠프를 점령하자 유대인들은 카지미에르시 구역에서 쫓겨나 강 건너 포드구제에 모여 살게 되었다고 한다. 포드구제 지역에는 옛 유대인 게토 유적과 더불어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실존 인물 오스카 쉰들러가 운영했던 공장이 있다고 해서 비스와 강을 건너 포드구제로 넘어갔다. 여전히 춥기는 했지만 해가 뜨고 있어 좀 나아지기도 했고, 숙소로 돌아가면 이쪽은 다시 오기는 힘들어서 한 번에 구경하고 갈 생각이었다.

비스와 강을 건너면 바로 유대인 게토 지역이 나타난다. 게토 유적이 클 줄 알았는데 포드구제 한편에 조그맣게 남아있는 것이었다. 비스와 강을 건너니 확실히 교외 느낌이 났다. 건물들도 다 새로 지어진 듯 현대적이었다.

다만 한편으로 오래되고 낡은 건물들이 모여있었다. 오히려 이쪽이 더 분위기 있었다.



몇 분 걸어 첫 번째 게토 유적에 도착했다.

광장에 빈 의자가 설치되어 있고, 멀리 기차역처럼 보이는 조형물이 있었다. 1941-1943이라는 숫자가 적혀있어 무슨 뜻인지 궁금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이 지역에 게토가 설치되었던 시기가 1941년부터 1943년까지라서 그걸 기념하는 것이었다.
추모 광장에서 조금 더 걸어가면 당시 유대인 게토의 담장 일부가 남아있는 유적이 있다.


그리고 이 벽에서 다시 10-15분 정도 걸어가면 쉰들러의 공장이 나온다.

올해 이 공장이 박물관으로 개관했다고 한다.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있길래 나도 줄을 서서 기다렸는데, 내 차례가 오니까 온라인으로 티켓을 미리 구입해야 한다고 안내했다. 아... 급하게 온 크라쿠프 여행이라 아무것도 준비를 안 했어서 유명 관광지는 갈 수가 없었다. 진짜 미리 구매를 했어야 했는데 알아보려는데, 이때 마침 데이터가 안 터져서 정보도 못 찾았다. 그래서 그냥 둘러보다가 다시 시내로 돌아갔다.
이 이후로도 휴대폰 데이터가 계속 말썽이었는데, 결국 숙소에 돌아갈 때까지 데이터 로밍이 잘 안 됐고 숙소에 돌아가 와이파이를 연결한 뒤 제미나이의 도움을 받아 해결했다.



그나마 별로라는 후기가 많아서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었다.
돌아가는 길에는 하늘이 상당히 많이 개어서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었다. 한여름 쨍한 하늘이었다면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아침에는 닫혀있던 직물회관 1층도 운영되고 있었다.

귀금속, 기념품, 인형 등을 팔고 있어서 살 건 별로 없었다. 여행을 하면서 이런 기념품점이 모인 곳을 자주 보는데, 항상 장사가 되기는 하는지 궁금하다. 먹고살기에 충분할 정도로 장사가 잘 되는 걸까?


바로 숙소로 돌아가기 아쉬워서 플로리안 문을 지나 다시 얀 마테이코 광장으로 갔다.




여기까지 보고 숙소로 들어가서 좀 쉬었다. 어느새 2시가 넘었는데, 6시간 넘게 계속 돌아다닌 것이었다.
세 시 반쯤 다시 숙소에서 나와 돌아다녔다. 다음날 바르샤바로 떠나야 해서 크라쿠프의 관광지를 이날 다 돌아봐야 했다. 구시가지 서쪽에 있는 야기엘론스키 대학교와 콜리지움 마이우스가 목적지였다.
야기엘론스키 대학교는 바르샤바 대학 다음가는 폴란드 제2의 대학으로, 교황 요한바오로2세의 모교이기도 하다. 콜리지움 마이우스는 13세기 세워진 야기엘론스키 대학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라고 했다.

콜리지움 마이우스의 한편에는 역시 야기엘론스키 대학교에서 수학한 코페르니쿠스의 기념패가 있었다.


찾아보니 물리학부 등 공과대학 및 자연대학도 있는데, 시 외곽에 멀리 있어 찾아가지 못했다. 공대생, 자연대생에게도 문명을 달라...
야기엘론스키 대학을 방문하고, 아침에 닫혀있어서 못 갔던 성 아시시 성당에도 가봤다.

역시 무척 화려했다.

어느새 하늘에는 다시 먹구름이 끼고, 소리소문 없이 해가 저물고 있었다. 4시가 가까워졌는데 뭐 먹은 게 별로 없어서 배가 많이 고팠다. 미리 알아본 식당을 찾아갔다.
폴란드 요리를 찾아보다 크라쿠프에서 평이 무척 좋은 청어요리 가게를 찾았다. 발트해에서 청어가 많이 잡혀 폴란드에서 청어요리가 유명하다는 것이었다. 피에로기를 먹을까 하다가, 어차피 폴란드 다른 지역에서도 팔 것 같아서 그 청어요리를 먹으러 갔다.


그간 슬로바키아에서도 제대로 된 요리를 못 먹었어서 그냥 맘껏 먹자는 생각에 청어요리 두 개(사워소스, 커리소스)와 생맥주를 시켰다. 한 명 더 오는 줄 알았는지 식기류를 두 세트 주길래 혼자 먹을 거라고 해야 했다...


이때 배가 고프기도 했지만, 청어가 진짜 맛있었다. 생선이 달기까지 했다. 내가 원래 생선을 좋아하기는 하는데 너무 내 취향이었다. 소스도 잘 어울렸고, 청어가 굉장히 기름져서 느끼하려하면 양파가 딱 잡아줘서 조화가 좋았다. 맥주는 oktocim이라는 폴란드 맥주였는데, 도수가 꽤 높은지 금방 취했다. 맥주도 무척 맛있었다.

강추합니다.
밥을 다 먹고 나오니 어느새 해가 저물었고, 숙소에 가기 전 중앙광장을 들렀다.


숙소에 들어가기 전 슈퍼마켓에서 간단히 먹을거리를 사서 들어갔다.
아까 얘기했다시피, 카지미에르시와 게토 지역에서 쉰들러 리스트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내가 영화를 안 봤어서 공감이 안 되어서 아쉬웠던 데다가 마침 영화가 크라쿠프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라고 해서 숙소에 들어와 영화를 찾아봤다. 폴란드 문제인지 유심카드를 구입한 헝가리 문제인지 넷플릭스에서는 현재 국가에서 시청할 수 없다고 하고, 왓챠도 현재 국가에서는 시청이 안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어둠의 경로를 통해 시청해야 했다. 유튜브에 있었으면 샀을 텐데 유튜브에도 없어서... 스필버그 감독님 정말 죄송합니다.
영화는 정말 깊은 울림을 줬다. 크라쿠프의 유대인들 이야기라서 더 몰입이 잘 됐다. 피아니스트나 페르시아어 수업 같이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를 몇 편 봤었는데, 단연 최고가 아닌가 싶다. 그러고 보니 인생은 아름다워도 아직 안 봤네...
하여튼 쉰들러 리스트, 3시간이 넘는 긴 영화임에도 정말 몰입해서 봤다. 중간중간 이날 크라쿠프에서 본 거리가 나오는 것도 좋았다. 쉰들러의 공장도 그 모습 그대로 영화에 나오고 있었다. 참... 93년 영화인데 어쩜 이리 세련되었을까. 피아니스트와 페르시아어 수업도 굉장히 인상 깊게 봤었는데, 쉰들러 리스트가 훨씬 내 취향인 것 같다. 배우의 폭발하는 감정이 아니라 제반환경을 이용해 자연스레 참담함을 담아내는 그 연출이 대단하고, 세련됐다. 사실 그래서 난 마지막 씬이 오히려 사족처럼 느껴졌는데, 그걸 제외하고는 모든 게 마음에 들었다.
제일 소름이 돋았던 부분은 나치의 강압에 저항하지 못하고 그들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유대인들의 모습이었다. 전에는 항상, 왜 이들은 머릿수도 많으면서 집단적으로 저항하지 못하고 독일군에게 끌려 다니기만 하는 걸까 의문이 있었는데, 영화를 보다 보니 정말 소름 끼치게 군대가 떠올랐다. 권위적 명령에 복종하는 집단/군중의 움직임 속에서 나는 개인으로서 무력함을 느꼈었는데, 딱 그때가 떠오르면서 퍼즐의 열쇠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아... 글이 부족해 그때의 기분과 내 느낌을 설명하는 게 힘들다. 그런데 정말 영화를 보면서 군대의(특히 훈련소에서의) 기억이 떠올랐고, 이해가 됐었다.
하여튼 영화가 너무 좋다. 꼭 추천하고 싶다.
영화를 보고 나니 배가 고파서, 아까 마트에서 사 온 빵과 맥주를 먹으며 바르샤바 여행정보를 찾아보고 잠에 들었다.


하루 종일 열심히 돌아다녔는데도 잠이 잘 안 왔다. 전날 너무 많이 자서 그랬던 것 같다.
결국 아침에도 일찍 깨서 6시쯤 일어났다. 침대에서 좀 뒹굴거리다가 아침을 대충 먹고 체크아웃 전 카지미에르시를 다시 둘러보려 숙소를 나섰다. 전날 쉰들러 리스트가 너무 인상적이었어서, 영화 촬영지를 다시 가보고 싶었다.
아침에 숙소를 나서니 또다시 짙은 안개가 내렸다.


여기는 바닷가도 산지도 아닌데 왜 이렇게 안개가 짙은 걸까?



전날 갔던 길을 다시 걸어 카지미에르시에 도착했다. 토요일 아침인 데다가 안개가 짙어 거리에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아픈 역사를 보러 왔다고 생각하니 안개 낀 카지미에르시가 더욱 인상 깊었다.





그렇게 다시 찾은 쉰들러 리스트의 촬영지. 아무도 없었다.



영화에 나왔던 바로 그 건물, 그 계단이었다.


전날 돌아다녔던 길과 다른 길로 카지미에르시 거리를 걸어 다녔다.


다 둘러보고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쉰들러 공장까지 다시 가기에는 너무 멀었다...ㅋㅋㅋ




숙소에서 좀 쉬다가 10시가 넘어 다시 숙소를 나섰다. 배낭의 한쪽 가방끈이 떨어질락말락 위태로워서 수선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근처에 바늘과 실을 파는 곳이 있나 찾아봤는데, 폴란드에서는 pasmanteria라고 단어가 따로 있었다. 숙소 근처의 pasmanteria가 10시에 열어서 시간에 맞춰 찾아간 것이다.

얇은 바늘과 조그마한 검은색 실을 3.3즈워티에 샀다. 돌아오는 길에 환전도 좀 더 하고 숙소로 왔다.



숙소에 돌아와서 가방을 뒤집어엎고 바느질을 했다. 유튜브로 바느질 영상도 찾아보고, 매듭짓는 법을 배워 성공적으로 수선을 마무리했다. 어차피 잘 안 보여서 진짜 마구잡이로 실을 엄청 꿰매니까 튼튼하게 고정되었다.

중학교 때 기술가정 시간에 바느질했던 것이 기억나는데, 내 기억으로는 그게 마지막 바느질이었다. 그때는 나름 잘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바느질을 끝내고 숙소에서 기다리다가 버스 시간에 맞춰 터미널로 갔다.


유럽은 정말 크리스마스 마켓에 진심이다.

터미널 가는 길에 기차역이 있어 잠시 둘러봤다.


기차를 타고 가도 좋았을 텐데, 그냥 버스 티켓 예매가 편해서 버스를 예매했다.
터미널에서 바르샤바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던 중 정말 말도 안 되는 버스를 봤다.

무려 마르세유에서 폴란드 동쪽 거의 끝인 루블린까지 다니는 플릭스버스였다. 궁금해서 앱으로 찾아보니

무려 33시간이 걸리는 여정이었다. 물론 끝에서 끝까지 타는 사람은 없겠지...
얼마 안 기다려 버스가 왔고, 크라쿠프에서 2시 10분에 출발한 버스는 4시간이 조금 넘게 걸려 바르샤바에 도착했다. 바르샤바에 도착한 후의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이어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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