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1.27. ~ 26. 1.30.
장장 5개월 여행이 끝나는 도시,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아침. 7:20 뮌헨 ZOB에서 출발하는 플릭스버스를 타고 오후 1:40경 프랑크푸르트 ZOB에 도착했다. 도이칠란드 티켓을 이용해 RE를 몇 번 환승해서 갈 수도 있었지만, 뮌헨에서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버스는 이미 한 달 반도 전, 폴란드에서 예매했어서 환불도 받을 수 없었다.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길에 뮌헨 여행기를 작성하려고 했는데, 도저히 여행기를 쓸 기분이 들지 않아 그냥 유튜브 보고 음악 듣다 잠자며 시간을 보냈다.
이젠 익숙해진 장거리 이동. 언제 또 이런 여유를 느낄 수 있을까.
프랑크푸르트 버스터미널(ZOB)에 도착해서는, 바로 옆의 중앙역으로 이동해 S반을 타고 숙소로 갔다.



중앙역에서 S반을 타고 한 정거장 이동한 위치에, 이번 여행의 마지막 숙소가 있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도 역시 a&o 호스텔을 이용.
그동안 쭉 부킹닷컴을 통해 예약했는데, 알고보니 a&o 호스텔 자체 앱이 있고 이 앱을 통해 예약하면 가격이 20% 정도? 저렴해지더라. 이걸 여행 다 끝나고서야 알다니.
4인실과 8인실이 1박에 0.5유로 차이밖에 안나서 기분 좋게 4인실을 3박/45유로에 예약해뒀다. 숙소에 도착하니 얼리 체크인을 해줘서 바로 방에 짐을 풀고 밖으로 나왔다.

아침도 안 먹고 버스에서 식빵 몇 쪽만 뜯어먹었어서 무척 배가 고팠다. 핫도그나 소시지를 먹고싶어서 지도를 찾아보다 프랑크푸르트의 중심, 뢰머 광장 근처에 클라인마르크트할레(Kleinmarkthalle)라는 전통시장이 있는걸 발견했다. 숙소에서 S반을 타고 근처 역에 내려 시장으로 갔다.
역에서 나와 주위를 둘러보니, 이제껏 유럽에서 본 적 없는 현대적 마천루가 가득했다. 알바니아 티라나에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었는데, 차이점이라면 프랑크푸르트의 마천루가 훨씬 높고 발전된 모습이었다는 것.
마천루 빌딩숲을 지나 몇 분 걸어 클라인마르크트할레에 도착했다.


구글 리뷰에 나온, 마켓 안의 핫도그 가게를 찾아 내부를 둘러봤다. 여느 시장과 다름없이 정육점, 치즈 가게, 빵집, 꽃집 등등의 가득했다.
시장 한 켠에 무척 거대한 소시지가 들어간 핫도그를 파는 가게가 있다고 해 찾아갔는데, 막상 가보니 현금만 받더라... 현금은 다 써버린지 오래여서 결국 핫도그를 사먹는데 실패했다.
시장은 당연히 현금만 받을텐데,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그 뒤로 시장을 좀 더 둘러보다 그냥 근처 알디에 가서 부리또와 음료수를 사서 먹고 점심을 때웠다.

부리또를 먹으며 구시가지쪽으로 걸어갔다.
프랑크푸르트는 2차대전의 공습에서 도시가 완전히 파괴된 후, 서독의 경제 중심지로 기능하며 옛 건축물들이 복원되기보다는 현대적 건축물들이 들어선 도시다. 그래서 구시가지가 웬만한 소도시보다도 작고, 볼 것이 없다. 반대급부로 현대 독일의 금융과 경제의 중심지로써 기능하고 있고, 런던에 이은 유럽 최대의 금융 중심이라고 한다.

모더니즘 건축물로 가득 찬 프랑크푸르트의 모습은, 구시가지가 가까워지면서 익숙한 고전 독일식 건축물들로 변해갔다.



얼마 안있어 프랑크푸르트 구시가지의 중심, 뢰머 광장에 도착했다.



놀랍게도 이게 '제대로 된' 구시가지의 끝이다. 이거 말고 볼만한 구시가지의 건축물은 프랑크푸르트 대성당밖에 없다.
뢰머 광장에서 조금만 걸으면 프랑크푸르트 대성당이 나온다. 프랑크푸르트 대성당은 16세기 초 이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투표가 이루어지던 곳으로, 역시 2차대전에서 파괴된 후 복원됐다.


성당 내부에는 볼 게... 없다. 그냥 신성로마제국 황제 선출이 이루어진 곳이라는 의미밖에 없다. 성당을 잠시 둘러보고 밖으로 나왔다.

성당 근처를 돌아다니다 기자처럼 보이는 사람과 촬영팀을 발견한 것이 그나마 볼거리. 성당 주위로 건물들이 가득해 성당 외벽을 관찰하는 것도 힘들었다.
그렇게 10분도 안되어 구시가지 구경이 끝나고, 프랑크푸르트를 관통하는 마인강변으로 향했다.

독일어로 alte는 '옛', brücke는 '다리'라는 뜻이다. Altebrücke는 그냥 옛날 다리라는 뜻.
프랑크푸르트의 정식명칭, Frankfurt am main은 '마인강의 프랑크푸르트'라는 뜻이다. 독일 동부, 폴란드와의 국경에 Frankfurt(Oder) - 즉, 오데르강의 프랑크푸르트 - 가 있어 서로를 구별하기 위한 명칭인 셈. 그런데 이쪽은 'am main'을 붙이고, 저쪽은 괄호 안에 (Oder)라고 하던데, 그냥 마음대로 쓰는건지, 아니면 규칙이 따로 있는건지 모르겠다.
하여튼 마인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서 프랑크푸르트의 빌딩숲을 바라봤다.

일단 높은 건물들이 모여있으니 볼만하긴한데, 솔직히 그렇게 예쁘다는 느낌은 안든다. 유럽에서는 그나마 봐줄만한 스카이라인이려나.

그대로 강을 건너 강 반대편의 산책로를 걸었다.

산책로를 따라 조금 걸으면 철제 인도교, 아이젤너 다리가 나온다.

다리 곳곳에 자물쇠가 걸린 것이 인상적. 유럽에는 무슨 자물쇠 걸어둘만한 곳만 있으면 다 자물쇠를 걸어둔다.
아이젤너 다리에는 나름 역사가 있는 것 같았는데, 찾아보기 귀찮아서 그냥 걷기만 했다.


체험학습을 나온건지, 한무리의 학생들이 우르르 지나가며 사진 찍는데 열중하고 있었다. 부럽다 애들아.
다리를 건너니 다시 뢰머 광장으로 돌아오게 됐다.

뢰머 광장을 지나 근처를 이리저리 돌아다녔는데, 진짜 볼 게 없었다.

그나마 근처에 괴테의 생가가 있어 찾아가봤다.


근처 서점에 들어가 책을 좀 구경했다.

뮌헨과 프랑크푸르트, 둘 다 한국에서는 무척 유명한데 볼 게 너무 없더라. 그래도 둘 다 근교 도시를 둘러보기는 좋은 것 같다. 사실 뮌헨에서 그렇게 재미가 없었던 것도, 보통 뮌헨에서 자주 가는 근교 소도시 뉘른베르크에서 아예 이틀을 묵어 컨텐츠를 소비해버렸기 때문일지도.

근처에 오페라 하우스가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근데 뭐 볼 건 없었고, 슬슬 해도 저물어서 그 길로 숙소 근처 마트에서 장을 본 뒤 숙소로 들어갔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시간표를 수정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날 저녁부터 다음날 아침 8시까지, 복학하는 학기의 수강신청 장바구니 기간이어서 눈치싸움을 계속 해야했다. 들으려던 전공 과목이나 교양들을 몇 번씩 장바구니에 넣었다가 빼고, 다른 과목들을 찾아보고, 강의계획서와 강의평을 비교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특히 수리과학부 전공 과목이 많이 정원초과 됐는데, 나는 독일에서 휴대폰으로 수강신청을 해야해서 교양과 전공을 모두 잡을 자신이 없었다. 결국 전공 과목 몇 개를 버리고, 들으려던 컴퓨팅 과목도 버린 채 다음과 같이 시간표를 확정지었다.

측도이론과 확률 과목을 포기하고 그 대신 해석학1을, 컴퓨팅 과목을 포기하고 '말소리의 세계'라는 언어학과 전공으로 넣고 금요일 3시에 학생자율세미나를 추가했다. 학자세에서는 매듭이론 스터디를 같이 하게 되는데, 예전부터 궁금했던 분야인데다가 선수과목인 위상수학이나 해석학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올라온 상태라고 생각해 부담없이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제일 문제는 해석학1 수업인데, 이게 Folland 교재를 이용해 실해석학을 공부하는 대학원 수업이라 좀 걱정이 된다. 그래도 위상이나 복소는 한 번 완전히 공부를 한 과목이고 연습문제도 많이 풀어 학습 부담이 크지 않을거라 판단했고, 남는 시간을 실해석학 공부에 투자하면 4학년이 되는 내년에 들을 수 있는 과목이 확 늘어나서 도전하기로 했다.
저녁 내내 시간표 생각하느라 금새 시간이 지났고, 12시까지 계속 이리저리 바꾸다가 너무 피곤해서 잠에 들었다.
다음날은 프랑크푸르트 근교 여행을 가는 날. 프랑크푸르트 여행에서는 그 근교 도시인 하이델베르크에 가장 가보고 싶었는데, 남은 이틀 날씨가 모두 흐려서 걱정이었다. 그나마 이 다음날(29일)이 좀 더 날씨가 나은 것 같아서 하이델베르크는 29일에 가기로 했고, 28일 당일은 뮌헨 바로 옆에 있는 마인츠(Mainz)와 비스바덴(Wiesbaden)을 여행했다.
그 두 일정을 바꿔야했는데... 예상과 달리 28일 날씨가 좋았고 29일 날씨는 최악이었다.
어쨌든... 그 덕에 마인츠와 비스바덴에서는 예쁜 풍경들을 봤으니.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을 푸짐하게 먹고 숙소를 나서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 도착했다.

마인츠로 가는 RE는 한 시간에 한 편이 있고, 40분도 안걸리는 짧은 거리라 지연이나 연착없이 정시에 도착했다.



중앙역에서 나오니 비가 조금씩 내렸는데, 우산을 챙겨와 우산 쓰고 다녔다.
마인츠는 라인란트팔츠주의 주도로, 한국인 축구선수 이재성이 있어 이름이 익은 곳이었다. 이재성이 아니었다면 평생 몰랐을 도시.
주도라고는 하지만, 그렇게 큰 도시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거리가 뮌헨은 물론 프랑크푸르트보다도 훨씬 예뻤다. 확실히 도로가 너무 넓으면 웬만하면 미관이 안좋아지는 것 같다.



프랑크푸르트는 거리를 돌아다녀도 볼거리가 정말 없었는데, 마인츠를 이곳저곳 돌아다닐 땐 별 거 아닌 거리도 마음에 들었다. 확실히 내 눈에는 도로 넓이가 중요하게 느껴지는듯?



이날 방문한 마인츠와 비스바덴은 각각 라인란트팔츠주와 헤센주의 주도로, 두 시는 라인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다.
마인츠 중앙역에 내려 라인강변까지 쭉 걸어갔다. 걸어가면서 이곳저곳 사진을 찍은 것...

막상 라인강에 도착하니 그냥 한적한 강변이었다. 비가 오는데도 달리기하는 사람이 몇몇 보였다.

강변을 잠시 둘러보고 근처 공원을 산책했다. 비는 어느새 멈추고 구름 사이로 옅은 햇살이 비췄는데, 공원 산책이 참 기분 좋았다. 언제 다시 이런 여유를 느낄 수 있을지... 생각이 많아지는 시간이었다.


건축물들도 예쁘고...

신기하게 생긴 성당이 있어 그쪽으로 걸어가봤다.

걸어다니는데, 뭔가 열정이 떨어진 느낌. 여행 마지막이 다가올수록, 이젠 끝이라는 생각에 별로 신나지가 않았다. 파리를 여행할 때 진짜 한 걸음 한 걸음이 신났었는데.


그때는 망설였지만, 다시 생각할수록 파리를 여행하길 참 잘했다. 파리 여행은 언제고 계속 생각날 것 같다.

내부도 들어가봤는데, 너무 현대적인 모습이라 쓱 보고 바로 나왔다.
지도를 찾아보다 조금 떨어진 곳에 마인츠 대성당이 있는걸 발견하고 2키로 정도를 걸어갔다.


거리에 형형색색 깃발이 걸려있길래 뭔가 했는데, FC 마인츠의 상징이더라.

걷다보니 어느새 마인츠 대성당의 탑이 보이기 시작했다. 작은 도시 규모와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성당.
알아보니 마인츠 지역은 옛 신성로마제국의 선제후국 중 하나인 팔츠가 있던 곳이고, 프랑크푸르트 대성당에서 선출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는 마인츠 대주교의 축복 아래 황제 대관식을 치뤘다고 한다. 대주교청이 설치된 성당이라 그렇게 큰 것.


진짜 크고 예뻤다.

그렇지만 내부는 평범한 성당.
성당 앞 광장은 Marktplatz로, 가끔씩 시장이 열린다고 한다.

이후 버스를 타고 잠시 이동해 마인츠 성(Zitadella Mainz)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성으로 올라가는 길에 발견한 연립주택단지가 진짜 느좋에 분위기 있었다.





진짜 너무 마음에 쏙 드는 주택단지였다. 일본식 연립주택 느낌도 나고...

무엇보다 각 세대가 테라스를 저마다의 색으로 꾸며놓은 것이 정말 예뻤다.

한참 구경하다 성으로 들어갔는데, 성 내부는 지금 정부기관으로 사용 중인듯했다. 전망대 같지 않은 전망대에 올라 마인츠 성당을 바라볼 수 있었다.


성에서 전망을 좀 구경하다 다시 내려와 아까 인상깊게 봤던 연립주택단지 속으로 들어가 더 자세히 구경했다.


디자인이 참 예쁘더라. 이런 느낌의 모던한 설계가 마음에 든다.
이제 슬슬 마인츠를 떠나 비스바덴으로 갈 시간. 마인츠 대성당쪽으로 걸어가 버스를 타고 S반으로 갈아타 비스바덴으로 가야했다.

가는 길에 CD/LP샵이 있어 잠시 구경을 했다.

이곳 역시 라디오헤드와 핑크플로이드의 CD는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그나마 King Crimson의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 앨범을 발견했다.

좋아하는 앨범 중 하나고 꽤 자주 듣기는 하는데 CD를 살 정도로 팬인건 아니어서 그냥 가게에 두고 나왔다.


마인츠를 세 시간 정도 둘러봤는데, 프랑크푸르트에 절대 비할 바가 아니다. 프랑크푸르트보다 훨씬 예쁘고 볼 것도 많고... 여러모로 마음에 들었다.
마인츠 대성당 근처의 버스정류장에서 57번 버스를 타고 라인강을 건너 S반 정류장에 도착했다. 거기서 S반을 타고 한 정류장만 이동하면 비스바덴 중앙역에 도착한다.


비스바덴은 헤센(Hessen)주의 주도로, 의외로 해센주의 주도는 프랑크푸르트가 아니었다.
비스바덴은 과거 귀족들의 휴양지였다는데, 그래서인지 거리의 건물들이 무척 고급스러운 느낌이었다.


거리 풍경이나 집들의 모습이 왠지 맨해튼의 이스트 사이드를 닮았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건축 양식이 꽤 비슷하게 느껴졌다. 다만 이스트 사이드를 걸었던 기억이 이제는 많이 희미해서 정확하지 않을지도.

어딜 가나 프랑크푸르트보다 훨씬 낫다...ㅋㅋ




거리를 걸어다니는데, 사진 찍고 싶은 곳이 너무 많았다. 갑자기 누구랑 같이 왔으면 좋았을텐데, 라는 생각이 들어 외로움에 왕날편을 들으면서 거리를 걸었다. 외로움 해소에는 침착맨이 최고야!


비스바덴에서 뭘 할까, 제미나이와 대화를 하다가 북쪽 언덕의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뷰가 좋다고 추천해줬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푸니쿨라가 있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 명소라고 해서, 버스를 타고 푸니쿨라 정류장까지 이동한 뒤 언덕을 걸어서 오를 계획이었다.

그런데 막상 버스에서 내리니 푸니쿨라 정류장까지는 꽤 으슥한 길을 지나가야했고, 관광객은 하나도 없는 분위기에 하늘이 많이 어두워져 뭔가... 언덕을 오르기가 두려워졌다.
그대로 언덕을 오르기엔 좀 꺼림칙해져서, 그냥 그 길로 돌아와 다시 버스를 타고 비스바덴 시청을 향해 이동했다.


관광객은 거의 없는 동네라지만, 거리는 꽤 예뻤다.

사람 사는 냄새도 나고

얼마 안 있어 시청사가 나왔다.

시청사 옆에는 붉은 벽돌로 지은 커다란 고딕양식 비스바덴 대성당이 있었다.


여기까지 보고 나니 비스바덴에서 볼 건 거의 다 본 셈이었다.
볼 것도 다 봤겠다, 오후 4시경 프랑크푸르트로 다시 돌아가는 기차를 타야해서 중앙역으로 돌아갔다.
기차는 시간에 맞춰 탔는데, 아니 이놈의 기차가 갑자기 멈추더니 한참 가만히 서있고, 다시 움직이는가 싶더니 또 한참을 가만히 서있는거다. 결국 원래라면 45분이면 도착할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 한 시간 반이 넘게 걸렸다. DB의 연착과 지연은 아무리 경험해도 익숙해지지 않네. 독일 여행 초반에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최근 이런 지연이 잦았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장을 봐서 저녁을 먹고, 그 이후로는 쭉 쉬었다. 전날 시간표 짜느라 늦게 잔데다가 이날 근교 여행 때문에 아침 일찍 일어나 잠을 잘 못잤다. 게다가 다음날은 선착순 수강신청 때문에 최소 새벽 한 시는 되어야 잠에 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저런 이유가 합쳐져서 일찍 잠에 들었다. 이날은 방에 나 말고 아무도 없어서 너무 편하게 잠들었다. 9시쯤 잠들었던 것 같다.
다음날, 역시 일찍 일어나 아침을 먹고 중앙역으로 향했다. 아침부터 하늘에 안개가 짙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RE를 타고 하이델베르크 중앙역에 도착하니, 아니나다를까. 안개가 무척 짙어 근처의 언덕도 제대로 안보였다.
전부터 무척 기대하고 있던 하이델베르크 여행이었는데, 슬펐다. 전날도, 이 다음날도 날씨가 그나마 괜찮았는데 하필 내가 하이델베르크에 간 날 날씨가 이랬다. 게다가 여행 마지막 날이라 다음 기회도 없고.
어쩔 수 없지. 그렇다고 다시 프랑크푸르트로 되돌아 갈 수도 없고, 내가 할 수 있는건 그냥 열심히 돌아다니며 나름의 매력을 찾는 것 뿐이었다. 여행 마지막 일주일이 이렇게 흐려버리다니 원... 그래도 그간 겨울 유럽의 악명치고는 맑은 날씨를 많이 즐겼으니, 그걸로 만족해야하지 않을까.

중앙역 내부가 꽤 예뻤다. 벽화 그려진게 괜찮았다.

중앙역에서 구시가지는 걸어서 20~30분 정도 떨어져 있다. 트램을 타고갈까, 하다가 그냥 걸어서 갔다.

조금 걷다보면 하이델베르크 구시가지의 중심거리가 나온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예뻤다. 비가 내려 우산을 쓰고 걷기는 했지만, 굉장히 마음에 드는 풍경. 구시가지도 꽤 넓다.



신성로마제국의 일곱 선제후국 중 하나인 팔츠 선제후국의 수도로써 기능한 하이델베르크는, 중세 이후 독일 민족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 중 하나였다. 14세기 팔츠 선제후에 의해 설립된 하이델베르크는 독일 지성의 집합소였고, 지금까지도 독일 최고 명문대학교로 기능하고 있다.
고즈넉한 고도를 걷다보면, 프랑크푸르트같은 현대적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여유로움을 맞이하게 된다. 비와 안개 때문에 맑은 하늘을 볼 수 없는건 아쉬웠지만, 하이델베르크의 거리를 걸을 땐 오히려 어두운 하늘이 싫지 않았다.

독일 최고 명문, 하이델베르크 대학교는 하이델베르크 곳곳에 캠퍼스가 나뉘어져있는데, 그중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이 바로 Universitatplatz(대학광장)에 있는 건물들이다.


대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고, 광장 주위의 건물을 구경하다 다시 원래 걷던 중심가를 따라 이동했다.


지금까지 방문했던 독일 도시 중 구시가지가 가장 크고 긴 느낌. 거리가 일직선이라 단조로운 느낌은 있어도, 도로 양옆으로 늘어선 건물들이 아름다웠다.




중심가의 끝에는 거대한 하이델베르크 성령 교회와 Marktplatz가 자리잡고 있다.


성령교회 안은 평범했고, 원래 첨탑으로 올라갈 수 있는 것 같은데 이날은 접근이 막혀있었다.
Marktplatz에서 하이델베르크 성쪽으로 이동했다.

성까지는 무한의 계단을 오르면 된다. 성 내부 투어를 할거라면 성 관람 티켓에 푸니쿨라 티켓이 포함되어 있어 세트로 구매하면 되지만, 나는 성 내부를 관람할 생각이 없어 계단을 올랐다.
한참 계단을 올라 하이델베르크 성에 도착했다.

하이델베그크 성은 팔츠 선제후가 머물던 성이다. 팔츠 선제후국의 영지는 30년 전쟁 당시 카톨릭 세력과 개신교 세력의 각축장이 됐고, 하이델베르크 성 역시 수 주간의 포위전 끝에 카톨릭 세력인 바이에른 제후국에 점령당했다.

하이델베르크 성은 당시 폐허가 된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여기서 보는 하이델베르크 구시가지 풍경이 일품인데, 전망대 자체는 무료로 접근이 가능했다.




구시가지 풍경이 정말 예뻤다. 날씨 좋았으면 몇 배로 더 좋았을텐데. 거리를 거닐때는 날씨 생각이 별로 안들었는데, 전망대에서 바라보니 날씨가 너무 원망스러웠다.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고. 그저 열심히 돌아다닐 뿐이었다.




성채를 한참 둘러보다 다시 전망대로 가 연신 사진을 찍었다.




성채에서 하이델베르크 시내를 바라보며 음악도 듣다가, 여행 마지막 날이라는 센치함을 한껏 즐기고 다시 시내로 내려왔다.

이곳에서 강 반대편으로 가는 다리를 건넜다.



아무리 생각해도 날씨가 참 아쉽다.

강 반대편으로 건너가면 '철학자의 길'이라고 불리는 언덕길로 갈 수 있다.
언덕 중턱에 있는 산책로라, 철학자의 길로 가기 위해서는 계단을 한참 올라가야 한다.

차라리 계단만 있으면 좋으련만, 오르막길이 함께 있어 더 힘들었다.
몸이 힘들면 생각이 사라지는데, 잡생각을 떨치는게 철학의 기초라면
언덕을 오르는 것은 철학자의 길로 들어서는 좋은 방법이 아닐까.
한참 걸어 도착한 철학자의 길에서 보는 하이델베르크의 뷰는... 안습...




길을 걷다보면 벤치가 놓여있는 전망대가 있는데, 비가 와 벤치가 모두 젖어있었다.
어쩔 수 없이 벤치 옆에 서서 왕날편을 들으면서 안개 낀 하이델베르크 풍경을 구경했다.


옛 풍경을 그린 그림과 현재 모습이 거의 차이가 없었다.

철학자의 길을 쭉 걸어 내려갈까 하다가, 중간에 다시 되돌아와 올라온 길로 다시 내려갔다.

다시 Altebrücke를 건너 구시가지로 넘어갔다.

걸어온 길을 다시 거슬러, 하이델베르크 중앙역으로 향했다.


글로보면 시간 가늠이 안되겠지만, 이땐 이미 오후 2시 반을 넘긴 시각이었다.

프랑크푸르트로 돌아가는 차편을 자주 있었지만, 너무 늦지 않게 돌아가고 싶어 열심히 걸어갔다.
그래도 가는 길에 하이델베르크 대학문고? 같은게 있어 구경갔다.

실험복 파는 모습이 정겹다. 1학년 때 화학실험을 들어야 해서 학관 서점에서 실험복을 샀던게 기억났다.

잠시 둘러보다, 트램을 타고 하이델베르크 중앙역에 도착해, 만하임(Manheim) 중앙역을 거쳐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 도착했다.

가볍게 마트에서 장을 봐 숙소에 들어왔다. 여행 마지막날인만큼 만찬을 먹을까 생각도 들었지만, 그냥 귀찮아서 숙소에서 밥을 먹었다.
저녁 시간을 어떻게든 때우다, 독일 현지 시간 새벽 0:30, 한국 시간 8:30에 수강신청을 완료했다.
일부러 경쟁률을 보고 장바구니를 조정해 둔 터라 정원초과된 과목을 신청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고, 장바구니에서 정원 터진 두 과목을 모두 잡는데 성공했다.
그렇게 5개월 간의 유라시아 여행 마지막 밤이 지나갔다.
여행의 마지막 날 아침, 느즈막히 일어나 아침을 먹고 짐을 쌌다. 수화물 규정에 맞춰 가방 짐을 싸고, 체크아웃 후 공용공간에서 대기하다 비행기 시간에 맞춰 오후 2:30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으로 출발했다.

이대로 한국에 간다는게 실감이 안났다.
섭섭하다거나, 여행을 더 하고싶다거나, 얼른 한국으로 가고싶다거나
하는 생각이 들 줄 알았는데, 그냥 아무 생각이 안들었다. 생각보다 훨씬 더 덤덤했다.

중앙역에서 S8을 타고 국제공항에 내리면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 터미널 1에 도착하는데, 내가 탑승하는 티웨이 공항은 터미널 2를 이용해서 셔틀을 타고 터미널 2로 이동했다.
전날 셀프체크인을 완료했고, 짐만 부친 뒤 출국수속을 받고 보안검색대를 통과해 이 글을 쓴다.
자세한 이야기는 후기글에서 따로 쓸 것 같지만... 여행하면서 너무 즐거웠다.
본래 5주간 중앙아시아 여행만 떠날 계획이었던 것이, 무작정 리턴 티켓을 취소하고 5개월 여행으로 연장됐다.
그만큼 준비도 잘 못해가서 힘든 것도 많았지만
여행을 계속 하기로 결정한 것은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다.
정말 즐겁고 행복한 5개월의 시간이었다.
뭘 많이 배우고, 성장한 여행이었다기보다는 여유를 느끼고, 즐기고, 나 하고 싶은대로 마음껏 했던 여행이었다.
한국에서의 '노멀'을 벗어나 '뉴 노멀'을 느낀 여행이었다.
짧은 여행이 아니라, 장기간 여행에서 느낄 수 있는게 따로 있는 것 같다.
정말 너무 행복했고, 이 기억으로 앞으로 몇 년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스페인어를 배워 반드시 남미를 여행할거다. 이번에도 무척 오래...
이제 진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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